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vel’s Villain

< 3. Inspection Price (4) >

청운을 비롯해 모두가 물러났고, 곧 진우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살짝 숨을 내쉬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검선이 정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기골이 장대했고, 그렇게 늙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희진 회장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대단한 위압감이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일신의 무력이 신에 근접했음이 믿겨졌고 어째서 그가 그토록 추앙받는지 알 것 같았다.

검선의 눈이 뜨였다. 안광이 번쩍였는데, 굉장히 신기했다.

무협이나 판타지에서 흔히 말하는 안광 폭사 씬이었다.

분명 이 다음은······.

‘이럴 줄 알았어. 예측된 전개야.’

전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전해져왔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에서 보면 고수들이 상대를 가늠할 때 기운으로 내리 누르곤 하는 아주 고전적인 전개였다.

그 광경이 눈앞에 딱 펼쳐졌다.

예측된 수순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견디기 힘들지도 않았다.

그냥 깊은 물에 있는 것처럼 조금 답답할 뿐이었다.

역시 사람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는 것 같았다.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게 당당한 태도로 가는 거야.’

이런 무인의 앞에서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상당히 무서웠지만 진우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당당한 척했다.

기운이 잦아들었다.

어쨌든 시험 같은 건 통과한 것 같았다.

진우와 검선이 눈을 마주쳤다.

“······.”

어쨌든 기세를 이겨냈으니 이제 무게를 잡겠지.

아마 눈빛을 빛내면서 칭찬을 조금 해주지 않을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개였다.

진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리라.

진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검선의 말을 기다렸다.

검선이 진우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굉장히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놀라운 표정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고, 마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그가 벌떡 일어나 진우에게 다가왔다.

진우는 갑작스러운 검선의 행동에 뒤로 주춤 물러났다.

검선의 벌어진 입에서는 침마저 흐를 것 같았다.

다른 의미로 굉장히 무서웠다.

“만져보자.”

“네?”

“마, 만져 좀 보자.”

검선의 손이 뱀처럼 진우의 몸을 더듬었다.

떨리는 손으로 진우의 몸을 만지더니 눈이 점점 크게 뜨였다. 동공이 흔들렸다. 표정은 어느새 경악으로 물들었다.

“무, 무극지체!!”

“네?”

“게다가 천무지체?!”

“저기······.”

“어억?! 음양지체까지! 어허!”

오랜 세월동안 잔잔한 호수처럼 흔들림 없었던 검선의 평정심이 깨져버렸다.

오욕칠정을 버리려던 수십 년 간의 수련이 이상한 곳에서 허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주화입마가 오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였다.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저 사람을 누가 검선으로 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사정을 전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진우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잠시, 잠시 옷 좀 벗어 보거라!”

“네?”

“몸 좀······ 몸 좀 보자꾸나! 구석구석 살펴봐야 되겠다!”

“자, 잠깐······ 어억!?”

검선이 진우의 옷을 벗기려고 몸을 더듬었다.

진우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뒤로 물러나며 반항했다.

상의가 반쯤 벗겨지려는 순간이었다.

똑똑!

“할아버님, 희연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문이 열리며 최희연이 안으로 들어왔다.

“······.”

셋은 모두 그 자리에 굳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것 또한 흔한 전개였다.

***

삼자대면이 시작되었다.

검선은 이성을 되찾고 근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방금 전 일은 마치 기억에서 삭제했다는 듯 모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여러모로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진우는 최희연을 바라보았다.

기사 정복이 아니라 개량한복 느낌이 나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굉장히 잘 어울렸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에겐 가슴을 찌릿하게 만드는 매력이 존재했다.

‘이진우가 왜 그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집착했는지 알 것 같군.’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갖춘 여인이었다.

생각해보면 주인공의 하렘 중 하나라는 것이 참 기이한 일이었다.

그래도 그걸로 행복하다면 좋은 게 아닐까?

어쨌든 행복은 본인의 만족이고, 본인이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이니까.

‘주인공은 고자라서 딱히 손을 댄 것도 아니고······.’

원작은 전연령판이었었다.

여자들이 달려들어도 늘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

고백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아 그냥 얼버무릴 뿐이었다.

흔히 나올 법한 키스조차 나오지 않았다.

가끔 오글거리는 멘트가 나오기는 했는데, 너무 어색해서 악플이 엄청나게 달려버리니 그 이후에는 그조차도 실종되었다.

그런 주제에 주인공은 자기 여자라고 생각했는지 누군가 무시받기라도 하면 굉장히 열을 냈었다.

원작 완결 이후 먼 훗날에 누구랑 이어지기야 하겠지.

어쨌거나 주인공의 곁에 있으면 몸은 안전할 것이다.

‘뭐······ 그래도 이진우보다는 낫지.’

어차피 최희연은 자신을 굉장히 싫어할 것이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생각이니 잘 보일 필요는 없었다.

약혼이 성사될지도 모르는 자리를 아무런 말 없이 펑크 내고, 오합지졸에 볼품없다는 식으로 가문을 비하한 진우였다.

초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사죄를 요구하는 자리라 생각하는 것이 맞을 터였다.

진우는 사죄의 말을 건넬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기사가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네, 알고 계셨군요.”

“네? 아······ 유명하시니까요.”

“······.”

뭔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미묘한 분위기였다.

차가운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검선은 진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희연도 진우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차라리 대놓고 냉대한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굉장히 이상한 태도였다.

다시 침묵이 깔렸다.

그러던 와중에 식사가 나왔다.

“크흠, 들도록 하지.”

소박한 식사였지만 진우는 마음에 들었다.

배고팠던 시절 가끔씩 절에서 먹었던 음식이 생각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이런 것도 좋겠네.’

얼마 만에 먹어보는 된장찌개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집에서도 가끔 나오기는 했지만 투박한 맛이 전혀 없는, 너무나 고급스러운 느낌이라 오히려 입맛에 맞지 않았다.

이곳 음식은 간이 밍밍한 것이 오히려 제법 괜찮았다.

“입에 맞나?”

“네, 근래 먹어본 음식 중에 최고입니다.”

“어허! 청렴하고 겸손하군. 그토록 많은 산해진미를 경험해보았을 진데······ 음, 진정한 의미를 찾을 줄 아는구만.”

검선은 이상한 말을 하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는 감히 무슨 뜻이냐고 반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검선이 처음과는 다른 의미로 엄청나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검선의 눈빛은 강렬했고, 거기엔 어떤 열망마저 느껴졌다.

점점 이글이글거리는 눈빛이 부담스러워 진우는 시선을 돌렸다.

“취미가 무엇인가?”

“아······ 독서를 조금······.”

“학구적이군. 좋아하는 음식은?”

“···가리는 건 딱히 없습니다만 한식이 좋은 것 같네요.”

“허어, 글로벌하지만 애국을 하고 있군. 참으로 보기 드문 청년이야.”

검선이 진우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희연은 그런 검선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종교가 있나?”

“없습니다.”

“무인이라면 응당 그래야지.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좋은 태도일세.”

“네?”

“그놈의 손자답지 않게 인성도 제대로야. 혼자서 아주 잘 컸어. 천하의 자질과 좋은 인성, 용기, 그리고 세상을 능히 상대할 수 있는 패기를 두르고 있군.”

진우는 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냥 밥이나 먹도록 하자.

진우는 검선의 시선을 피하며 밥을 먹었다.

검선은 진우가 숟가락을 옮길 때마다 감탄했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니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아······ 제발······.’

불편해서 체할 지경이었다.

“대단해.”

“네?”

“그야말로 지옥 같은 훈련을 했겠군. 인간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겠어.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네.”

“아······ 뭐······.”

검선의 열정적이고 뜨거운 눈빛에 진우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진우의 육체는 그만큼 완벽했다.

잠재력이 극에 달해 있는 육체는 감히 이상향이라 불러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였다.

‘꽤 힘들기는 했지만······.’

그냥저냥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검선의 시선을 보고 있자니 그냥 몇 개월 동안 좀 힘든 훈련을 했어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수련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진우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자 검선은 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을 아는 자는 입 밖으로 지옥을 내뱉지 않는 법이지. 허허허.”

최희연은 검선의 바뀐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아 멍한 표정이었다.

검선은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했다.

그것은 본인의 기준이 워낙 높기 때문이기도 했다.

진우는 사과할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었다.

완전 가시방석이었다.

“저······ 지난 번의 일은······.”

“음? 아아, 그런 일들이 있었지. 음, 이제 그런 사소한 것들은 넘어가세. 그것보다, 자네······.”

검선이 진우를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눈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말뿐인 게 아니라 진짜 안광이 폭사되었고, 검선의 앞에 있는 물잔에서 물이 끓어올랐다.

“내 제자가 되는 것이 어떤가?”

“풉?!”

최희연이 물을 마시다가 반쯤 뿜었다.

진우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제자라니?

전혀 생각지도 않은 제안이었다.

“할아버님! 진심이십니까?”

“내 결정에 문제라도 있느냐?”

“많지요. 아주 많습니다!”

얌전했던 최희연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최희연과 검선이 눈이 마주쳤다.

무언가 강렬한 기운이 충돌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테이블이 요동치고 있었다.

진우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저는······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만하거라. 내가 결정한 것이다.”

최희연의 말에는 원망이 섞여 있었다.

진우는 둘 사이에 뻘쭘하게 껴서 눈알을 굴렸다.

남의 심각한 가정사를 현장에서 목도하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최희연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원작에 보면 최희연이 검선에게서 검을 사사 받지 못했다고 나와 있었다.

나중에 검선의 무공 비급은 모조리 중국의 고수에게 빼앗기게 되는데, 주인공이 찾아주면서 사랑이 싹트게 된다는 전개였었다.

‘개답답했지.’

주인공이 나름대로 비급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그걸 또 아슬아슬하게 빼앗기게 된다.

최희연을 지키려고 하다가 빼앗긴 것이다. 정말 뻔한 전개였다.

아무튼 검선이 남긴 최후의 비급은 죽기 전에 남긴 것으로, 거기엔 최희연에 대한 마음도 담겨 있었다.

‘그 부분이 외전 이야기이기는 한데······.’

작가가 어디서 감동을 먹고 왔는지 억지스러운 감동과 신파가 가득한 파트였었다.

어쨌든 검선의 검술은 일인전승이었다.

한데 검선의 기준이 워낙 높아 그 누구도 적전제자가 될 수 없었다.

천하제일검가 최고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최희연조차 검선의 눈에 차지 않았다.

비급을 남긴 것은 순전히 최희연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기에 주인공이 익혀서 가르쳐 주는 형식이 되었던 것이다.

“20년입니다. 걸을 수 있을 때부터 검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검조차 잡아본 적 없는 남자에게 그런 제의를 하십니까?”

“검을 잡은 기간은 중요치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합니까!”

“재능이다.”

검선이 말하자 최희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리고 진우를 바라보았다.

“그 조건엔 저도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절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흐음, 정녕 받아들일 수 없는 게냐?”

“네, 검문최가의 차기 가주로서······ 할아버님도 검문최가의 일원임을 잊지 마십시오. 가문의 율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검선과 최희연이 기싸움을 시작했다.

중간에 있던 물병에 담긴 물이 끓기 시작하더니 물병이 공중에 떠올랐다.

굉장히 신기한 광경이기는 했다.

다툼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지만 둘이 파악하지 못한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저기······.”

검선과 최희연의 고개가 돌아가며 진우에게 시선이 꽂혔다.

바늘로 피부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진우는 애써 웃으면서 입을 뗐다.

“죄송하지만 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뭐랏?”

“네?”

< 3.검문최가(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