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ve

229.

저벅, 저벅-

미카엘은 느린 걸음으로 윤재를 향해 다가왔다.

라구엘과 아나엘은 각자 상처를 치료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수많은 천사들은 대천사들의 지시를 받아 반듯하게 도열해 있었다.

윤재를 비롯한 다른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각자 상처를 치료하고, 숨을 골랐다. 너무 오래, 지치도록 싸웠다. 승패는 정해졌지만, 상처를 입었다는 건 다 똑같았다.

이윽고 세 명의 대천사와 윤재가 마주 보았다.

“이제 슬슬 이야기해 줬으면 하는군.”

비교적 가장 멀쩡해 보이는 천사는 미카엘이었다.

그는 윤재의 앞에 당당하게 서서 눈을 부릅뜨고 다섯 명의 일행을 훑어보았다. 그런 미카엘의 눈에는 살기가 번뜩였다.

미카엘과 눈을 마주하는 윤재는 그 분노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다르긴 다르군.’

그는 메타트론의 죽음에 분노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그것에 무덤덤해 하는 건 아니었다. 천왕의 죽음은 분명 미카엘에게도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충격과 분노가 다른 천사들에 비해 적었다. 그가 진정으로 분노하고 있는 것은 다른 천사들의 죽음이었다.

미카엘의 입장에서 윤재를 비롯한 일행은 자신의 수하들을 죽인 적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과 이렇게 마주 보고 대화를 하려 하는 까닭은 하나뿐이었다.

“말해 봐라.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뭐지?”

윤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

사실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하나였다.

이미 천사들의 열쇠인 메타트론이 죽고 윤재를 비롯한 인간들 쪽이 승리한 마당이었다. ‘다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은 즉 천사들‘도’ 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열쇠가 죽었다면 결국 성배를 얻고, 죽게 되는 건 천사들과 악마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윤재는 그것을 거부할 방법을 제시하려 하고 있었다.

“선택은 너희가 해라. 이대로 죽는 걸 기다릴지, 아니면…….”

윤재는 미카엘을 비롯한 세 명의 대천사,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천사들을 죽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 세상에 맞서 발악해 볼지 말이야.”

“발악……?”

미카엘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윤재의 눈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맞서 발악해 보자니? 도무지 그 말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세히 말하지.”

“메타트론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 보군. 아니면 모르고 있었거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열쇠를 잃고 전쟁에서 패한 종족은 사라진다. 그건 알고 있겠지?”

“그래. 알지.”

그걸 위해서라도 미카엘은 지금껏 메타트론을 거스를 수 없었다.

메타트론이 죽게 되면, 사실상 천사들 전부가 죽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이쪽 세상에서 열쇠란 그런 존재였다.

“왜 그런지는 아나?”

“왜냐고……?”

윤재의 물음에 미카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해 본 적 없었던 문제였다. 아니, 생각해 본다고 해도 답을 알 수 없었던 문제였다.

그렇기에 그냥 넘길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싸워서 이긴다면 사라지는 문제였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윤재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너는 이유를 아는 건가?”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그게 무슨 무책임한…….”

“이제 확인해 볼 생각이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이야기지. 일단 들어 봐. 손해는 아닐 테니까.”

“…….”

미카엘은 잠시 윤재를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라구엘과 아나엘 역시 윤재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눈치였다.

“계속 말해 봐라.”

“너희는 이쪽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만들어져? 그게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야. 만들어졌다. 이게 내 생각이다.”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대천사들.

그리고 다른 일행을 죽 둘러보며 윤재는 계속해서 폭탄 같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조각과 성배, 튜토리얼이라는 관문. 중간지역과 그곳을 지키고 전쟁을 조율하는 용들. 과연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운 세상일까?”

윤재의 물음에 모두는 생각에 잠겼다.

만들어진 세상.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이야기였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생각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잠깐 스쳐 갈 수는 있어도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확실히, 자연스러운 세상은 아니지.’

그거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들어오는데 자격을 묻는 세상이라니. 더군다나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이라는 건 더더욱 이상하다.

세상이 만들어졌다?

미카엘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그런 이유로, 이 세상이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이유가 없지는 않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 좋아. 이쪽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치지. 그런데?”

“성배를 얻기 위한 전쟁. 조각의 쟁탈과 두 종족의 말살이라는 결과. 그걸 정한 게 누구일까?”

“너는 알고 있다는 건가?”

“짐작은 하고 있지. 그걸 확신할 수만 있다면, 방법을 찾을 테고.”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군.”

“너희에게 나쁠 건 없잖아? 어차피 이대로 가면 다 죽는 건데 말이야.”

윤재의 말에 미카엘은 잠시 울컥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면세계의 법칙대로라면 윤재가 성배를 손에 넣는 순간, 자신들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어차피 지금 싸움에 승산은 없다.’

미카엘은 라구엘과 아나엘을 비롯한 천사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에 이어, 윤재와 함께 있는 일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싸운다 한들 이길 수 있을까 싶었다.

불가능하다. 김진석은 물론 다른 일행들 역시 문제였다.

메타트론을 비롯한 세 대천사를 동시에 상대하던 윤재나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김진석만 하더라도 상대하기 버거운데, 다른 세 명도 대천사급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라…….’

시선이 옮겨져, 반듯하게 도열해 있는 천사들에게로 향한다.

라키아에 거주하고 있던 천사들. 아직 다른 도시에는 이 일을 알지 못한 채 평소처럼 살아가고 있는 천사들이 수백, 수천만 명이었다.

이대로라면 그들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깊게 돌려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네 말을 믿어 보도록 하지.”

“미카엘.”

아나엘이 미카엘의 이름을 불렀다.

거기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녀는 천왕을 죽인 인간과 손을 잡는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그녀에게 있어서 윤재는 천왕의 목숨을 앗아 간 원수였다.

하지만…….

“천사들을 다 죽게 둘 수는 없지.”

라구엘 역시 미카엘과 뜻이 같았다.

“방법이 없다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발악이라도 해 봐야 하니까. 그게 우리의 역할 아니겠나?”

“라구엘 님까지…….”

“대천사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갑작스러운 물음에 아나엘은 그 질문의 의도에 차분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천왕을 보필하고…….”

“또?”

“……약하고 힘 없는 천사들을 지키고 수호하는 것입니다. 그 약자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과 삶을 내놓는 것입니다.”

“그래. 그거지. 천왕을 보필한다는 건, 그런 이유지.”

천왕의 보필.

어느 순간부터 대천사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주된 역할로 인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대 천왕부터 지금까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대천사의 자리를 지켜 온 라구엘은 대천사라는 자리가 가지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천왕의 보필은 단지 그 아래에 있는 수많은 천사들을 다스리기 위한 것일 뿐이다. 본래 대천사란 그 아래 있는 힘없는 천사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저들을 살릴 방법이 있다면, 그걸 선택해야 하는 게 당연히 옳다. 나는 미카엘과 뜻을 함께하도록 하겠다.”

“…….”

아나엘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윤재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라구엘과 미카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결정된 건가?”

“이제 네가 말한 그 방법이라는 것만 확실하게 해 주면 좋겠군.”

그것으로 대답은 되었다.

윤재는 입가에 모호한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 * *

윤재를 비롯한 일행은 몸을 치료하고, 쑥대밭이 된 도시를 걸었다.

거대한 폭발로 도시는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무너진 건물은 흙이 되었고,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나 땅속으로 바위 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 바위들이 무엇인지는 뻔히 보였다.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성채. 대천사들과 천왕이 기거하던 라텔이었다.

“여긴가?”

윤재는 저 아래로 보이는 거대한 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폭발의 중심. 라텔이 떨어진 바로 그 장소였다.

“정말 혼자 괜찮겠어요?”

정규의 목소리에 윤재는 뒤를 돌아보았다.

정규는 팔짱을 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따라오고 있었다. 뭐가 그리 불안한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뭐 그리 어려운 거라고.”

“형이 그랬잖아요. 위험하다고.”

“위험하긴 해도, 어려운 건 아니지.”

“뭐가 달라요? 그 말이 그 말이지.”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따라온 게 대단하다 싶었다. 윤재는 문득, 정규를 튜토리얼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형, 저…… 죽기 싫어요. 살고…… 싶어요. 살아서 돌아가고 싶어요.

두려움에 떨며 흐느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때만 해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연약해 보였는데, 지금은 다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다를 게 없었다. 이쪽 세상에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이를 먹지 않으니까. 20년이 넘게 이면세계에서 지내 온 아르한과 백천, 김진석만 하더라도 겉으로는 젊어 보인다.

5년이라는 시간.

그 시간은 정규의 내면을 성장시켰다. 약하고 겁 많던 정규는 더 이상 없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바뀌고, 성장한 사람은 바로 정규였다.

“하긴. 너도 어른이었지.”

“네?”

“아니야, 됐어. 혼잣말이야. 그리고 따라올 필요 없어. 누가 같이 있다고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한데…….”

“멀리 가 있어. 위험하면 내 한 몸 지키는 건 가능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누가 같이 있으면 더 신경 쓰이지.”

윤재의 말에 정규는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걱정이 된다고 해도 윤재의 말대로 자신이 있다고 해서 달리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휘익-

타악-

윤재는 그대로 몸을 날려 거대한 구멍 아래로 뛰어들었다.

그곳에는 무너진 성채가 바위 조각이 되어 널려 있었다. 그 사이를 훑으며 윤재는 손을 뻗었다.

콱, 쉬이이익-

쿵, 쿠쿵-

한 손으로 바위를 번쩍 들어낸 윤재는 그대로 멀리 집어 던졌다.

순식간에 바위 더미가 파헤쳐졌다. 그러자 그 아래로 작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찾았다.’

파악-!

바위를 치워 내는 윤재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우득, 우득-

쾅, 쾅-

얼마 뒤 윤재는 저 아래에서 빛나는 보석 하나를 발견했다. 전보다 빛이 희미해진 보석은 반쯤 깨어져 있었다.

보석을 밖으로 끄집어낸 윤재는 그것을 바라보며 확인했다.

‘이거다.’

천상의 성채 라텔을 유지하던 거대한 에너지원.

그것이 바로 이 보석이었다.

거대한 도시 하나를 날려 버릴 정도의 힘을 방출했으면서도 보석은 아직까지도 빛나고 있었다. 그 힘을 모두 쏟아 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빛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웅, 우우웅-

윤재의 손안에 채워진 족쇄가 떨리기 시작한다.

이 반응은 이제 익숙했다.

바로 방금 전, 메타트론을 죽이고 난 직후에도 이와 같은 느낌을 받았으니까.

확실했다.

“조각…….”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대도시 라키아에 존재하는 조각. 그것은 도시가 아닌, 그 위에 떠 있는 성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천사들은 이것이 조각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겉을 둘러싼 단단한 보석의 틀이 조각의 존재를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보석이 반쯤 깨어지지 않았다면 자신도 이것이 조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보석은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것이 잘못되는 순간, 지금처럼 성채가 아래로 추락하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도시가 날아가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인간들의 땅에 있는 조각이나 악마들의 땅에 있는 조각과는 달리, 천사들의 땅에 있는 조각은 꽤 겉으로 훤히 드러나 있었다.

“후우-”

윤재는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이런 긴장은 오랜만이었다. 수백만에 달하는 천사들과 맞서 싸울 때도 이 정도로 긴장되지는 않았다.

조각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감추고 있는 틀을 깨어 내야 한다. 지금 이 상태로는 조각을 회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아까처럼 폭발할지도 모른다.’

다른 일행들과 천사들에게 멀리 피해 있으라고 한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자칫 조각을 회수하기 위해 보석을 함부로 다루다가 아까와 같은 폭발이 다시 한 번 일어난다면, 겨우 살아남은 목숨을 허무하게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건 혼자 해야 하는 일이었다.

누군가 도와줄 수도 없었다.

‘어차피 이미 목숨은 걸었다.’

검을 뽑아, 검 끝을 조각을 향해 겨눴다.

잔뜩 주위가 갈라진 보석에 검끝을 가져다 대었다. 검을 통해서 조각을 감싸고 있는 보석의 기운이 느껴졌다.

절대 누구도 가져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이.

‘위험하군.’

스윽-

윤재는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 차례 폭발을 일으켰던 보석은 언제 다시 전과 같은 폭발을 일으킬지 모른다.

윤재는 자신의 손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몇 번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는 손을 가져갔다.

지이이이잉-

우웅, 우우우웅-

손과 보석이 접촉한 순간, 윤재의 손안에 있던 족쇄가 다시 한 번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윤재의 눈이 반짝였다.

‘되는 건가?’

메타트론의 몸 안에 있던 조각을 흡수했을 때를 떠올리며 시도해 본 건데, 반응이 있었다.

조각을 감싸고 있는 겉면의 보석. 그 안에 숨어 있는 조각을 따로 흡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행히 예상대로…….’

지이이이이잉-

조각을 감싸고 있던 보석에서 점점 강한 빛이 뿜어졌다.

동시에 윤재는 화들짝 놀라며 보석에 대고 있던 손을 떨어뜨렸다.

“크으…….”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화끈거리는 감각.

동시에 팔 전체로 욱신거리는 통증이 밀려들었다.

‘조각만이 아니라, 감싸고 있는 힘까지……?’

족쇄에 반응한 건 조각만이 아니었다.

조각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힘도 함께 반응한다. 윤재는 잠시 고민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나?’

부수는 건 위험하다.

손을 가져다 대어서 족쇄를 이용해 조각을 흡수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 다 위험을 함께 수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군.’

부수거나 흡수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답은 뻔했다.

턱-

윤재는 다시금 보석의 표면에 손을 가져갔다.

폭발의 위험성보다는 차라리 힘을 흡수하는 과정이 훨씬 덜 위험하다. 혹시라도 힘을 제대로 흡수할 수만 있으면 뜻밖의 수확이 될 수도 있었다.

슷, 스스스스스-

손을 타고 조각과 함께 그 겉을 감싸고 있는 기운이 함께 빨려 들어온다.

그것은 마귀목이 가지고 있던 마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하나의 도시를 날려 버렸을 정도로 힘이 빠져나간 후지만, 그 이후에도 아직 어마어마한 양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크…… 으으으…….”

우득, 우드득-

팔이 뒤틀리고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윤재는 참고 버텼다.

‘어떻게든…… 조각을 흡수할 때까지만…….’

두근, 두근-

마력이 머물고 있는 심장 가운데로 기운이 모여든다. 윤재는 고통을 인내하고, 기운을 한 자리로 모으는 데 집중했다.

‘정제되지 않고 날뛰는 기운은 위험하다. 흡수한 기운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먼저야.’

이렇게 가다가는 조각을 가져오기도 전에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판이었다. 일단 폭주하는 기운을 다스리는 게 먼저였다.

츠읏, 츠츠츠-

기운이 심장에 고리처럼 만들어진다.

정제되지 않은 기운은 윤재의 안내를 거부하고 무작정 날뛰었다.

윤재는 자신이 가진 마력을 이용해 그것을 억눌렀다. 곧 두 개의 기운이 서로 충돌하며 싸우기 시작한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지잉, 지이잉-

곧이어 빛무리 사이로 익숙한 느낌이 모습을 드러냈다.

겉을 감싸고 있던 기운이 들춰지고, 조각이 나타났다. 윤재는 이마에 땀이 맺힌 채 눈을 감고, 그것을 흡수하는 데 집중했다.

‘조금씩, 서두르지 말고…….’

우우우웅-

덜, 덜덜-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팔을 떨던 윤재는 눈을 크게 떴다.

‘지금.’

꽈악-

활짝 펼쳐서 맞대고 있던 손을 떨어뜨리고, 꽉 움켜쥔다. 윤재는 그대로 뒤로 자빠지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아, 하-”

이상할 만큼 지쳤다. 심장도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고, 팔은 저려서 더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방금 전까지 손을 대고 있던 거대한 보석은 빛을 잃은 상태였다. 그나마 남아 있던 힘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끝난 건가?’

두근, 두근-

당장 흡수한 조각보다는 새로 몸 안으로 들어온 기운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아직 자신의 힘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자신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조금씩 날뛰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 앞으로 한참 동안 고생을 할 것 같았다. 이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릴 테니까.

‘그래도…….’

예상치 못한 수확인 것만은 분명했다.

‘썩 나쁘지만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