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ve

241 Coins.

툭, 투둑-

“후우-”

“하아-”

엘빈과 정규는 같은 자세로 드러누웠다. 윤재는 검을 집어넣고 다가와 물었다.

“괜찮습니까?”

“저는 걱정도 안 해요?”

“같이 물어본 거야. 괜찮냐?”

“……아니, 안 괜찮아요.”

당장 움직이는 건 무리더라도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큰 상처는 없고, 힘만 쭉 빠진 상태였으니까.

문제는 거기 있었다.

“이건 뭐…… 상대도 안 되네요.”

허탈감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제법 싸움이 될 줄 알았다. 아니, 엘빈과 함께라면 승산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싸움이 안 된다.

윤재는 엘빈과 정규를 상대로, 두 사람이 지치는 쪽을 유도하며 싸웠다.

윤재가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싸우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라면 충분히 틈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그냥 정면에서 다 받아 낼 줄이야.’

윤재는 정규와 엘빈의 합공을 피하지 않고 받아 냈다.

반격조차 하지 않았다. 어떤 공격을 해도, 모두 막아 냈다.

제풀에 지칠 때까지 전부.

어떤 공격을 해도 막아 냈다. 엘빈이 사용하는 공간 절단 외에는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마저도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만큼 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윤재가 사용하는 힘은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윤재는 그 힘을 사용하며 정규와 엘빈의 힘을 정면에서 동시에 짓눌렀다.

‘많이 따라잡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진 기분이었다.

허탈한 표정을 짓는 정규를 서서 내려다보며 윤재가 입을 열었다.

“그리 쉽지는 않았어. 가끔이지만 위험한 때도 있었으니까.”

“지금 그걸 위안이라고 하는 거예요?”

“정말이다. 안 그랬으면 마지막에 그런 반격도 하지 않았겠지.”

윤재의 말은 진심이었다.

정규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윤재는 진심으로 정규의 실력에 놀라고 있었다.

‘엘빈 씨야 그렇다 쳐도…….’

엘빈의 실력 역시 전보다 훨씬 늘었다.

하지만 정규의 발전은 그야말로 비약적이었다.

만약 조각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정규 한 명과 싸우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에 그건 뭐였지?”

엘빈은 누워 있던 몸을 슬슬 일으키며 물었다.

마지막 순간, 자신과 정규를 동시에 제압한 기운.

그것은 마치 그 자체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좌우에서 윤재의 사각을 노리고 달려들던 찰나, 그 기운이 자신들을 순식간에 제압한 것이다.

“마력은 아니었어. 그렇다고 마기도 아니었고. 조각인가?”

“네. 조각 맞습니다.”

“그건 살아 있기라도 한 건가?”

“가끔씩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기운이긴 하지만…… 살아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죠.”

“그럼 방금 전에 그건 뭐지?”

“그냥…… 거둬들인 겁니다.”

“거둬들여?”

엘빈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가능한 건가? 한 번 밖으로 방출한 힘을 다시 거둬들이는 게?”

마력은 한 번 밖으로 뿜어낸 힘을 다시 거둬들이는 게 불가능했다. 방출되어 제어를 벗어난 힘은 손을 떠나 날아간 비수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순간, 엘빈과 정규를 제압한 힘은 두 사람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제압하는 선에서 그쳤다.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세밀하게 움직인 것이다.

엘빈이 기운이 살아 움직인다고 느낀 까닭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애초에 엘빈은 윤재가 그 기운을 거둬들였다는 가능성 자체를 열어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네.”

하지만 정작, 윤재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한 투로 대답했다.

“가능하더라고요.”

“…….”

엘빈과 정규는 고개를 돌려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이 형, 또 시작이네.’

‘그놈의 조각이 뭔지…….’

다르지만 비슷한 생각.

정규와 엘빈은 마주 보고 고개를 떨어뜨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인지, 자신들의 노력이 허탈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 *

정규와 엘빈은 바로 몸을 치료하기 위해 클랜 하우스로 돌아왔다. 당장 상처를 치료하는 것보다 몸을 쉬는 게 먼저였다.

허탈함에 엘빈은 말이 없어졌다. 정규 역시 느끼고 있는 기분은 다르지 않았다.

‘이게 뭐야.’

영 기분이 찝찝했다.

져도 시원하게 싸웠다는 기분은 아니었다. 윤재가 너무 멀리 가 버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재능과 자격.

이 두 가지를 갖춘 윤재는, 더 이상 따라갈 수가 없었다.

“큭.”

“…….”

“크흠.”

엘빈과 정규는 옆으로 다가와 웃고 있는 로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옆으로는 김진석이 앉아 고개를 돌리고 볼을 씰룩이고 있었다. 딱 봐도 웃음을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금 누구 놀려요? 너무하네, 정말.”

“그러게 왜 덤비냐. 질 게 뻔한데.”

김진석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규는 그가 웃음을 참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길 줄 알았죠.”

퉁명스로운 대답에 김진석이 말을 받았다.

“나도 못 이겼는데?”

“저흰 둘이 같이 싸웠잖아요.”

“너희 둘은 나도 이긴다.”

“……해 보겠습니까?”

누워서 몸을 돌리고 있던 엘빈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진석이 눈매를 가늘게 좁히고 두 사람이 서로의 눈을 노려본다.

따악-!

“뭘 노려봐, 노려보긴.”

“……끙.”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은 로이스를 힐끔 바라보며 엘빈은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돌렸다. 로이스는 휙 정규와 엘빈을 번갈아 보았다.

“둘 다 무슨 쌈닭도 아니고, 허구한 날 쌈질만 하고 다닐래요? 엘빈, 넌 지고 나서 어디서 화풀이야? 정규 씨도 몸 돌볼 생각 안 해요?”

여자는 강했다.

결국 엘빈과 정규는 로이스의 구박에 입을 다물었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입을 닫고 있던 정규는 마침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형은 어디 갔어요?”

윤재는 엘빈과 정규를 부축해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

그 이후 로이스와 김진석이 따로 병문안을 왔는데 윤재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다른 때라면 아무리 바빠도 얼굴 한 번쯤은 비출 윤재였다.

“그 녀석, 바로 돌아갔다.”

“돌아가다니요?”

“가 볼 데가 있다고 하던데.”

“또요?”

그 형은 뭐 이리 많이 돌아다녀?

정규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어이없음이 드러났다. 윤재는 어디 한 곳에서 쉬질 않았다.

“뭐, 꼭 가 봐야 한다니까. 어쩔 수 있나.”

“꼭은 무슨…… 이번엔 또 무슨 일이라는데요?”

정규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섞어 물었다.

대답한 사람은 로이스였다.

“확인할 게 있다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