The Live

59.00.

한바탕 소동이 가라앉았다.

수십만 키메라들의 습격.

그 소동의 주범은 아브람으로 밝혀졌고, 마천루 클랜은 서둘러 소란을 가라앉히는 데 주력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들의 수는 2만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공격해 온 키메라들의 수는 약 40만이었고, 흩어진 키메라들의 수는 추정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열흘에 걸쳐 소란을 잠재우는 사이 경과를 살피던 리 차홍의 보고였다.

책상에 앉아 보고를 듣던 엘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2만 명이라…….”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소식이었다.

“많이도 죽었군.”

2만 명.

숫자로만 들어서는 감도 오지 않을 만큼 많은 수였다. 그들의 시체를 한 자리에 모은다면 작은 언덕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었다.

“대부분은 신규 해당자겠지?”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기존 해당자들은 괴물과 싸워 온 경험도 있고, 실력도 나름 뛰어난 반면 신규 해당자들은…….”

리 차홍은 거기서 말을 멈췄다.

더 말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엘빈이 이 당연한 사실을 몰라서 물은 게 아니었다.

답답한 숨을 토하던 엘빈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밖에 다른 건?”

“아브람의 실험실에 관한 문제입니다. 실험실에 펼쳐져 있는 마법진을 해제하는 게 첫 번째 과제이며, 그걸 위한 방법으로는…….”

“방법 말고, 배분. 방법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정 안 되면 실험실 자체를 날려 버리면 마법진은 해결되지 않겠어?”

아브람의 실험실은 귀중한 자원이었다.

그 안에서 일어난 대마법사 아브람의 연구 결과, 그리고 여러 서적.

그중 몇 권의 스킬만 섞여 있어도 대박이었다.

대마법사 아브람의 스킬이라면 최소한 B등급 이상이 나올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아이템들까지.

이 거대한 소동은 아브람이라는 ‘보스’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던전과 퀘스트나 다름없었다.

“일단, 마을에 있던 해당자들에게는 키메라들을 죽이고 나온 마력석을 배분하기로 결정됐습니다. 그렇게까지 가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마력석을 여러 개 모아 가공하면 꽤 쓸 만한 물건이 나올 것 같으니 마천루 클랜에서 사들이는 게 좋겠습니다.”

“가격은 알아서 측정해서 보고 올리고.”

“네.”

“그 외에? 아브람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이나 연구 서적, 스킬은 어떻게 할 거지?”

“당연한 것 아닙니까? 마천루 클랜의 것이죠.”

“그 둘은?”

엘빈의 물음에 리 차홍은 잠시 대답을 주저했다.

물 흐르듯 이어지던 대화가 잠시 끊어졌다.

리 차홍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클랜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분분하다?”

엘빈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니, 구겨졌다.

표정만 봐도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엘빈을 마주하고 있던 리 차홍은 긴장한 듯 꿀꺽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이번 일은 저희들 선에서 해결하기엔 너무 큰일입니다. 해서, 위에도 보고를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십만 마리의 키메라.

수만 명의 죽음.

그것은 지금껏 시작의 마을이라 불리는 멜른에서 벌어졌던 모든 사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이었다.

지금껏 멜른에 벌어지던 사건은 커 봤자 머더러 클랜에 의한 연쇄살인 정도였기에.

당연히 멜른을 보호, 관리하는 마천루 클랜에서도 이번 일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 봐.”

“위쪽의 의견은 그겁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윤재와 정규라는 그 두 신규 해당자는 그 원인과 결과 모두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원인이란 당연히 아브람의 실험실이 ‘발견’된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실험실을 발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윤재와 정규, 두 사람이었다.

“애초에 실험실의 위치가 밝혀지지 않았으면 벌어지지도 않았을 사건이다. 원래라면 이번 사건이 벌어지게 된 간접적인 원인인 신규 해당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힐끔 엘빈의 표정을 살피던 리 차홍은 말을 마무리했다.

“아브람을 처리한 것 역시 그 신규 해당자인 만큼 공과 사를 상쇄하여 없던 일로 하자. 일단 위쪽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아…… 그래?”

엘빈은 의외로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그 둘에게는 아무것도 못 챙겨 주고, 클랜에서 다 꿀꺽하겠다?”

곧이어 엘빈은 작게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거, 누구 의견이냐?”

“클랜의 종합적인…….”

“야.”

콰직-!

자리에 앉아 있던 엘빈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반으로 쪼개진 책상에서 서류들이 쏟아져 내렸다.

“지금 바로,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위에다 그대로 전해.”

엘빈은 웃음기를 싹 지운, 덤덤한 눈으로 말했다.

“좆 까라고.”

“……진심이십니까?”

리 차홍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껏 엘빈이 클랜 내에서 제멋대로 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클랜 내부적으로 결정된 사안에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하는 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럼 넌 이게 제대로 된 처사라고 생각하냐?”

“……잘 모르겠습니다.”

리 차홍은 대답을 회피했다.

대답하자니 클랜 내부적으로 마무리된 의견에 반하게 되고, 아니라고 대답하자니 엘빈의 심기를 건드릴 것 같았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대답.

하지만 그것도 역시 엘빈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꾸욱-

엘빈은 짜증스러운 감정을 추스르며 검지로 머리를 눌렀다.

“아브람의 퀘스트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그 보고를 올리던 녀석이 너였으니.”

“그렇습니다.”

“실험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어디 있는지도 보고받았겠고.”

“어제 다녀왔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넌 그게 언제쯤 발견되었을 것 같냐?”

엘빈의 물음에 리 차홍은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금방 깨달았다.

“그 둘이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발견되었을 거라는 소립니까?”

“그럼? 아브람이 그런 보상을 내걸었는데 앞으로도 영영 그의 귀에 실험실의 위치가 들어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

엘빈의 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만약 실험실을 발견한 누군가가 아브람에게 실험실의 위치를 발설하지 않았더라 해도, 그 위치는 언젠가 밝혀질 수밖에 없었다.

아브람이 내건 퀘스트 충족 조건은 실험실을 처음 발견하는 게 아니다.

그 실험실의 위치를 자신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지.

수십, 수백만 명의 해당자들 전부가 그 위치를 모두 발설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어차피 발견되었을 거라는 엘빈의 그 의견에는 리 차홍 역시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 실험실을 발견한 게 그 둘이 아니었으면? 그 둘이 없었다면 지금 이 멜른이 어떻게 됐을지 상상이나 해 봤나?”

엘빈이 제시한 가정에 리 차홍은 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건…….”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아브람이 실험실을 찾고, 새로운 몸을 갖게 되고, 키메라들을 풀어놓고.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었다.

그런데 만약 아브람을 잡기 위해 떠났던 엘빈이 그의 손에 죽게 되었더라면.

“……끔찍하군요.”

아브람을 막을 사람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상상이 좀 되냐?”

엘빈은 오래전부터 그런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왔다.

“그 둘이 실험실을 발견했기 때문에 참사가 벌어졌다고? 그래,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을 그 둘이 조금 일찍 터뜨린 거니까. 하지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단언할 수 있었다.

그 둘이 아니었다면…….

“몇만 명이 죽어? 수십, 수백만 명이 죽을 뻔한 일을 너도, 나도, 그 누구도 하지 못했을 일을 해낸 건 그 녀석이야.”

“…….”

“백만 명이 죽을 거대한 폭탄을, 가장 먼저 발견해 온몸으로 막아 낸 놈들이 그놈들이라고. 책임? 웃기지 말라 그래.”

멜른에는 재앙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 둘은, 멜른의 영웅이다.”

“…….”

리 차홍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엘빈의 말에서 틀린 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 엘빈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건 윤재라는 해당자였다.

“이런 생각을 과연 클랜에서 하지 못했을까?”

“알고도 모른 척했다는 겁니까?”

“당장 멀리 갈 것 없이 아브람의 실험실은 마천루 클랜에서도 찾고 있었어. 눈에 불을 켜고 똑같이 실험실을 찾고 있던 주제에 책임을 떠넘긴다고?”

비단 마천루 클랜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아브람의 던전을 찾고 있던 사람은 무수히 많았다.

적어도 마천루 클랜을 비롯한 그들 모두는 윤재와 정규를 욕하고 책임을 캐물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그 둘이 아니야. 이미 죽어 버린 아브람, 그리고 그 아브람의 기억을 건드려 일을 계획한 누군가지.”

아브람은 죽기 전 분명히 말했다.

누군가 실험실에 관한 정보가 적혀 있는 종이를 건네주었다고.

그들은 아브람의 과거를 알고, 그의 연구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아브람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당장 그놈들을 찾아. 애꿎은 일에 휘말린, 만만한 신규 해당자 둘을 괴롭힐 생각 하지 말고. 그리고 당장 가서 위에는 아까 내가 한 말 그대로 잘 전해.”

엘빈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휙휙 저었다.

축객령에도 리 차홍은 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 주저했다.

엘빈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뭐 해? 얼른 가서 전해. 통신용 수정구 없어?”

“여분이 있긴 합니다만…….”

“그럼, 연락하기가 싫나? 어려우면 내가 하고.”

“아,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리 차홍은 당장에라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엘빈을 말려 세웠다.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전하라고는 했지만, 리 차홍은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오, 나보고 대체 뭘 어쩌라고.’

엘빈의 성격이 불같다는 건 마천루 클랜의 사람이라면 많이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특히 그를 잘 아는 위쪽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결국 그 말을 전하고, 대신 욕을 먹어야 하는 건 리 차홍의 몫이었다.

* * *

늦은 밤, 멜른을 둘러싸고 있는 산맥 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밝은 달이 뜨고,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무수히 많은 별이 아래를 밝혔다.

그리고 그 불빛 아래, 몇몇 인영이 은은하게 밝혀져 아브람의 실험실이 있는 장소를 내려다보았다.

“아브람이 죽었다며?”

“그러게. 생각보다 너무 빠르네.”

“몇만 명 죽이지도 못했어. 쯧, 한심하긴.”

“우리 생각보다 이방인들이 훨씬 강했던 걸까?”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는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툴툴거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한심해.”

몇만 명의 죽음을 보고 한심하다고 말한다.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원했던 건, ‘고작’ 수만 명의 죽음이 아니었으니까.

최소 수십 만.

많게는 수백 만 명의 죽음.

그들이 애초에 바랐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작은 소란에 불과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왜긴. 그 대마법사라는 놈이 나이가 들어 노망이 난 거지. 아니면 그놈 실력이 애초에 거품이었거나.”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침착한 다른 목소리가 대꾸했다.

“아브람의 실력은 확실하다. 다만 변수가 있었던 것뿐이지.”

“변수? 무슨 변수?”

“이방인들의 대처가 빨랐어. 아브람이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을 한 것도 있고.”

돌발행동은 그가 힘을 제대로 회복하기도 전에 소란을 일으켰던 것을 뜻했다.

그 탓에 아브람의 모습이 예상보다 일찍 나타나게 되었고, 해당자들이 대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뭐, 그밖에도 꺼림칙한 부분이 많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은 무언가 이상했다.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다르게 흘러갔다. 아무런 까닭 없이 아브람이 저런 작은 마을에 패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돌아가지. 당장 아브람이 실패한 이상 우리가 여기서 달리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돌아가자고? 이대로 아무 수확도 없이?”

내내 불만에 차 있던 중성적인 목소리.

하지만 그 투정에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그래.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상관없어.”

그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등에 있던 날개를 펼쳤다.

펄럭-

“어차피…… 앞으로 기회는 더 많아질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