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vel’s Villain

< 3. Inspection Price (2) >

연예인을 보는 시청자 입장으로 느긋하게 감상하도록 하자.

최희연을 보고 있는 진우는 그런 심정이었다.

약혼 이야기가 오가기는 했지만 이미 없던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를 위해서도 정말 잘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진우와 엮일 일이 없으니 앞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될 테니 말이다.

진우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시 편한 자세를 잡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그녀를 응원해주기로 했다. 어쨌든 인연이 있었기도 했고, 그 어렵다던 기사가 되었으니 축하해줄 만한 일이었다.

고난의 길을 자처한 그녀의 의지는 칭찬받아 마땅했다.

‘정말 예쁘긴 하네.’

눈이 즐거웠다.

예전에 흔히 회자되던 대한민국 4대 미인보다 몇 단계나 위에 있는 느낌이었다.

아예 다른 차원의 미인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제 명예마저 갖추게 된 그녀는 진정한 스타였다.

[와! 정말 아름다우세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최연소로 기사 자격을 획득하시게 되었는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그런 명예로운 자리에 오를 수 있어 기쁩니다.]

[무엇보다 가족 분들이 굉장히 기뻐하셨을 것 같네요. 혹시 검선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더욱 더 정진하라 하셨습니다.]

[과연 검선다우신 말씀입니다.]

검선 이야기가 나오니 진우는 조금 오싹함을 느꼈다.

속세를 등지고 수련에만 몰두하는 사람이니 앞으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이진우, 이 망할 자식이 깽판을 쳐놓은 전적이 있어 마음 한쪽이 뜨끔했다.

리포터의 질문에 최희연은 짧게 대답했지만 성의 없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올곧은 인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핸드폰으로 포털사이트 다이버에 접속해보니 실시간 검색어 1위였다.

실시간으로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역시 대단한 영향력이었다.

확실히 인기가 있을 만했다.

[예전에 밝히신 바에 따르면 학교에서 공부를 조금 더 한 후에 자격에 도전하실 거라 하셨는데, 일찍 도전하신 계기가 있나요? 갑작스러운 결정에 한동안 대한민국이 술렁였는데요~.]

[······.]

최희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의외로 질문의 질이 상당히 좋았다.

진우도 궁금했던 이유였다.

2년 후에도 여자로서는 최연소 기사 자격이었다. 20대에 기사 자격을 딴 이들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보통 능력자의 각성은 20대 초반인 경우가 많았다.

아주 빠른 경우가 10대 후반이었는데, 이들은 흔히 말하는 천재였다. 그리고 그녀 역시 천재였다.

주인공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기사 자격을 획득하게 될 텐데, 그렇게 된다면 최연소 기사의 이름은 또 한 번 바뀔 것이다.

정보의 마안이 가지는 사기성은 그처럼 큰 것이었다.

진우는 안주를 씹으며 최희연의 대답을 기다렸다.

상당히 궁금했다.

[···쓸모없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네? 감히 누가 우리 최희연 씨에게 그런 폭언을 했을까요? 혹시 악플 같은 건가요?]

[아마도······ 그런 개인적인 이유도 있고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고 싶기도 했습니다. 언제까지 가주의 자리를 비워놓을 수 없으니까요. 차기 후계자로서······.]

진우는 입에 물고 있던 안주를 내려놓고 눈을 껌뻑였다.

잠시 날카롭게 빛난 눈빛이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송곳처럼 느껴졌다.

“혹시 내 이야기는 아니겠지?”

진우는 설마 하며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겨우 약혼 이야기가 오간 약속 자리를 펑크 냈다고 저렇게까지 각성을 할까?

악플 때문에 그렇게 되었겠지.

하지만 원작 설정에서 보면 그녀는 기계 자체를 잘 다루지 못했었다. 작가가 나름 매력 포인트로 집어넣은 듯싶었긴 했지만.

“음······.”

갖은 변명을 하며 애써 부정하고 싶었지만 역시 자신의 탓이 맞는 것 같았다.

잠시 그대로 굳어 있던 진우는 슬쩍 리모컨을 들고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

“···밥이나 먹자.”

생각을 멈추고 그렇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갑자기 드는 불행한 생각은 분명 기분 탓일 것이다.

진우는 피식 웃어 넘겼다.

어쨌든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

***

역시 그날 웃어넘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 불길함을 무시해서는 안 되었다.

안일하게 생각했던 얼마 전의 자신이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니겠지 하면 맞고, 맞겠지 하면 아닌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젠장.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전생이 이진우가 되기 전이라면, 열심히 산 죄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무단 횡단도 웬만해서는 하지 않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전생보다는 현생이 죄겠지.

이진우니까 말이다.

이진우가 싼 똥은 이미 다 떠내려가서 없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렇게 역류를 맞을 줄은 몰랐다.

그동안 너무 술술 풀려 이진우의 삶을 너무 만만히 본 것 같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이겠지. 해도 안 떴잖아.”

“좋은 새벽이라고 하면 어색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랬다.

진우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난 이유는 바로 검선의 초대 때문이었다.

새벽부터 준비를 해야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무시할 수 있었겠지만 만인의 존경을 받는 검선이었다.

검을 쓰는 모든 자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그야말로 검의 신!

살아 있는 전설로써 교과서에 나올 정도였고 은퇴를 했지만 속세를 등지고 수련만 해서 더욱 엄청난 괴물이 되어버렸다.

가문마저 등지고 수련에만 몰두하던 작자가 어째서 자신을 초대한 걸까?

‘아무래도······.’

저번 일 때문인 것 같았다.

이희진 회장이 직접 자신에게 전화해서 마음껏 날뛰고 오라는 이상한 소리를 해서 거절할 수도 없었다.

검선으로부터의 정식 초대, 그리고 이희진 회장에게 전화까지 온 이 마당에서는 어떤 꼼수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희진 회장의 목소리가 기이하게 밝아 보였던 것도 불길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술을 선별해서 익히려 했건만······.’

어제 갑작스럽게 결정되어서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었다. 그 덕에 잠도 제대로 못 잔 진우였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진우와는 다르게 유나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녀 역시 검선을 대단히 존경하는 것 같았다.

“스케줄은?”

“의상 코디, 헤어 스타일링을 받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검선께 드릴 선물을 직접 고르셔야 합니다.”

“···바쁘겠군.”

꼭 혼나러 가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친다고 해도 유나에게 금방 잡힐 것이다.

그리고 이희진 회장의 반응도 두려워 진우는 고개를 설레 저으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가기 싫다.’

꿈지럭꿈지럭대다가 유나에게 한 소리 듣고 나서야 제대로 움직였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와 스타일링을 받기 시작했는데, 거대한 명품관 하나가 진우를 위해 새벽부터 열려 있었다.

물론 진우 이외에 이용하는 이는 없었다.

통째로 전세를 냈기 때문이다.

그냥 옷만 받으면 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다양한 국적의 디자이너가 기다리고 있었다.

“와우!”

“오우!”

“훌륭합니다!”

그들은 진우를 보며 엄청나게 감탄하더니 자기들끼리 회의에 들어갔다.

굉장히 유명한 디자이너였는데, 그들을 만나려면 몇 달 전부터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그런 그들을 전날에 초음속 전세기에 태워서 이곳으로 오게 했다니 그 과정은 특수부대 작전을 방불케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과연 이진우 스케일이었다.

피곤할 법도 했지만 디자이너들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눈빛이 반짝였고 주변에 불 같은 오로라가 보이는 것 같았다.

진우는 최고의 모델이었다.

조각의 신이 내려와 조각을 한다고 해도 이보다 더 이상적인 신체를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완벽한 비율과 이상적인 외모를 지닌 진우에게 진정으로 어울리는 복장이 무엇인지 깊은 토론을 했다.

급기야 말싸움까지 나오고 있었고, 결국 진우는 모두 입어 봐야 했다.

“으, 지치는군.”

“음, 역시 좋군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화려하지 않아 오히려 외모를 더 빛나게 만드는군요.”

최종 낙찰된 복장을 보고 유나가 그렇게 평가했다.

디자이너들은 즉석에서 리폼도 해가며 진우의 몸에 빠르게 맞춰갔다.

진우는 벌써부터 지치는 느낌이었다.

디자이너들은 이대로 보내기 아까운지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그러는 편이 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뜻하지 않은 사진 촬영까지 한 진우였다.

여담이지만 이 사진은 미래전략실의 승인을 받아 다음 달 메이저 패션 잡지에 실리게 된다고 한다.

“자! 할 일이 많습니다. 이동하시지요.”

유나가 진우를 끌고 갔다.

오랜 시간 들여서 헤어 스타일링까지 받았다.

마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예술 작품을 만들듯 스타일링을 했는데, 무슨 소재를 썼는지는 몰라도 아주 자연스럽게 고정이 되었다.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흔들려도 마치 형상기억 합금처럼 돌아왔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판타지 세계이니 그러려니 했다.

이제 들고 갈 선물을 고르러 갈 차례가 되었다.

‘음······.’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이진우가 지은 잘못이 있으니 최대한 취향에 맞는 것들을 고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진우는 예로부터 남 비위 맞추는 데는 선수였다.

그래, 깔끔하게 딱 사과하고 인연을 완전히 끊는 것이다!

진우는 다년간의 영업력으로 다져진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진우는 차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원작을 떠올려 보았다.

검선에 대한 비중은 애초에 그리 크지 않았다.

중반부에 잠깐 나왔다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뿐이었다.

가문의 비급이 첩자들에게 털리고, 차기 가주인 최희연은 이진우에게 유린당하고, 검선마저 사라지니 가문이 풍비박산 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뭐, 이제는 원작대로 가지 않겠지만.

진우는 잡생각을 멈추고 진지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2주일 정도 무단 연중을 하고 오더니 무료로 푼 연재분이 생각났다.

상당한 양아치라서 무료로 푼 것도 외전이었는데, 교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억지 감동을 주려한 점이 오글거리긴 했지만 내용 자체는 못 볼 수준이 아니었다.

단지 댓글에 욕이 많았을 뿐이었다.

내용은 검선과 검선의 아내, 그리고 최희연의 이야기였다.

‘검선의 약점은 마음이라 했던가?’

그런 묘사가 있었던 기억이 났다.

검선은 모든 감정과 욕심을 끊어버리고 검과 하나가 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위해 속세와 연을 끊었던 인물이었다.

다행히 기억력이 좋아진 탓인지 원작의 내용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뗐다.

“부천 쪽에 혜인달이라는 빵집이 아직 있나?”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빵집은 아니고 그저 동네에 있는 작은 빵집이었다.

한데 그곳에서만 파는 빵이 있고, 검선이 그녀의 아내와 자주 갔었다고 한다.

자식을 낳으면 꼭 같이 오자고 약속을 했지만 결국 지킬 수 없었다.

아내는 아들을 낳다가 죽었고, 그 아들 역시 국제 대회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손녀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마음의 상처가 생길 법하기는 한데······.’

외전은 최희연이 그 이야기를 알고 그 빵을 사기 위해 하루종일 고생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검선의 생일 선물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후 검선과 나눠 먹으면서 어색했던 사이가 조금 좋아졌다는 내용이었다.

‘미리 선수 치는 건 좀 그렇지만 뭐, 어때?’

미리미리 화목해지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화목해지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다.

결정을 내리고 빠르게 사람을 보내 빵을 공수했다.

“검선님께서는 선식만 하신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다른 선물도 사가면 되겠지. 뭐, 욕심도 없는 신선이라며?”

“그렇긴 합니다.”

유나는 크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진우는 계속해서 강행했다.

< 3.검문최가(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