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ve

180.00.

쩍, 쩌저적-

파캉- 카카캉-!

눈앞의 풍경이 깨어지고 무너져 내린다. 윤재는 무너지는 세상에 혼자 서서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나타나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캉, 카카캉-

깨어진 파편들이 바닥에 떨어져 녹아내렸다. 윤재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형?”

“윤재 씨!”

쭉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윤재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정규는 그사이에도 또 뭘 먹고 있었는지, 손에 있던 건포도를 입에 털어 넣고 있었다.

“어떻게 됐지?”

“열쇠는?”

엘빈과 김진석이 연달아 물었다.

윤재는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는 얼굴이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윤재는 정규의 물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 대답에 다른 일행은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모르겠다니?”

“설마 조각이 없었던 건가요?”

로이스가 다급한 얼굴로 물었다.

만약 이곳에서 조각을 회수하지 못했다면, 애써 먼 길을 온 일이 허사가 되는 건 물론이고 앞으로도 고생문이 훤히 열리게 된 것이다.

“없진 않았습니다. 있었는데…….”

“있었는데? 가져오지 못한 건가요?”

“그것도 아닙니다만…….”

“그럼요?”

로이스는 답답하다는 얼굴로 반복해서 물었다.

윤재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여…… 기?”

윤재가 손으로 가리킨 곳.

그곳은 바로 자신의 배였다.

그 대답에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김진석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걸 왜 주워 먹어?”

“먹으라는 걸 어쩝니까?”

“그 말은, 조각을 누가 먹으라고 했다는 거냐?”

“네.”

“그걸 먹으란다고 진짜 먹어?”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보다 성배나 조각에 대해 훨씬 더 잘 아는 존재이기도 했으니까요.”

윤재는 그렇게 말하며 아리안과 신전에 대해 설명했다.

조각이 숨겨져 있던 던전이 튜토리얼과 이어져 있다는 것은 그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그 신전은 이 던전 안에 있는 건가?”

엘빈의 물음에 윤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아닐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다시 거길 갈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거든요.”

윤재는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방금 전, 윤재가 돌아온 그 자리.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길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신전이 있는 곳으로 들어섰는지는 모른다. 그저 어느 순간, 족쇄가 반응하며 길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이제는 강제로 신전 밖으로 내쫓겨진 상태였다. 아마 다시 그곳으로 들어갈 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조각은 네 뱃속에 들어 있는 건가?”

“아마 그럴 겁니다. 아리안의 말대로 삼켰으니까요.”

“뭐가 달라진 건 없고?”

“딱히 뭐가 달라진 느낌은…….”

“배를 갈라볼 수도 없고, 난감하군.”

“왜 없습니까? 다시 닫으면 되지.”

김진석의 중얼거림에 엘빈은 간단하다는 듯, 검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윤재는 성큼 뒤로 물러나며 엘빈에게서 멀어졌다.

“가까이 오지 마시죠.”

“장난이다. 진지하기는.”

“……장난 같지가 않아서요.”

배를 가른다고 죽지야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바로 죽을 만큼 명줄이 짧은 것도 아니거니와, 곧바로 회복도 가능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뱃속을 확인해 보겠다며 덤비는데 기겁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윤재는 엘빈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윤재는 김진석을 향해 물었다.

윤재를 중심으로 뭉쳐져 있지만, 사실상 지금 일행의 최종 결정권자는 김진석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조각의 회수가 끝난 즉시 바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조금 난감한 부분이 있었다.

조각을 회수하기는 했지만 손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지고 있다고 해도 특별히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

윤재의 물음에 김진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일단 나가지. 저 밖에 있는 녀석도 언제 회복할지 모르니까.”

밖에 있는 녀석이란 발록을 뜻했다.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는 발록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서서히 몸을 회복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가서는요?”

“바로 돌아가진 않는다. 네가 회수한 게 조각이 맞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김진석은 윤재가 아리안에게서 받아 온 것이 조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두고 이야기했다.

조각으로 의심할 만한 다른 물건을 찾거나 윤재가 얻어 온 것이 조각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드는 것.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다름 아닌 ‘확신’이었다.

‘확신이라…….’

윤재는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조각을 떠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리안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삼키면 알게 될 거라고.

그런데 윤재는 아직까지는 대체 조각이 어떤 물건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 * *

윤재를 비롯한 일행이 중간지역을 통해 길을 건너간 것도 한 달이 넘었다.

아르한은 그들을 기다리며 마귀숲에 있는 조각을 회수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수십의 랭커들이 그 주위에 도열하고, 내부를 훑어보는 설계사들을 보내기도 했다.

“던전의 내부는 기본적으로 미로처럼 얽혀 있습니다. 이것은 따로 탐지 계열의 스킬을 가진 랭커들을 통해 만들어 낸 지도입니다.”

“수고했다.”

리 차홍의 보고에 아르한은 그가 내민 지도를 받아 들며 대답했다.

그는 집무실 책상에 앉아 지도를 받아 그것을 훑어보며 물었다.

“이것 외에, 그 안에 있는 괴물의 종류에 대해 알아낸 건?”

“몇 가지 종류에 대한 공략은 그 뒤쪽에 적어 두었습니다. 다만 아직 깊숙한 곳까지는 제대로 알아낸 게 없습니다.”

“그만큼 복잡한 건가?”

“복잡하기보다는 위험성이 커서 더 이상 다가갈 수가 없다는 게 설계사들의 의견입니다.”

“위험성? 설계사들이 몇 명인데?”

“열 명 정도를 보냈습니다만, 그래도 위험한 모양입니다. 실제로 탐색 도중 베테랑 설계사 두 명이 사망했습니다.”

“두 명이?”

설계사는 기본적으로 준랭커 이상의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번 탐사에는 그런 설계사들 중에서도 베테랑, 특히 실력이 있는 해당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 설계사 두 명이 죽었다는 건 꽤 뼈아픈 손실이었다. 설계사는 단순한 랭커처럼 실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생존과 탐색 능력이 출중한 고급 인력이었다.

“백천 녀석이 같이 있는데도 그렇게 희생되었다고?”

“네. 백천 씨 역시 급히 돌아온 모양입니다. 뚫으려 한다면 못 뚫을 건 없지만, 그렇게 된다면 꽤 많은 설계사들이 희생될 거라면서요.”

“아무래도 여기까지 해야겠군.”

“네. 설계사들 역시 더 이상의 탐색은 어렵다는 의견입니다.”

“좋아. 탐색은 여기까지. 다음은 김진석이 돌아오면 마저 시작하도록 하지.”

문제는 실력이었다.

설계사들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김진석이나 백천과 같은 실력자는 없었다.

그들 한 명이 수십 명의 랭커 해당자들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수십 명의 설계사들을 희생시키는 것보다 김진석 한 명을 움직이는 게 효율적으로 백 배 나았다.

‘뭐, 실력 면에서는 그쪽이 다른 설계사들보다 훨씬 낫겠지.’

김진석을 비롯해 윤재를 따라간 일행들.

그들은 일종의 드림팀이었다.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랭커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할 뿐 아니라 서로 간의 합도 잘 맞아떨어졌다.

설계사들을 이용해 탐색하는 까닭은 그들이 조각을 회수하는 걸 보다 수월하게 하기 위함일 뿐, 그들을 통해 조각을 회수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알았다. 보고는 됐으니 이만 돌아가서 쉬어. 탐색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감사합니다.”

리 차홍은 아르한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가 막 아르한의 집무실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덜컥-

문이 바깥쪽으로 급하게 열렸다. 리 차홍은 집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백천 씨? 몸이 왜…….”

온몸에 피를 뚝뚝 흘리며 들어온 사람.

그는 바로 백천이었다.

온몸이 넝마가 되다시피 한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성큼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르한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르한은 백천이 이렇게까지 다친 건 지금껏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냐? 그 꼴은 뭐고?”

“조각이 털렸다.”

“……뭐?”

백천의 대답에 앉아 있던 아르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백천의 대답에 앉아 있던 아르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평소 어지간한 일에는 그리 잘 놀라지 않던 아르한이었다. 그것은 악마들이 길을 완성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해 봐.”

아르한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그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상이 스쳐 지나갔다. 백천의 부상과 함께 조각이 사라진 거라면 예상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천사…….”

아르한의 물음에 백천은 힘에 부쳤는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대답했다.

“천사가 길을 건너왔다.”

불길한 예상은 늘, 틀린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