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ve

83rd.

엘빈은 윤재뿐만이 아니라 정규도 봐 주었다.

-서비스다.

한마디 툭 내뱉고 정규를 잔뜩 괴롭히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대련 중 내내 비명을 지르는 정규는 곧 탈진해서 쓰러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윤재는 자리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차라리 이게 더 낫군.’

사냥을 통해 스탯을 올리고 스킬의 숙련도를 쌓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스탯과 스킬의 숙련도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대련이나 지도와 같은 것도 바로 그 방법 중 하나였다. 어쩌면 이 방법이 사냥보다 더 나은 것 같기도 했다.

‘생각보다 스탯이 오르는 상승폭도 느리지 않고.’

근력과 같은 스탯은 잘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대련 도중 체력이나 민첩, 반사능력과 같은 스탯은 제법 오르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대련을 통해 스스로가 성장하는 만큼 스탯도 함께 오르는 모양이었다.

정규와 대련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때는 전력을 다할 수 없었다. 실력 차이가 있고, 부상을 염려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엘빈이었다.

지금의 자신은 절대 어쩔 수 없는 상대. 그런 만큼 전력을 다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엘빈은 대련이라지만 자신을 허투루 상대하지 않았다.

-회복 스킬이 있다며? 좋은 거 있네. 그럼 죽지만 않으면 되겠어.

윤재가 ‘질긴 생명’이라는 자가 회복 계열의 스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엘빈은 윤재를 봐주지 않았다.

정말로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상대했다.

-죽을 뻔했잖습니까!

-그 정도론 안 죽어. 팔 하나쯤 잘리면 모를까.

-정말 자를 생각이었습니까?

-실수.

-……실수라고요?

-능력껏 잘 피하던가. 설렁설렁하지 말라며?

중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렁설렁 하는 건 상대하나 마나였다.

결국 윤재는 죽을힘을 다해서 엘빈의 검을 피하고,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숙련도는 꽤 올랐지만 말이야.’

엘빈과의 대련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마병갑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계속 사용하다 보니 정규와 대련할 때보다 스킬의 숙련도가 훨씬 더 빨리 올랐다.

이제는 검에 갑옷을 입히는 것도 슬슬 적응이 됐다. 마병갑을 펼치는 속도도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문제는 마기인데…….’

쥐꼬리만 한 마기는 도무지 스탯이 늘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건 고사하고 줄어들지도 않았다.

‘이 정도로는 도움이 안 돼.’

단 1뿐인 스탯.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큰 의미는 없다.

‘방법이 달리 없나?’

윤재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 동안 엘빈과 대련하고 있던 정규는 자리에 대(大)자로 쓰러져 있었다.

“저 죽어요…….”

“이 정도로 안 죽는다.”

“아, 몰라. 알아서 해요. 차라리 죽이든가!”

힘들어 죽겠다면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면 아직 살 만하다 싶었다.

윤재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더니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이제 선수 좀 바꾸죠.”

“좀 더 쉬지?”

“악! 싫어요!”

정규는 바닥에 누워서 비명을 빽빽 질렀다.

배째라고 나오는 정규를 보며, 엘빈은 뭐 이런 놈이 있냐는 표정을 지었다.

“엘빈 씨!”

그때 지하에 있는 대련실로 리 차홍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급박한 목소리에 엘빈과 윤재의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지고, 바닥에 누워 있던 정규도 슬그머니 상체를 일으켰다.

“뭐냐?”

“그, 급보입니다.”

“급보?”

“다크뮴으로 갔던 5대 클랜의 해당자들이…….”

리 차홍은 말을 한 번에 잇지 못하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모두 죽었답니다.”

“……뭐?”

엘빈의 표정이 스산해졌다.

보통 소식이 아니었다.

머더러 클랜이 관리하는 다크뮴에서 5대 클랜의 해당자들이 죽었다는 건, 머더러 클랜에서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사를 나간 해당자들은 누구누구지?”

“저희 클랜에서는 삼 챠오가, 다른 클랜에서는 간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실력 있는 해당자들을 선발해서 보냈다고 합니다.”

“삼 챠오면…… 네 친구 아니었나?”

엘빈의 물음에 리 차홍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 괜찮습니다.”

“……악마의 씨앗에 관한 정보는?”

“이미 5대 클랜에서는 머더러 클랜이 악마의 씨앗을 숨기기 위해 손을 쓴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아무리 다크뮴에 발을 들였다고 해도 5대 클랜의 해당자들에게 직접 손을 쓴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쟁인가?”

“네.”

이미 모든 이야기를 전달받았는지 리 차홍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의 해당자들만 남긴 채 엘빈 씨는 당장 트룸으로 오랍니다.”

“거긴 왜?”

“머더러 클랜은 다크뮴을 중심으로 각 도시 곳곳에 거점을 두고 있지 않습니까?”

“역할을 나눈다는 건가?”

“네. 머더러 클랜에 대한 척살은 그 이후입니다.”

“……좋아.”

으득-

엘빈은 이를 갈아붙이고는 윤재와 정규를 바라보았다.

“들었나?”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난, 트룸으로 갈 거다.”

“따라가도 됩니까?”

윤재의 돌직구에 엘빈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대꾸했다.

“지금 네 상황을 자각해. 너넨 지금 가능한 한 노출되면 안 되는 거 몰라?”

“압니다.”

“아는데?”

“그렇다고 계속 숨어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용감한 건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엘빈이 말했다.

“하,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엘빈은 정규를 돌아봤다.

“넌 어쩔 거지?”

“바늘 가는 데 실이 가야죠.”

“징그러운 새끼들. 그래, 마음대로 해라.”

머리를 벅벅 긁으며 엘빈은 몸을 휙 돌렸다.

“트룸으로 간다.”

* * *

아브람의 순간이동 반지를 매개체로 만들어진 포탈은 어느덧 안정을 찾은 후였다.

더군다나 그 포탈을 관리하는 것은 바로 순간이동 반지의 소유권을 가진 마천루 클랜이었다.

윤재와 정규, 엘빈은 바로 포탈을 이용해 지정된 좌표의 트룸으로 이동했다.

“트룸으로 간다, 라고 비장하게 말하더니만 무슨 옆 동네 놀러 온 기분이네요.”

포탈을 빠져나오자 천장이 높은 건물 안쪽이었다. 정규는 벌써 트룸에 도착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너희가 이쪽 세상에 적응되지 않아서 그렇다. 포탈을 몇 번 이용하다 보면 적응되겠지.”

엘빈은 그렇게 말하고는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포탈을 관리하던 거주민은 엘빈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엘빈은 능숙하게 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그 손 위에 올려 주었다.

어둑어둑한 건물 안쪽과 달리 바깥으로 나오자 쨍쨍한 햇볕이 눈을 찔렀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윤재와 정규는 눈살을 찌푸렸다.

“날씨가 다크뮴과는 완전 반대네요.”

“이곳은 구름은커녕 밤도 없는 도시다. 그러면서 땅은 언제나 수분이 흐르고 기름져 나무엔 과실이 맺히고 벼와 밀이 자라지.”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니까 이 땅에 도시가 세워지고 번화한 거겠지. 이 도시는 너희가 지금껏 봐 온 멜른이나 다크뮴과는 규모가 달라.”

엘빈의 설명처럼 건물 밖으로 처음 보인 광장은 멜른이나 다크뮴의 것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규모는 물론 광장을 꽉 채울 정도로 번화한 거리는 사람 냄새로 가득했다.

더군다나 수십 층에 달하는 높은 건물들은 생전 처음 보는 구조물들이었다.

‘대도시라…….’

또다시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한동안 넋 놓고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던 윤재와 정규는 멀리 걸어가고 있는 엘빈을 발견했다.

“같이 가요!”

정규는 길이라도 잃어버릴세라 엘빈의 뒤를 후다닥 따라갔다. 윤재는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동안 걸음을 옮겨 향한 장소는 광장에서 제법 떨어진 수십 층짜리 고층 건물이었다.

매끄럽게 깎은 바위로 만들어진 건축물은 한눈에 봐도 인근에서 가장 높고 고급스러웠다.

건물의 1층으로 막 들어서려던 때, 입구를 지키고 있던 몇몇 해당자들이 앞으로 나섰다.

“정지. 소속과 이름을 밝히십시오.”

“마천루 클랜의 엘빈이다.”

엘빈은 그렇게 대답하며 소매를 걷어 보였다.

그의 팔꿈치 조금 위쪽에는 거대한 탑 모양의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천루 클랜의 클랜원을 증명하는 증표였다.

마천루 클랜의 증표를 확인한 해당자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는 곧 자세를 바로 한 후 큰 목소리로 외쳤다.

“확인 마쳤습니다. 뒤쪽의 두 분은…….”

“마천루 클랜의 스페어다. 이 둘도 들여보내 줘.”

“하지만 신원이 확실하지가…….”

“이봐.”

엘빈은 얼굴을 와락 구기더니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신원은 내가 보장한다고. 당연히 책임도 내가 진다.”

“……알겠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엘빈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그 옆을 지나쳤다. 윤재와 정규도 자연히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건물은 바로 마천루 클랜의 클랜 하우스였다. 마천루 클랜은 클랜의 이름답게 5대 클랜 중에서 가장 크고 높은 하우스를 가지고 있었다.

세 사람은 마력으로 작동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의 가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정면으로는 거대한 문 하나가 바로 보였다.

“저희가 같이 들어가도 되는 거예요?”

괜히 긴장이 된 정규가 물었다.

엘빈은 그런 정규를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왜, 떨리냐?”

“조금요?”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던가.”

머뭇거리는 정규의 앞으로 윤재가 나섰다.

“안 들어가고 뭐 합니까?”

“넌 너무 겁이 없어.”

엘빈과 윤재는 나란히 서서 방문을 열었다.

문 안쪽으로 넓은 강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모여들었다.

“왔는가?”

“오랜만입니다, 엘빈 씨.”

여러 해당자들이 엘빈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엘빈은 고개를 가볍게 까닥하는 것으로 답례를 대신했다.

강당에 모인 사람들의 수는 백 명이 채 안 되어 보였다. 많다고 할 수 있는 인원이지만, 족히 수천 명은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거대한 강당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하지만 윤재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꽉 차 보인다.’

이 넓은 강당이 오히려 비좁다 싶었다.

저 한 명 한 명의 해당자들이 모두 거인처럼 보였다.

몇몇은 잔뜩 날이 서 있는 건지 자신의 존재감을 어김없이 내보이고 있었다.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넓은 강당의 공기가 텁텁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윤재는 힐끔, 강당의 앞에 서 있는 로이스를 흘겨보았다.

그녀는 엘빈과 함께 따라온 자신들을 보고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눈을 마주치고는 표정을 수습했다.

“안 들어오나?”

걸음을 멈춘 윤재와 정규를 돌아보며 엘빈이 물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윤재는 아차 하는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곧 엘빈의 옆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을 보며, 강당에 모인 해당자들이 물어 왔다.

“저들은 뭐지?”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

“각 클랜의 간부급 이상만 모이는 자리 아니었나?”

그들의 물음에 엘빈은 윤재와 정규를 힐끗 흘겨봤다.

윤재는 잠시 대답이 없더니 곧 장내를 둘러보며 대답했다.

“이번 사건의 제보자입니다.”

그 대답에 입을 다물고 있던 로이스가 깜짝 놀랐다.

설마하니 윤재가 먼저 나서서 일을 벌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제보자?”

“씨앗을 발견했다던 해당자가 저자였나?”

장내가 술렁거렸다.

작은 목소리로 옆 사람과 수군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로이스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감싸다가 윤재를 바라보았다.

윤재는 마찬가지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자리에 제가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허락하지요. 혹 반대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손을 들고 이야기해 주십시오.”

로이스의 물음에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윤재의 참여에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의 씨앗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제보한 만큼 더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 모두 동의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해당자 김윤재와 유정규는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윤재와 정규는 엘빈의 옆자리에 앉았다.

로이스는 다시금 장내를 한 번 둘러보더니 말했다.

“모두 모인 것 같으니 지금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오늘 자리를 가지게 된 이유는 머더러 클랜의 척살에 대해 논의하기 위함입니다.”

“논의할 게 있나? 다 죽여 버려야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날이 잔뜩 선 음성이 흘러나왔다.

장내에 모인 사람들은 그 말을 꺼낸 해당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들이었다.

쿠라다 타쿠야.

비교적 어리고 이면세계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5대 클랜 중 하나인 맥시멈 클랜의 간부가 된 인물.

그는 오래전부터 머더러 클랜의 척살을 주장해 온 해당자로 유명했다.

그러던 차 마침 악마의 씨앗을 통해 머더러 클랜의 처분이 단두대 위로 오른 것이다.

“뭐, 항상 듣던 말이지만 저 역시 이번엔 타쿠야 씨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사실 저희 모두 같은 생각 아니겠습니까?”

터너의 물음에 곳곳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목소리를 꺼냈다.

로이스 역시 그 반응에 큰 반감은 없었다.

악마의 씨앗이 뿌려진 이상 앞으로는 시간과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머더러 클랜에 시간을 줄 필요는 없었다.

“문제는 인원의 배분입니다. 아시다시피 머더러 클랜은 수많은 도시에 퍼져 있습니다. 지금 저희가 있는 이 트룸에도 마찬가지고요.”

머더러 클랜의 규모는 5대 클랜 중 어느 곳보다도 거대했다.

클랜의 성격 때문에 5대 클랜에는 속하지 못하고 배척받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규모 면에서는 쉽게 건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이다.

“머더러 클랜의 거점과 거점에 따른 인원 배분, 그리고 각 클랜에서 충당할 수 있는 전력. 지금 이 자리는 그것을 정하는 자리입니다.”

“마음에 드는군.”

짝, 짝-

타쿠야는 씩 웃으며 손뼉을 마주쳤다.

5대 클랜을 비롯한 각 대형 클랜 연합의 결정에 그가 그저 만족해할 무렵, 터너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미 악마의 씨앗이 심어진 해당자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죽여야지요. 그들 역시 모두 머더러 클랜에 가입한 해당자들입니다.”

“제 말은 그들을 어떻게 골라낼 거냐는 겁니다.”

터너는 타쿠야와는 달리 이성적이었다.

“알다시피 머더러 클랜은 점조직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아무리 거점을 구별하고 일제히 공격한다고 해도 그들을 한 번에 섬멸할 수는 없어요.”

“그들이 도망칠 거라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죠. 멍청하게 질 걸 알면서도 덤빌 녀석들은 아니니까요.”

머더러 클랜이 아무리 거대하다 한들 여러 대형 클랜의 연합을 감당해 낼 수는 없었다.

연합도 피해를 입기는 하겠지만 머더러 클랜은 언제고 해체될 것이다.

하지만 터너가 걱정하는 건 악마의 씨앗이 심어진 해당자들이 뿔뿔이 흩어질 경우였다.

“악마의 씨앗이 심어진 해당자들은 시간이 지나 악마로 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도망가 평범한 해당자들처럼 숨어든다면 어떻게 방법이 없습니다.”

머더러 클랜은 클랜에 새로 들어온 신규 해당자들에게 악마의 씨앗을 심어 놓았다.

기존 머더러 클랜의 클랜원이라면 이미 신원이 파악되어 있었지만, 이제 막 시험을 통과해 머더러 클랜에 들어간 해당자들은 신상을 밝혀낼 방법이 없었다.

아니, 밝혀낼 수 있다고 해도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릴 게 분명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놈들은 악마의 씨앗을 심고 이면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한시라도 빨리 서둘러야 하는 이유죠.”

“하지만 방법이…….”

회의는 지지부진하게 끌어졌다.

문제는 하나였다.

악마의 씨앗이 심어진 해당자들이 평범한 해당자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면 잡을 방법이 없다는 것.

결국 해당자들의 의견은 하나로 모여졌다.

“방법이 없다면, 놓치지 않으면 그만이지.”

툭 내뱉은 듯한 타쿠야의 말에 제법 많은 해당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놓칠 경우를 생각하기 전에, 놓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단 한 번.

한 번에 머더러 클랜을 척살하지 못하면 일이 골치 아파진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넌 어쩔 거냐?”

회의가 진행되던 중 무미건조한 눈으로 회의를 지켜보던 엘빈이 입을 열었다.

시선을 다른 데 두지 않았지만 윤재는 그 물음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싸울 겁니다.”

“그래서 네가 얻는 게 뭔데?”

갑작스러운 질문.

윤재는 엘빈과 마찬가지로 강당 앞에서 회의를 이끌어 가고 있는 로이스를 보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얻는 거야, 뭐든 있지 않겠습니까?”

“잃으면 잃었지, 얻는 건 없을 것 같은데.”

엘빈은 그렇게 말하며 그제야 윤재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대체 원하는 게 뭐냐? 정의감이냐? 아니면 책임감? 그것도 아니면…… 다른 게 있는 거냐?”

“……글쎄요.”

윤재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엘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곧 입을 다물었다.

‘원하는 거라…….’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될 미래를 바꿔야겠다는 정의감?

그 미래를 바꿔 놓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

그도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

입 밖으로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미 윤재는 속으로 그에 대한 답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전부 답니다.’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윤재의 눈은 계속해서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