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ve

253.

수많은 랭커들이 트룸으로 모여들었다.

마천루 클랜의 앞에 모여든 랭커들의 숫자는 근 이천 명에 달했다. 이 정도 숫자의 랭커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악마들과의 전쟁에서도 이 정도나 되는 랭커들이 모이지 않았다.

랭커라고 해서 모두 클랜에 소속되어 있는 건 아니었다. 어느 클랜에도 속해 있지 않은 랭커들도 더러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랭커들마저도 모두 모여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돌아가는 건가?”

“그런 모양인데?”

“십 년 만이군.”

“나는 15년 만이야.”

“드디어 성배를 손에 쥐는 건가? 열쇠라는 녀석, 땡잡았네.”

“땡잡기는. 발록이라는 악마를 잡은 게 누구인지 몰라? 그 녀석은 그럴 자격이 있지.”

성배를 손에 쥔다.

그것은 곧 성배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전쟁의 종결과 함께 자신들이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물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모이지 않은 랭커들 중에서는 이미 이 세상에 완전히 적응한, 오히려 돌아가는 걸 꺼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돌아가서 뭐해?”

“어차피 돌아가 봤자 하루하루 개고생하며 푼돈 받고 살 게 뻔한데.”

“여긴 여자도 있고 돈도 있고 집도 있어.”

“차라리 여기서 계속 살고 싶은데…….”

그런 이유로 참석하지 않은 랭커들이 삼분지 일. 꽤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충분했다. 애초 예상했던 숫자만큼은 모여 있었다.

“생각보다 더 많이 모였는데?”

“그러게. 한 천 명쯤 모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두 배는 되네.”

아르한과 백천은 마천루 클랜의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옥상에는 마천루 클랜의 간부들과 윤재, 정규, 그리고 김진석이 모여 있었다.

하얀탑 클랜의 간부들은 랭커들을 통솔하고 그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중이었다. 이제 진짜 출발할 준비가 갖춰지고 있었다.

“길은 어떻게 됐지?”

“길이 뭐가 중요해? 어차피 우리가 싸워야 할 놈들이 용인데.”

“아 참, 맞다. 그랬지.”

아르한은 그답지 않게 긴장한 모습이었다.

길게 답답한 숨을 내쉬며, 아르한이 중얼거렸다.

“그런 놈들과 싸워야 하다니…….”

하나하나가 마왕이나 대천사와 같은 힘을 가진 존재들. 더군다나 상위의 용일수록 더욱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놈들은 중간지역에 있는 괴물을 다룰 수 있습니다.”

윤재는 거기에 더 절망적인 이야기를 덧붙였다.

“저들의 역할은, 바로 그 괴물을 상대하는 겁니다.”

“……어디 희망적인 구석이 없군.”

수천 명의 랭커들의 역할이 고작해야 괴물을 상대하는 거라니.

하긴, 중간지역의 괴물들 역시 까다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만약 용들이 정말 중간지역의 괴물들을 모두 부릴 수 있다면 검은뱀과 같은 최상위의 괴물들까지도 함께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용들의 숫자가 몇이라고 했지?”

아르한은 마지막으로 상대의 전력을 분석하기 위해 물었다.

“서른…… 명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요.”

정규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이 대답하자, 아르한이 예민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하게 해.”

“서른이 맞을 겁니다. 같이 들었거든요.”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윤재다 다시 대답하자, 아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른이라…….”

많은 수였다.

그들 하나하나가 마왕급에 달하는 존재였으니.

그중는 고룡급에 달하는 괴물도 섞여 있었고, 용들의 우두머리인 가온이라는 용도 함께 있었다.

‘가장 위험한 녀석은 그 녀석이지.’

가온.

용들의 우두머리이자 이 세계를 앞장서서 만들어 낸 존재.

그리고…….

‘발록의 봉인을 푼 것도 녀석이겠지.’

가장 윤재가 우려하는 부분이었다.

발록의 봉인은 자하르가 해 놓은 것이었다. 자하르는 그것이 풀어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힘과 몸을 구속하는 마력은 내부보다는 외부의 충격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외부에서 봉인을 푸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가온이 자하르의 봉인을 풀어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인가?”

백천의 물음에 아르한은 상념을 깨뜨리고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마지막이지.”

“진짜 길었군.”

아르한과 백천, 김진석은 특히나 감회가 새로운 듯한 얼굴이었다.

누가 뭐래도 세 사람은 모든 해당자들 중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이면세계에 머물렀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그들은 원래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컸다.

이번 일만 끝내면 정말 돌아갈 수 있다. 30년에 가까운 기다림의 끝이었다. 아무리 냉정해지려 해도 냉정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돌아가면 다들 술 한 잔씩 하자고.”

“우리 다 나라가 다른데?”

아르한의 말에 백천이 물었다. 세 사람은 다 살고 있는 나라가 달랐다.

“비행기 타고 가면 되죠. 요즘은 비행기 값도 싼데.”

정규가 끼어들어 말하자, 윤재는 방해하지 말라는 듯 뒷덜미를 잡아끌어당겼다. 지금은 세 사람이 따로 이야기 하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서로 친하다지만, 그 안에서도 특히 친한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르한과 백천, 김진석이 바로 그랬다.

세 사람 사이에는 자신과 정규의 사이가 그러하듯, 누군가 들어올 수 없는 높은 벽이 있었다. 그것은 누구라도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견고한 벽이었다.

지금은 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눈치 빠른 윤재의 행동에 백천은 픽 웃으며 말했다.

“하긴. 거리가 뭐 중요해. 만나려고 하면 다 만날 수 있겠지. 좋아, 마시자. 코 삐뚤어지게.”

세 사람은 이미 저쪽 세상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원래 세상에 대한 향수를 가진 모두가 그랬다.

가족, 친구, 집, 고향.

이쪽 세상에서는 가질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단어들.

이 자리는 바로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그럼 다들…….”

아르한은 백천과 김진석, 그리고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꼭 살아서 저쪽 세상에서 만나자고.”

* * *

저벅, 저벅-

2천 명에 달하는 랭커들이 함께 움직였다.

랭커라고는 하지만 그들 중에는 중간지역에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해당자들도 존재했다. 아니, 사실상 중간지역을 모르는 랭커가 절반이 넘었다.

중간지역은 그런 곳이었다.

그만큼 위험하고, 갈 이유가 없는 장소.

설계사가 아니라면 중간지역에 굳이 발을 들여놓을 이유가 없었다.

“……이 인원이 다 같이 움직이니, 좀 그러네요.”

정규는 자신들의 뒤를 따라 움직이는 랭커들을 돌아보더니 작게 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윤재는 정규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가 그렇다는 건데?”

“어색해서요. 저희끼리만 다녔는데, 진짜 전쟁이라도 하러 가는 것 같잖아요.”

윤재와 정규는 지금껏 이렇게 많은 무리 안에서 움직인 적이 드물었다.

머더러 클랜과의 전쟁 당시, 머더러 클랜의 거점을 공격할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외에는 악마들의 침공을 대비해 수비를 하기 위해 진을 치고 대비하고 있었던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수비가 아닌 공격.

지금은 이 많은 랭커들이 먼저 싸움을 걸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다를 거 없어. 우린 천사들과도 싸웠고, 악마들과도 싸웠으니까. 그냥, 의미가 다른 것뿐이야.”

이번 싸움은 분명 의미가 남달랐다.

또한, 상대 역시 남달랐다.

언제나처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 세계의 본질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용들이 발록보다 더 어려운 상대냐고 한다면, 고개가 저어졌다. 윤재 역시 그것은 알지 못했다. 자하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르지.’

윤재는 늘 앞을 알고 싸웠다.

악마들과의 싸움도 그렇고, 천사들과의 싸움도 그랬다. 일기가, 그리고 자하르가 자신을 도와줬다. 상대를 알고, 미래를 알았다. 그 정보는 윤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무기였다.

어쩌면 그것이 조각보다 더 대단한 무기였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었다.

‘미래를 다 알고 있어서겠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니었다.

윤재는 용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저기 옵니다.”

윤재는 멀리 보이는 새하얀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천사들이었다.

가장 앞에는 미카엘과 라구엘, 아나엘이 있었다. 그 뒤로는 수많은 천사장급의 천사들과 고르고 골라진 평천사들이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대충 숫자는 천사들이 더 많았다. 언뜻 봐도 5천은 넘어 보였다.

“딱 맞춰서 왔네요.”

“그러게. 조금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천사들과는 인간들과 천사들의 땅을 가로지르는 ‘길’의 정 중앙에서 만나기로 말을 맞춘 상태였다.

어느 정도는 기다려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천사들 쪽의 채비가 빨리 끝난 모양이었다.

인간들 쪽과 천사들 쪽은 서로 같은 시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쉬익-

탁, 타닥-

미카엘과 라구엘, 아나엘은 윤재와 정규를 비롯한 인간들 쪽 대표의 앞에 착지했다. 그들의 뒤로 착지한 천사들은 행과 열을 맞추어 도열했다.

일사불란한 그들의 움직임에 랭커들이 깜짝 놀랐다.

“이게 전부인가?”

미카엘은 가장 먼저 윤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윤재를 인간들의 대표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숫자는 얼마 안 되지만, 다들 대단한 사람들이라서.”

윤재는 너스레를 떨 듯이 대답했다.

숫자는 적지만, 너희들에 비해 부족하지는 않을 거다. 윤재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저들은 한 명 한 명이 수백, 수천의 해당자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이면세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상식이었다.

윤재의 대답에 미카엘은 랭커들을 죽 훑어보았다. 자신의 눈빛을 받고도 겁을 먹거나 하는 인간이 없었다.

“그런 것 같군.”

하긴, 어련히 잘하겠지 싶기도 했다.

이 싸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윤재였다. 이 싸움의 승패에 따라 자신들의 운명은 물론, 각 종족의 운명이 모두 걸려 있었다.

“가는 길은 알고 있겠지?”

미카엘이 말하는 ‘길’이란 성배가 있는 위치를 의미했다. 열쇠가 아닌 그는 성배가 어디에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윤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자신들이 걸어온 방향의 정 가운데로 향했다.

“그럼,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