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vel’s Villain

< 50. Empires are one. (2) >

김군주 아바타는 상당히 유용했다.

인기가 엄청나서 시청자 숫자가 하늘을 뚫고 나갈 기세였다. 본래도 인기가 있었지만, 도플로에게 맡긴 이후에는 완전히 격변했다.

쓸데없이 일을 잘했다.

도플로의 일족들은 대군주의 아바타를 사용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게는 김군주 아바타가 대군주의 화신이나 마찬가지였다.

도플로의 일족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만이 사용했는데, 경쟁이 굉장히 치열했다. 김군주를 지상 최고의 존재로 만들어 위대한 대군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냥 잘 좀 부탁한다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개인 방송을 시작으로 TV에 자주 얼굴을 비쳤고, 엘론티 엔터테인먼트에 공식적으로 가입하면서 여러 분야에 걸쳐 엄청난 두각을 나타냈다.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앨범까지 냈다.

전 차원에서 노래를 가장 잘하는 이들 찾기 위해 대대적인 오디션까지 벌였다. 신청자 숫자가 어마어마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를 뽑았으니 그 결과는 알만했다.

‘어쩐지 계속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만…’

거리에서, 카페에서, TV에서 김군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김군주 아바타에 신성 랭크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 사실을 안 것은 최근이었다. 덕분에 시청자들의 숫자는 압도적으로 많았다.

게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김군주를 보러 방송에 들어왔다. 오히려 이제는 이진우가 평범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방송 노출이 없어 더욱 그러했다.

어쨌든, 방송 효과는 굉장했다!

‘라이네스 왕국도 지원을 왔군.’

라이네스 왕국의 전함들이 보였다. 그러나 기계 함대는 라이네스 왕국의 함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럼 움직여볼까.’

암흑제국군을 이용하여 영훈이 설정했던 것보다 판을 더 크게 벌일 생각이었다.

전함들이 이온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기계 모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라이네스 왕국의 전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고, 우주연합국의 방어라인은 이미 무력화되어 있었다.

진우는 망설임 없이 전투에 들어갔다. 정면에 있는 기괴한 전함을 향해 우주선을 몰자, 기계 전투기들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오징어를 보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여러 개의 팔에는 빔 커터와 빔 라이플이 내장되어 있어 근거리, 원거리 모두 뛰어났다.

기동성 역시 일반 전투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진우는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며 우주선에 장착된 빔 무기로 하나하나씩 파괴했다. 그러나 전투기들이 너무나 많았다.

기계 전투기로 이루어진 긴 꼬리가 달려버렸다.

그 광경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끔찍했다.

나니: 헐ㅋㅋ스케일 보소.

할롱이: 개많아!

민족수호자: 행성 터질 것 같은데.

핫소스: 디자인 죽이네. 개무서움.

인삼주: 호러 SF인가요?

상황은 급박했지만 진우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김군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냉정한 그런 캐릭터였다. 어떤 어려운 상황도 누구보다 쉽고 통쾌하게 해결했다.

그게 인기 요인 중 하나였다.

“이거 못 피할 것 같은데요.”

진우는 채팅을 바라보며 웃었다.

오나의군주님: 엌ㅋㅋ

경찰특공대: 이 상황에서 웃는다고?

팩력배: 님 죽어욧!

종호: 군주님 드디어 죽는 건가!

우주선보다 기계 전투기들의 속도가 더 빨랐다. 마치 우주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처럼 보였다. 벌써부터 기계 오징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진우도 오랜만에 스릴을 느꼈다.

김군주의 랭크가 많이 올랐다고 하나, 진우가 느끼기에는 너무나 나약했다. 우주 공간에서도 오랫동안 생존할 수 없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역시 이런 리스크가 있어야 재미가 있었다.

“할 수 없네요. 조금 멀미가 날 수 있습니다. 꽉 잡으세요.”

진우는 마력 엔진을 풀가동했다.

은근슬쩍 마력 엔진에 자신의 마력을 주입했다.

콰가가가!

우주선의 선체가 크게 흔들리더니, 급격히 가속되었다. 기계 오징어들이 거의 우주선에 접근했었는데, 가속에 의해 조금씩 멀어졌다.

기계 오징어들이 뭉쳐 있는 것이 마치 거대한 기계의 손을 보는 것 같았다. 한계를 돌파하는 속도에 의해 선체의 부품들이 하나둘씩 떨어졌다.

우주선이 빔을 피해 마구 돌면서 나아갔다.

초코송이: 어엌

이태리: 어지럽다!

진진: 토나옴.

우주선 안의 시점에서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멀미 때문에 채팅을 치지 못했다.

진우는 그대로 기계 함선을 향해 돌진했다. 마침 기계 함선이 라이네스 왕국의 전함을 향해 빔 입자포를 발사하려 하고 있었다.

[시, 실드를 최대로 전개!]

[부, 불가능합니다! 저, 적 빔 입자포의 추, 출력이 너무…]

[미, 미친! 대, 대피해! 으, 으아아악!]

라이네스 왕국의 전함에서는 난리가 났다.

기계 함선의 머리 부분이 열리더니 빔 입자가 모이기 시작했다.

델록스 제국의 기계들은 인간이 타 있지 않았다. 모든 부분을 전투 부품으로 채워놓고 있었다.

빔 입자포의 위력은 보통 전함보다 훨씬 대단했다. 이러니 아주 쉽게 우주연합국이 멸망한 것이다.

[어, 어? 저, 적함에 무언가 접근해옵니다! 엄청난 속도입니다!]

빔 입자포가 발사되려는 순간, 진우의 우주선이 기계 함선에 도착했다. 빔 입자포가 발사될 때는 실드가 해제가 되어, 진우가 탄 우주선에는 어떠한 타격도 없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 우주선으로는 기계 전투기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진우는 조종대를 놓고 빠르게 뒤를 향해 뛰었다.

진우의 우주선과 기계 함선이 부딪쳤다. 빔 입자포가 그 자리에서 터지며 기계 함선의 머리 부분이 엄청난 폭발에 휩싸였다.

진우의 우주선도 종이짝처럼 찢겼다. 시청자들은 폭발 때문에 진우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시점을 변경하며 찾았지만 연이은 폭발만 보일 뿐이었다.

한양: 죽었나?

개인뱅크: 헐…

허브티: 그걸 그대로 박아버리다니.

안주이: 저거 엄청 비싼 우주선 아닌가요?

워프 드라이브까지 달려 있으니, 수억은 가볍게 돌파하는 우주선이었다. 그런 우주선이 한 번에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김군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 폭발에서 탈출했다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때였다.

화염을 뚫고 무언가 등장했다.

독자님: 엌ㅋㅋ

최애캐: 미쳤닼ㅋㅋ

한영키없음: 과연 김군주!

알콜중독자: ㅋㅋㅋ마장기라니! 우주전쟁에 마장기라니!

푸른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마장기가 기계 함선의 위에 나타났다. 시청자들은 난리가 났다.

엄청난 크기의 기계 함선들, 끔찍한 외형의 기계 전투기, 그리고 그와 맞서 싸우는 인류! 엄청난 폭발과 함께 등장한 마장기까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마장기의 파일럿은 다름 아닌 김군주였다.

마장기는 양산형이 아니었다. 고급 기종에 속하는 것이었는데, 김군주의 캐릭터에 맞게 커스터마이징을 해놓은 상태였다. 폭발이 내뿜은 빛을 받아 푸른색으로 빛나는 모습은 진우가 보더라도 굉장히 멋있었다.

마장기가 손을 뻗자 허리춤에 있던 공간이 열리며 거대한 빔 소드가 들려졌다.

“갑니다!”

양손으로 빔 소드를 잡았다.

지이잉!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칼날이 완성되었다.

보통 마장기들과 다르게 빔 소드가 굉장히 컸다. 일반적인 양손검보다도 좀 더 큰 크기였다.

진우는 폭발하고 있는 기계 함선의 장갑에 빔 소드를 박아넣었다. 마장기의 뒤에 달려 있는 마력 엔진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오며 가속되었다.

드드드드드드!

기계 함선의 장갑이 일자로 잘려나가며 그대로 폭발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무리를 지으며 날아오고 있는 기계 전투기가 보였다.

진우는 기계 전투기 군단을 바라보았다. 양손검을 수평으로 들고 자세를 낮췄다. 김군주 전용 기술인 ‘블레이드 스톰’을 시전하는 자세였다.

미궁팬: 엌! 저, 저 자세는!

킁카킁카: 설마 저걸 마장기로?

나닛: 가랏!

수많은 던전 보스를 박살 낸 기술이 우주공간에서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경고! 마력 엔진 200% 과부화]

[시스템 안정을 위해 장갑 분리]

[3, 2, 1]

경고창들이 마구 떠올랐다.

마장기의 두터운 장갑이 열리며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푸른 표면이 붉게 달아오르며 들고 있는 빔 소드가 마구 떨렸다. 빔 소드의 표면은 마치 번개가 뿜어져 나가는 것처럼 요동쳤다.

마장기의 두 눈이 붉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블레이드 스톰 전개]

[충격에 주의하십시오]

마장기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오더니 우주공간에 거대한 일직선의 빛이 그어졌다.

몰려오는 기계 전투기 군단은 마장기를 놓치고 말았다. 이미 군단을 뚫고 지나가 한참이나 뒤에 자리해 있었다.

지잉!

마장기가 마치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것처럼, 빔 소드에서 요동치는 마력을 털어냈다.

그 순간이었다.

콰가가가!

기계 전투기 군단의 앞줄에서부터 폭발이 시작되며 뒷부분까지 모두 터져버렸다.

한트: 크! 마장기 지린다!

오늘점심뭐: 와… 스케일 보소.

한방약: 어엌ㅋㅋ 블레이드 스톰 작렬!

소주맥주: 대박! 괜히 마장기가 아니넼ㅋㅋ

마장기의 열렸던 장갑이 닫히며 다시 푸른빛으로 돌아왔다. 진우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제 겨우 기계 함선 하나를 잡았을 뿐이었다.

주변에는 수많은 함선이 있었고, 주변을 까맣게 물들인 기계 전투기 군단이 있었다. 게다가 기계 모선도 건재했다.

사이버대학: 물량이 너무 많아!

안토니: 저걸 어떻게 이겨.

스포충박멸: 큰일이네. 행성으로 진입하는데…

라이네스 왕국의 함선들이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방어 라인은 뚫린 지 오래였다.

진우는 라이네스 왕국의 함대 쪽에 자연스럽게 위치하게 되었다.

라이네스 함대로부터 통신이 왔다.

정면에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 여기는 라이네스 왕국 왕실함대 하, 함대장 아인로트 드라먼입니다. 귀하의 소속은 어디입니까?]

“신성연합의 용병, 김군주입니다.”

[신성연합…?]

당연히 함대장은 신성연합이라는 곳을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함대장의 모습이 옆으로 밀려나더니,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금발의 미인이었다.

핥핥: 미인 누님이다!

촬영기사: 와, 예쁘다. 분명 중요한 NPC인 듯!

디디딧: 크흐! 김군주 뽕으로 가득 찬다!

미튜버에오: 군주님한테 반한듯?

[그, 그, 그 기체는 뭔가요? 어떻게 그런 출력을!]

[크, 크흠, 물러나시오. 레아르 백작]

함대장의 모습이 레아르 백작을 밀어냈다.

함대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신성연합이 어디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현 상황에서 함대를 돌리는 게 최선이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그 기체가 굉장히 뛰어난 건 알겠지만 고작 1기로는…]

진우는 웃었다.

마장기의 손이 움직여 위를 가리켰다.

“혼자 온 것이 아닙니다.”

[무슨…?]

진우의 윗 공간이 마구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진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저 많은 물량 아래에서 이온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더 많은 물량을 쏟아내면 된다.

[대량의 워, 워프 균열 발견!]

[어, 엄청난 에너지 수치입니다!]

함대장은 엄청 놀란 표정이 되었다.

공간이 열리더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백색 함대가 나타났다.

소프트: 엌ㅋㅋ 신성 연합이 다 왔네!

새문서: 뽕이 차오른다!

집밥: 가즈아아!

도마도마뱀: 왘ㅋㅋ 저게 몇 대야.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이 다시 일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검은 전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계 모선만큼이나 거대했다. 라이네스 왕국의 함대장과 레아르 백작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엘론티포에버: 엌ㅋㅋ

마계의힘: 헐, 암흑제국군이다.

천족학살자: 기계보다 더 무섭네.

한트: 배신자 잡으러 왔넼ㅋㅋ

흑과 백의 함대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라이네스 왕국의 함대가 너무나 초라하게 보였다.

오픈된 채널로 통신이 들어왔다.

[우주의 버러지들이여! 황제 폐하의 은혜에 고개를 조아리거라.]

[여기는 신성연합! 구조신호를 듣고 왔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그대들의 편입니다.]

개성이 너무나 다른 두 통신에 함대장은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각 전함으로부터 엄청난 숫자의 전투기가 뿜어져 나왔다.

플레이어들을 가득 태운 수송기도 있었다.

[우와! 멋지다! 부품 비싸게 팔릴 것 같은데.]

[기계 코인 가즈아! 채굴 가즈아!]

[우주의 거름들이 여기 다 있군.]

[피의 복수를…]

플레이어들은 흥분에 이미 미쳐 날뛰고 있었다.

진우의 마장기가 떠오르며 신성연합의 함대 앞에 위치했다. 마장기 부대가 진우의 뒤에 나타났다.

[여기는 잼식! 김군주 님! 오랜만입니다!]

“잼식 님이군요. 그 마장기는…?”

[전 재산을 털어서 샀습니다! 그… 요, 욕을 워낙 먹어서…]

“아…”

잼식이뇌절: ㅋㅋㅋ 잼식ㅋㅋㅋ

잼식잼: 파산잼ㅋㅋ

극혐잼식: 븅신ㅋ 그걸 터뜨려먹어섴ㅋㅋ

잼식은 허무하게 마장기를 터뜨려 먹고 엄청 욕을 먹었다. 국제적으로 욕을 먹다 보니, 이참에 하나 구입해서 무마하려고 하고 있었다.

광마와 허영, 미궁도 있었고, 돈이 많은 일반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김군주를 중심으로 신성연합 마장기 부대가 편성되었다.

[크크큭! 피가 끓어오른다!]

[파멸의 데스사이드가 울부짖는다.]

[행성 이온… 나무가 부족하군.]

먼 곳에서 암흑제국군 플레이어들의 마장기가 등장했다. 어두운 계열의 장갑에 붉은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암흑제국군에는 공헌도라는 것이 있어서, 증명서로 우주선이나 마장기를 구입하는 대신 대여받을 수 있었다.

암흑제국군의 플레이어들은 공헌도를 얻기 위해 의욕적으로 약탈이나 파괴행위를 하고 있었다. 지금 이 퀘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신성연합 전 함대 전투에 들어갑니다!]

[신성연합 마장기 편대의 지휘권을 김군주님에게.]

[무운을 빕니다.]

진우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모두 진우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온 행성으로 향하던 기계 함대 일부가 머리를 돌리며 진우가 있는 신성 연합의 함대를 바라보았다.

파파파팟!

수많은 기계 전투기가 쏟아져 나오며 거대한 군집체를 이루었다.

지잉

진우는 빔 소드를 들었다. 주변에 있는 마장기들도 저마다 무장을 꺼내 들었다.

“마장기 편대…”

파아아!

마력 엔진이 요동쳤다.

“돌격!”

진우의 마장기가 앞으로 뻗어 나갔다.

푸른 궤적을 그리며 빔 소드를 휘둘렀다.

제2막이 시작되었다.

* * *

[어, 님들 저 죽을 듯. 자폭할게요. 전투기 아깝네.]

[아쉽네요! 수고요.]

[엇! 저 죽여욧!]

오픈 채널을 통해 모든 진영이 통신을 공유하고 있었다.

레아르 백작은 통신을 듣고 침을 꿀꺽 삼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엄청난 무기는 둘째 치더라도 저들은 도저히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모, 목숨을 그렇게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적 함대로 돌진하더니 그대로 자폭했다. 죽기 직전까지 태평하게 대화를 했다. 그리고 동료들도 큰 신경을 안 썼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소름이 끼쳤다. 신성연합 보다 더 무서운 건 암흑제국군이었다.

[크, 크크큭, 크하하하하!]

[더 많은 파괴를!]

[기계의 피는 녹색이었군. 녹색, 올바르다. 우주를 녹색으로 만들자!]

[황제 폐하를 위하여!]

그들은 광신도였다. 기계 함대로 그대로 돌진하여 화려하게 자폭했다. 그냥 자폭하는 게 아니었다. 폭발하기 직전, 우주 공간으로 나오더니 그대로 기계 전투기들과 맨몸으로 부딪혔다.

‘무, 무슨 인간이…’

아무리 보호장비를 입었다고는 하나, 인간은 절대 우주 공간에서 저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금지된 기술로 강화한 인간이 분명했다.

그들은 기계 전투기를 손으로 뜯어버리는 기행까지 펼쳤다. 저런 미친 존재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공장에서 찍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많았다.

그들은 자신들 이외에 모두가 적이었다. 기계들뿐 아니라, 신성연합까지 공격했다.

암흑제국의 모선은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기계 전함들을 압도했다. 수십 발의 빔이 뿜어져 나오며 주변을 쓸어버렸다. 게다가 빠른 속도로 돌진하며 기계 함선과 부딪혔다.

실드 따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계 함선은 폭발하며 사라졌지만 암흑제국의 모선은 멀쩡했다. 마치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상어 같았다.

레아르는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 저 마크는…’

암흑제국군의 마크가 눈에 들어온 순간 레아르 백작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것은 외신을 상징하는 눈동자였다.

레아르의 옆에는 얼굴을 마스크로 반쯤 가린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라티카였다.

레아르 백작이 만든 인간형 로봇의 파일럿이기도 했다.

레아르를 찾아온 라티카는 기회를 구걸하며, 목숨을 그녀에게 바쳤다. 레아르는 고민했지만, 라티카의 뛰어난 능력을 보고 그녀를 거둬들였다.

‘갓 슬레이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아직 불안정해서 출격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신성연합의 로봇을 보고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기술력이었다.

“암흑제국군!”

“진정해요. 라티카.”

“…네.”

라티카가 긴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꺄악!”

두드드드드!

큰 진동에 레아르의 몸이 기우뚱했다.

라티카가 그녀를 잡아주었다.

레아르가 탄 전함은 이미 반파되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메인 브릿지 너머로 기계 전투기들이 보였다.

레아르가 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콰아아아!

기계 전투기들이 화염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통신이 들려왔다.

[괜찮으십니까?]

“고, 고마워요. 그… 시, 신성연합 소속이신가요?”

[네! 신성연합 소속 잼식이라 합니다!]

눈앞에 있는 저 로봇은 예술작품이었다.

디자인부터 성능까지 어디 하나 빠지지 않았다.

‘대단해!’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 같았다.

“재, 잼식 님, 저 기계들에 대해 아시나요?”

주변이 조용해지자 레아르가 물었다.

레아르는 저 기계들의 항로를 추적해보았다. 그 결과, 델록스 제국에서 온 것으로 밝혀졌다.

델록스 제국이 저런 걸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몇 년 전 델록스 제국에 갔을 때 본 광경은 너무나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음… 그…]

잼식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암흑제국의 과학자 킨대르진 박사가 만든 기계 AI입니다. 세력이 불어나자 암흑제국을 배신한 상태입니다.]

“아, 암흑제국이요?”

[네, 그런 설정… 그렇습니다.]

레아르 의문이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저 암흑제국군도 온 것이군요. 저들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실 수 있나요?”

라티카는 농락당하던 기억이 떠오르자 몸이 떨렸다. 레아르는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잼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NPC에게 이 세계가 게임임을 알려주는 건 금기였다.

금기를 깨면 벤을 당해서 다시는 뉴월드를 플레이할 수 없었다.

[그… 음, 저들은 암흑제국의 변방 소속 함대입니다. 암흑제국군의 본대는 이곳에 있는 모든 함대를 합친 것보다 크다고 합니다. 저희 신성연합과 라이벌 관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암흑 황제는 거의 신과 같은 능력을 지녔다고 하더군요.]

“그, 그럴 수가! 그럼 암흑제국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우주의 파괴입니다.]

“그들은 어느 은하계에서 온 건가요?”

[공허의 바다라는 곳, 그 너머로 알고 있습니다.]

잼식도 잘은 몰랐다.

그저 플레이어들이 추론한 설정을 말해주는 것일 뿐이었다.

잼식의 말을 들은 레아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공허의 바다, 그 건너편.

그곳이라면 현재 기술력으로 넘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어둠만 나오는 지역이었다.

‘외신, 거대한 눈 모양의 균열, 기계 함대… 모든 신호가 사라진 델록스 제국의 행성…’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델록스 제국의 수도가 있는 행성은 암흑제국의 박사가 만든 저 기계들에 의해 멸망한 것 같았다.

이 얼마나 무서운 기술력이란 말인가.

잼식의 말에 라티카는 주먹을 꽉 쥐었다.

주먹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라티카는 알 수 있었다.

그 황제라는 존재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온 행성 자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레아르가 말한 외신이라는 존재일 수도 있었다.

“암흑제국의 황제는… 놀고 있는 것에 불과해요. 저 기계들도 그렇겠죠. 변방의 함대만 보낸 걸 보면…”

“…그렇군요.”

레아르는 창백한 표정이 되었다.

레아르 그리고 라티카.

그녀들이 상대해야 하는 적은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걱정 마세요! 저희 신성연합이 있으니까요! 하하핫!]

분위기에 맞지 않게 잼식은 유쾌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잼식은 시청자들에게 또다시 욕을 먹고 말았다.

< 50. 제국은 하나다.(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