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ve

$165.

“스흡…….”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가 내뱉는다. 김진석은 그 자리에 잠시 서서 숨을 골랐다.

“답답하군.”

열기가 지나치게 뜨겁다. 플뤼톤의 겁화는 공동 안에 있던 공기마저 태워 버린 지 오래였다.

남아 있는 산소도 얼마 되지 않아 숨이 가빴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답답함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진짜 세긴 세네. 뜨거워 죽는 줄 알았어.”

온몸이 시커멓게 그을렸다. 플뤼톤의 겁화는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살이 익을 만큼 뜨거웠다.

더군다나 거구의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고, 육체적인 능력 역시 지금껏 만나 보지 못했을 만큼 뛰어났다.

과연 마왕은 마왕이었다.

그는 능히 주먹 하나에 작은 산을 날려 버릴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뭐…….”

푸욱-

김진석의 검이 플뤼톤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끝났으니까.”

“커윽…….”

악마의 심장이 위치한 오른쪽 가슴.

심장이 꿰뚫린 플뤼톤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라 팔과 다리가 하나씩 잘려 나가 더 이상 재생이 어려울 정도였다.

털썩-

결국 플뤼톤의 무릎이 꺾였다. 플뤼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다리에 겨우 힘을 주어 완전히 쓰러지는 걸 모면했다.

“어째서…….”

“장소가 여기가 아니라 바깥이었다면 혹시 모르지. 네가 이겼을지도.”

아무리 김진석이라지만 상대가 마왕이라는 걸 감안해 보면 그리 어려운 싸움이 아니었다.

아브람의 마법진.

그 안에서 마왕은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는 듯했지만 영향이 아주 없을 수는 없었다.

“너희들은 오래전부터 우리를 한참 아래로 내려다보았지. 그렇기에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고. 이게 바로 그 만용의 결과다.”

“말도…… 안…….”

“안 되긴.”

스악-

김진석은 플뤼톤의 심장에 박아 넣은 검을 크게 휘둘렀다.

위로 휘두른 검이 심장과 함께 머리를 베어 낸다. 간신히 한쪽 무릎으로 쓰러지는 걸 면하던 플뤼톤의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꿍-

화르르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주위를 뒤덮고 있던 겁화들이 점차 열기를 잃고 식어 간다. 김진석은 그것을 보며 플뤼톤이 확실히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험할 뻔했어.’

플뤼톤과의 싸움에서 김진석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까닭은 중간중간 플뤼톤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플뤼톤은 마법진의 영향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마기를 운용하기가 불안정했다. 만약 멀쩡한 상태였다면 결과를 장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졌겠지. 아마.’

씁쓸했다.

굳이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결과가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아직 자신은 한참 부족했다.

“끝났냐?”

백천의 목소리.

김진석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과는 달리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지만,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겐지는?”

“죽었다.”

“언제 끝났지?”

“1분 전쯤에. 너 도와줄까 하다가 그럴 필요 없어 보여서 그냥 뒀다. 끼어들면 뭐라 할 것 같기도 했고.”

“잘했다.”

김진석은 지친 숨을 내쉬다 잠시 비틀거렸다. 싸울 때는 몰랐지만, 플뤼톤이 쓰러지고 나자 몸에 누적된 열기가 후끈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괜찮냐?”

“아직은.”

“하긴, 주위에 있던 나도 뜨겁던데 직접 싸운 넌 오죽하겠냐.”

“다른 녀석들은?”

“윤재 씨와 엘빈 씨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정규 씨와 로이스 씨는…….”

김진석의 물음에 백천이 두 사람을 가리키던 때였다.

콰릉-!

* * *

“쿠어어억-”

“크으…….”

피를 토하고, 몸을 비틀거린다. 한쪽은 다른 한쪽의 팔을 꽉 움켜잡고,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무식한 새끼…….”

“킥. 그러는 넌?”

“너보단 덜 하지.”

“그거야 뭐…….”

쉬익-

쩡-!

검과 창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마력과 마기가 부딪혀 흩어지고, 두 사람의 몸이 다시금 크게 흔들렸다.

“내가 무식한 건 나도 잘 알지.”

“후우-”

바알은 잠시 숨을 고르며 정규의 검을 눈으로 자세히 살폈다.

서로 한쪽 팔은 묶여 있었다. 이렇게 마주 본 상태로 서로에게 창칼을 겨눈 것도 벌써 몇 분째였다.

‘인간이 맞기나 한 건가?’

부상에 대한 두려움.

그것은 아무리 익숙해지려 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몸에 상처가 생기는 걸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악마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인간에 비해 덜할 뿐, 악마들 역시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낀다. 상처를 입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느끼는 두려움은 인간이나 악마나 다를 게 없었다.

콰득, 깡-!

정규의 목을 노리고 찌른 창끝에 단단한 막이 걸렸다. 마기와 전격을 두른 창은 단단한 막에 흠집을 만들며 뒤로 튕겨졌다.

“젠장…….”

“지쳤나 봐?”

촤악-!

“난 아직 멀었는데.”

바알의 다리가 길게 베어진다.

어지간한 상처는 바알 정도 되는 악마라면 금방 재생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재생력으로도 부족할 만큼 상처가 끊임없이 생겨난다.

‘이 녀석도 문제지만…….’

바알의 시선이 멀리 떨어져 있는 로이스에게로 향했다.

‘저것도 거슬려.’

생각 없이 무식하게 달려드는 것 같지만 정규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로이스 덕분이었다.

그녀의 엄호가 없었다면 결코 이렇게 바알과 정면으로 무식하게 칼창을 교환할 수 없었을 것이다.

힘이 빠진 이후로는 더 까다로웠다.

로이스의 방벽은 어지간히 힘을 쓰지 않고서는 뚫어 내기 어려웠다. 당장 방금 전에만 해도 방벽을 뚫어 내지 못하고 튕겼다.

“짜증 나게…….”

쉬익-!

바알은 왼손에 들고 있던 창을 크게 휘둘렀다.

정규는 그 창을 견뎌 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곧장 반격할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촤악-!

“크…….”

베어진 것은 정규가 아닌, 바알의 손이었다.

스스로의 손을 잘라 낸 바알은 곧장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정규는 당황해 그 자리에 서서 물었다.

“뭐냐, 이건?”

“이 정도는 반나절이면 나아.”

“잘린 팔도 재생되냐? 그거 진짜 편하고 좋겠네. 근데 내 질문은 그런 뜻이 아닌데?”

“그럼?”

“지금 겁먹어서 도망친 거 맞냐고.”

명백한 도발이었다.

심기를 흔들어 보겠다는 의도가 명백하다. 바알은 잠깐이지만 발끈해서 다시 앞으로 나갈 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 상태로는 너희 둘 다 이기기 힘들겠더군. 이상 할 만큼 머리도 어지럽고, 거슬리는 것투성이야.”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다.

당장 재생력이 뛰어난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측, 츠윽-

베어지고 뚫린 살이 눈에 보일 만큼 빠르게 아문다. 지금껏 흘린 피도 상당할 텐데, 정규의 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무슨 깡으로 부딪혔는지 알겠군. 형편없는 방어력은 저 여자가 보완해 주고, 그 방어를 뚫고 공격을 먹여도 내구력이 받쳐 주고…… 부족한 공격력은 거리를 좁혀 메운다? 단순 무식해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어.”

처음에는 정규의 싸움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격을 이용해 멀리서 공격하며, 가까운 거리에서는 창으로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는 등 거리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바알은 정규의 싸움이 지나치게 무식하고 생각 없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정규의 싸움은 그야말로 합리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거리와 환경을 만든 것이다.

작게 감탄하는 바알과는 달리, 로이스는 정규를 돌아보며 다른 의미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 역시 무식하게 달려드는 정규를 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싶었던 것이다.

“그런 거였어요?”

“어…… 그런가 본데요?”

정규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로이스의 이마에 작게 힘줄이 돋아났다.

“역시 아무 생각 없었죠?”

“본능적으로 그냥…….”

“못 살겠다, 진짜.”

“하, 하하.”

어색하게 웃는 얼굴을 보며 로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로이스는 ‘본능’적으로 행동했다는 정규의 말에 작게 놀란 상태였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만은 아니네.’

무식하게 바알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을 때는 무슨 생각인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규는 자신의 무식한 회복력을 이용해 바알과의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고 있었다.

‘문제는…….’

로이스는 스스로 손목을 잘라 낸 바알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 사라졌다는 거지.’

파즉, 파즈즉-

바알은 한 손에 들고 있는 창에 전류를 실었다.

“뭐야? 결국 아까와 똑같은…….”

톡-

정규의 얼굴 위로 굵은 빗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공동의 천장을 덮은 시커먼 먹구름에서 한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졌다. 먹구름은 금방이라도 비와 번개를 쏟아 낼 것만 같았다.

“……아니네.”

파즉-

콰릉, 콰르르릉-!

먹구름에서 번개가 내려쳤다.

로이스는 급히 정규와 자신의 몸에 방벽을 둘렀다. 정규 역시 천룡인을 발동시켜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즈즉, 치이익-

번개가 떨어진 곳은 두 사람의 머리 위가 아니었다.

바알이 쥐고 있는 창.

공동의 천장을 뒤덮은 먹구름에서 내려친 번개는 그가 들고 있던 창끝으로 떨어졌다.

“지금 여기서 끌어모을 수 있는 힘은 이 정도가 한계군. 진짜 빌어먹을 공간이야.”

바알은 자신의 창끝에 모인 힘이 영 성에 차지 않는지 불평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정작 그 힘을 정면에서 마주 보고 있는 정규는 얼굴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뭐야, 진짜 저건.’

평범한 전격이 아니었다.

창에 흐르고 있는 전격은 마기로 이루어져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힘은 지금껏 정규가 마주한 어떤 힘보다 더 거대했다.

‘저 정도면…… 아까 본 플뤼톤이라는 마왕과 비교해도 안 꿀리겠는데?’

꿀꺽-

절로 마른침이 목으로 넘어갔다.

긴장과 함께 직감이 들었다.

‘이게 마지막.’

이것만 견뎌 낸다면 뒤는 없다.

바알 역시 지금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고 있는 것이다.

그의 몸 상태는 자신보다 더 나쁘면 나빴지 좋을 게 없었다. 더군다나 손 하나도 잘려 나간 상태.

그런 상태로 이렇게 큰 힘을 사용한다는 건, 밑바닥까지 힘을 쥐어짜고 있다는 뜻이었다.

파즉, 파즈즈즈즉-

창이 머리 뒤로 올라가며 검은 전격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정규는 눈을 발갛게 붉히며 두 다리를 바닥에 굳건히 세웠다. 검을 앞으로 들어 올린 채, 몸에 천병갑을 두르고 밑바닥까지 마력을 그러모았다.

로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바알의 다음 공격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력을 한꺼번에 집중시킨 그녀는 언제든지 최고의 방벽을 펼쳐 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후웁-”

바알의 몸이 크게 뒤로 휘어진다.

휘두르는 게 아니라 던지는 자세다.

뒤로 기울였던 몸이 다시 앞으로 향하는 것과 함께, 바알은 손에 들고 있던 창을 있는 힘껏 집어 던졌다.

콰아아아아아-

눈앞으로 날아오는 창이 느리게 보인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정규는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힘이 필요하지 않나?

악마보다도 더 달콤한 속삭임.

매번 발악하듯 그 속삭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필요해.’

우드드득-

짧은 순간.

정규의 온몸에 힘줄이 돋아났다. 창끝을 향해 정규의 검이 느리게 뻗어 갔다.

콰직, 콰드득-

로이스가 만들어 낸 방벽을 뚫고 창끝이 다가온다.

곧이어.

콰릉-!

정규의 검과 바알이 내던진 창이 충돌하며 천둥이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