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ve

175Pm.

하늘이 어두워진 건 금방이었다.

중간지역에 우거진 거대한 나무들, 그 숲을 빠져나온 건 검은 뱀을 만나고 꼭 반나절이 되기 전이었다.

중간지역을 빠져나와 그들이 처음 마주한 건 그랜드 마운틴과 꼭 닮아 있는 거대한 산맥이었다.

일행은 그 산맥을 올라, 정상에서 아래로 펼쳐진 광활한 땅을 내려다보았다.

“하늘이…….”

로이스는 멀리 펼쳐져 있는 땅과 하늘을 바라보았다.

언뜻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땅과 하늘이었다. 하지만 산맥 위에서 바라본 땅과 하늘은 그 느낌이 전혀 달랐다.

시간이 지나 밤이 되고, 날이 어두워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숲을 빠져나온 일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그 하늘은 언뜻 붉은색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느낌이 싸하네요.”

“마귀숲 같기도 하고…….”

붉은 땅과 하늘.

마치 피에 절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분위기만 놓고 보면 마치 나무가 없는 마귀숲을 보고 있는 듯했다.

‘여기가 바로…….’

심장이 빠르게 뛰는 듯했다.

윤재는 숨을 차분하게 골랐다. 눈을 감자, 머릿속에 넓은 지도가 펼쳐지는 듯했다.

-산맥, 붉은 별, 머리…….

지도와 함께 머릿속에 글자들이 떠올랐다.

지도는 조금씩 완성되어 갔다. 윤재는 눈을 작게 뜨고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형? 뭘 보고 있는…….”

“쉿.”

윤재의 어깨를 잡아 흔들려는 정규를 향해, 로이스가 급히 입을 가렸다.

어느새 다른 이들 역시 가만히 윤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규는 급히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고 윤재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동안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던 윤재가 입을 열었다.

“일단 내려가 보죠.”

“뭘 보고 있었지?”

“……지도.”

“지도?”

윤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지도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대충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안내할 수 있겠나?”

“일단 가 보는 거죠.”

그렇게 말하는 윤재의 시선은 여전히 한 곳에 박혀 있었다.

그 뒤부터 앞장서게 된 사람은 윤재였다. 윤재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 앞장서며 움직였다.

‘그리 멀지 않아.’

윤재는 산맥을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타고 움직였다.

몇 시간이나 걸었을까.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고 긴 산맥을 따라 움직이다, 윤재는 어느 곳에서 걸음을 우뚝 멈춰 섰다. 윤재의 시선은 머리 위로 향해 있었다.

“왜 그래요?”

“……맞죠?”

“네?”

“저 별, 저희 머리 위로 온 것 맞죠?”

윤재의 물음에 그 뒤를 따라온 일행은 윤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별?

정규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음…… 뭘 말하는 거예요?”

“저도 못 찾겠는데요.”

“나도 못 찾겠는데.”

다들 같은 말이었다.

반면 윤재는 정확히 한 곳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게 안 보인다고?’

윤재가 이 방향으로 걸어온 까닭은 하나였다.

유난히 밝게 보이던 붉은 별. 그 별을 따라 계속해서 걸어온 것이다.

그런데 움직이는 건 자신들뿐만이 아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붉은 별은 함께 움직여 어느새 자신의 머리 위로 와 있었다.

-산맥을 따라 움직여, 붉은 별을 머리 위에 두어라.

신전에 적혀 있던 문구.

윤재는 그 문구를 기억하고, 그것을 토대로 지도를 만들었다. 윤재의 머릿속에 그려졌던 지도는 바로 거대한 산맥을 따라 걷는 길이었다.

“벌써 찾은 건가?”

김진석은 윤재의 눈치가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핵심을 꼬집어 물었다.

윤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고는 고개를 아래로 숙여, 서 있던 바닥을 발로 쿵 두드렸다.

“……찾은 것 같습니다.”

“이 아래?”

“네, 아마도.”

윤재의 대답에 로이스는 무릎을 굽히고 서 있던 바닥을 손으로 짚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집중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래 공간이 있어요. 입구는 그리 크지 않은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커져요.”

“여기가 입구라는 건가?”

“네. 그런데 깊이가 좀 깊어요. 수십 미터는 되겠어요.”

“그 정도야 뭐.”

김진석과 엘빈이 동시에 움직였다. 두 사람은 검을 뽑아 들고, 같은 자세로 아래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스아악-

핏, 피픽-

무언가 베어지는 소리.

검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로이스는 두 사람이 뭘 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꽉 잡으세요.”

텁-

윤재는 로이스의 옷깃을 꽉 움켜잡았다.

“네? 뭘 잡으라는…….”

그 순간.

쿠르르르-

콰릉, 콰르르-

일행이 서 있던 땅 아래가 조각조각 베어져 무너져 내렸다.

균형을 잃은 로이스와는 달리, 다른 네 사람은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바위들을 가볍게 밟으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깊이는 끝도 없었다. 수십 미터 두께의 땅을 베어 내자, 그 아래로는 그보다 수십 배는 더 깊은 지하가 나타난 것이다.

‘산맥 자체가 거대한 던전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건가?’

윤재는 마병갑을 만들어 밟으며 천천히 내려갔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깊은 지하. 윤재는 눈에 마력을 담아 그 내부를 구석구석 살폈다.

‘가라안과 구조는 비슷하군.’

인간들이 살아가던 도시, 가라안.

그 지하는 전부 거대한 던전으로 되어 있었다. 도시와 산맥의 차이일 뿐, 산맥의 지하가 전부 거대한 던전으로 되어 있다는 맥락은 비슷했다.

쉬익- 탁-

타닥-

벽을 타고 내려온 일행은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윤재는 잡고 있던 로이스를 살며시 바닥에 내려놓고는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얼마나 내려온 거지?’

산맥의 높이는 수천 미터에 달했다. 그 아래로 쭉 내려온 거니, 떨어진 높이도 그만큼 깊다는 뜻이었다.

‘여기가 입구가 맞긴 한가 보군.’

산맥의 깊은 지하에 위치한 거대 던전 중 위가 이만큼 뻥 뚫려 있는 장소는 이곳뿐이었다.

수십 미터라는 두꺼운 지면이 위치해 있다지만, 그 정도면 부수고 내려오지 못할 것도 없었다.

던전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형태라는 건 분명 특이했다.

만약 단서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이렇게 가까이에 조각이 위치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후아, 후- 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갑작스러운 낙하에 로이스는 심장이 거세게 뛰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체 김진석과 엘빈이 뭘 하나 했는데, 수십 미터 깊이의 땅을 그대로 조각조각 베어 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뭘 할 거면 말이라도 해 주면 안 돼? 깜짝 놀랐네.”

“너 높은 곳 무서워했었나?”

“고소공포증 없어도 이 정도 높이면 누구나 무서워할걸?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지.”

태연한 엘빈의 물음에 로이스는 질린다는 얼굴로 다른 이들을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심지어 믿었던 정규마저도 별로 무서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저 형이랑 같이 다니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어서요.”

그런 로이스의 시선을 알아챘는지 정규는 머쓱한 얼굴로 변명했다. 로이스는 못 살겠다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일단 여기가 맞긴 맞는 거죠?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네요.”

“저도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어떻게 하죠?”

로이스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윤재에게로 집중되었다.

당장 이곳까지 오는 길을 안내한 사람은 윤재였다. 신전에 남겨져 있던 문자들을 통해 조각이 위치한 장소까지 오는 길을 파악한 것이다.

지하는 보통 넓은 게 아니었다. 당장 맨몸으로 이 안을 다 뒤지려 한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다 뒤져 봐야죠. 뭐 어쩌겠어요.”

“길 몰라요?”

“제가 무슨 네비게이션입니까?”

“에이.”

길을 알 수 없다면 결국 일일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고생길이 훤히 열린 것이다.

김진석은 지하의 벽면을 살피다 안쪽으로 들어가는 넓은 통로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큼지막한 문 하나가 있는 게 보였다.

“잠시 쉬고 움직이지. 급하게 중간지역을 넘어오느라 다들 지쳤을 텐데.”

김진석은 곧바로 움직이는 대신, 잠시 쉬어 가는 쪽을 택했다. 물론 반대는 있었다.

“바로 움직이지 않는 겁니까?”

바로 엘빈이었다.

하루 정도 강행군을 하긴 했지만, 달리 부상을 입은 사람도 없고 체력이 크게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당장 조각이 있는 던전을 발견한 이 시점에서 일정을 늦출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함부로 움직일 순 없지.”

하지만 김진석의 생각은 엘빈과는 달랐다.

“아마 저기가 중간지역보다 훨씬 위험할 테니까.”

“그 정도입니까?”

“우리 쪽 조각을 미리 회수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아나?”

김진석의 물음에 엘빈은 설마 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겁니까?”

“처음 조각이 있는 위치가 마귀숲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나와 백천은 그걸 회수하려고 했다. 랭커 열 명을 데리고 말이야.”

김진석은 그렇게 말하며 윤재를 돌아보았다.

“결과는 저 녀석이 잘 알 테고.”

“실패했죠. 아까운 랭커 한 명만 잃고.”

당시 엘빈과 로이스는 곧 있을 전쟁을 앞두고 클랜의 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반면 김진석과 백천은 하얀탑 클랜의 랭커들과 함께 조각의 회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조각의 회수는 중요한 일이었다.

물론 윤재에게 필요한 조각은 악마와 천사들 진영에 있는 두 개의 조각이었다. 인간들 측의 조각이 필요한 건 악마와 천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조각이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조각의 회수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회수하려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애꿎은 랭커들만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여차해서 김진석 씨나 백천 씨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전쟁의 결과마저 장담하지 못하게 될 테고 말입니다.”

조각의 회수보다 중요한 일.

그것은 바로 전쟁의 승패였다.

조각을 회수하기 위한 작업을 하던 중, 애꿎은 랭커를 잃거나 백천이나 김진석과 같은 고급 인력을 잃게 된다면 그것보다 최악은 없었다.

조각의 회수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살아남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럼 마귀숲에 있는 조각은 회수를 포기한 건가?”

“포기한 건 아닙니다. 다만, 부가적인 문제인 만큼 조금 늦춰졌을 뿐입니다. 저희에게 필요한 건 여기에 있는 조각이니까요.”

“그건 나중에 찾는다는 소리냐?”

“그래야죠. 아무래도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게 나을 테니까.”

조각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 건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것은 조각을 손에 쥐지 않고서는 확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성배를 얻기 위한 자격이자 단서인 것만은 분명했다.

‘아니, 단서인 것만은 아니지.’

조각.

신전에는 그것이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것도 일단 이쪽에 있는 조각을 회수했을 때의 이야기지.”

윤재의 말을 김진석이 받았다.

조각이 있는 던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엘빈은 김진석의 목소리에 의아한 듯이 물었다.

“그 정도입니까?”

“뭐, 어쩌면…….”

김진석은 다른 이들을 쭉 훑어보며 대답했다.

“여기서 몇 명은 죽을지도 모르지.”

* * *

타닥, 탁-

화르륵-

절벽을 올라 산맥 위에서 가져온 마른 나뭇가지들을 태워 모닥불을 만들었다.

김진석은 오랫동안 이곳저곳을 떠돌며 노숙에도 제법 일가견이 있었다. 오죽하면 모닥불을 편하게 태우기 위해 불 계열의 스킬을 하나 익혀 두었을 정도였다.

서늘한 한기 정도에 몸이 상할 리는 없지만, 애초에 쉬어 가려는 이유가 이 자리에서 컨디션을 최상으로 회복하는 것이었다.

모닥불로 한기를 피하고 바닥에 요를 덮자, 노숙을 하기에 제법 그럴싸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뭐 해요?”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는 윤재를 보며, 누워 있던 정규가 물었다.

정규는 눈을 비비더니 윤재의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또 일기예요?”

“그냥, 틈틈이 보는 거지.”

윤재는 모닥불에 일기를 비춰 읽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이제 막 잠들었는지 미동조차 없었다.

“형도 참 대단하네요. 그걸 매일 보는 걸 보면.”

“그러냐?”

“거기 뭘 적었던 건데요? 이제 슬슬 궁금해지려 하네.”

“남의 일기 함부로 보는 거 아니다.”

“그건 알지만.”

“안 자냐?”

“잠깐 눈은 붙였어요.”

정규는 그렇게 말하며 베고 있던 팔을 바꾸며 반대로 돌아누웠다.

“일기를 보면, 옛날 생각 안 나요?”

“나지, 당연히.”

“그럼 안 괴로워요? 저는 막, 옛날에 정말 좋던 일을 떠올리고 그러면 괴롭던데.”

“왜?”

“지금 좋은 게 아니잖아요. 옛날 일이지. 그렇게 좋던 일들이 지금은 그저 상상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니까요.”

“대조되어 보여서 더 괴롭다고?”

“그런 거죠. 그래서 전 아마…… 형 같은 일이 있었으면 다 치워 버렸을 거예요. 옛날에 좋았던 일들이 제 눈앞에 아른거리지 않도록.”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지금껏 정규의 앞에서 일기를 꺼냈던 적은 많았지만, 그가 이런 식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처음이었다.

아마 그 나름대로 조심했던 것이리라.

“괴롭지, 당연히. 나라고 안 괴롭겠냐.”

행복했던 만큼 이별은 고통스럽다.

그 행복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놓쳤을 때의 고통은 배가 되어 가슴을 후비기 마련이었다. 윤재는 가족을 잃었을 때, 그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데 그래도, 아직 꿈에서 둘이 나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아직도 꿈에 나와요?”

“그럼, 나오지. 내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인데.”

“힘들지 않아요?”

“도망은 안 치려고.”

윤재의 대답에 정규는 순간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말이 어려웠나 싶어, 윤재는 그 뒤에 말을 덧붙였다.

“그냥…… 그렇잖아. 떠올리는 게 힘들다고 해서 눈을 돌리고 머리에서 잊고, 그런 거. 비겁하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괴로운 만큼 그들을 생각할 때만큼 행복한 때도 없더라고.”

“괴로운데 행복하다고요?”

“그래서 썼지. 이 일기도.”

윤재는 일기장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처음 이걸 쓰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못 견딜 만큼 힘들더라. 근데 쓰다 보니까, 그래도 내가 아내와 딸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옛날 일들을 떠올리면서 조금이라도 지금을 잊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계속 쓰게 되더라고.”

“지금도 쓰고 있어요, 그럼?”

“아니.”

윤재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안 써.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니까.”

“정말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 믿어.”

이면세계가 가진 신비함은 기존의 상식을 무시한다.

잠시 정규에게로 돌아갔던 시선이 다시 일기로 돌아왔다. 윤재는 입술을 잘게 깨물며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이미, 난 기적을 봤으니까.”

“기적?”

정규는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자세한 대답을 원하는 듯했으나, 윤재는 다시금 일기로 시선을 돌렸다.

‘이쪽 세상으로 넘어온 걸 말하는 건가?’

정규는 윤재가 말한 ‘기적’이 이면세계 자체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겠지만, 윤재에게는 기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정규는 그렇게 이해하고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사락-

윤재는 일기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다시 펼쳐진 일기장.

‘나는 여기 왔었다.’

악마들과의 전쟁 이후.

새로 펼쳐진 일기장에는 그 이후, 악마 진영으로 넘어온 자신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