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vel’s Villain

55. Everywhere people live is the same (2)

인터넷을 하며 조금 쉬다가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단단히 잠가놓았다.

이것저것 설치해 놓았으니 강제로 들어간다면 아마 통구이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진우가 밖으로 나오자 두 남자가 따라붙었다. 진우와 눈이 마주치니 팔짱을 끼며 노려보았다. 참 재미있는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꽤 많군.’

60명은 넘어 보였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린아이들도 꽤 있었다. 건장한 남자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건물 자체는 컸다. 쇼핑센터여서 그런지 공간 자체는 넉넉했다.

‘역시 이런 곳이 빠질 순 없지.’

어린 시절, 아무도 없는 백화점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게 꿈인 적도 있었다.

건물 안에는 이런저런 도구들이 많았는데, 아쉽게도 식료품 가게는 텅텅 비어 있었다. 이곳에서 꽤 오랫동안 버틴 것 같았다.

리첼과 다른 이들이 밖으로 나가서 식료품을 구해온 걸 보면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묵시록의 때가 왔습니다. 고통은 죄에서 옵니다.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입니다. 배고픔도, 굶주림도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십시오.”

중앙 홀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양초들이 가득 놓여 있어 분위기가 그럴듯했다.

검은 옷을 입은 중년의 여성이 두 팔을 벌리며 설교를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종교와는 다르게 조금 광기가 느껴졌다.

‘신이라…’

진우가 실제로 본 신은 여신 루나밖에 없었다.

진우가 2층 난간에서 그런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알렉스가 진우에게 다가왔다.

“요리를 잘한다지?”

“그냥 취미 정도야. 그런데, 저 사람은?”

진우의 말에 알렉스도 1층을 바라보았다.

“유디스,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아. 찍히면 괴롭거든. 신이니 뭐니 하면서 설교를 하는데… 참…”

“그래?”

“그래도 유디스가 저러고 나서 사람들이 꽤 얌전해졌어.”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굴 믿든 그건 개인의 자유였다. 이런 상황에서 의지할 곳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게 권력으로 변하면 골치 아파지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을 납치해서 실험한다는 소문이 있더라고.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건 없어. 이 근방에서 아직 발견된 적이 없으니까.”

“그렇군.”

진우는 알렉스에게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좀비 사태가 발생한 것은 5년 전이라고 한다. 갑작스럽게 발생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고, 나라가 붕괴되었다.

죽은 자들뿐만 아니라 산 사람도 조심해야 하는 무법지대가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렇게 무리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군주 때문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몇 년 전에는 그래도 연락 가능한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제 모두 사라졌어.”

“이곳도 위험하겠군.”

“그래서 리첼이 옮기자고 하고 있는데…”

알렉스가 유디스를 가리켰다.

유디스와 이곳의 리더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복잡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요리나 좀 해볼까.”

“내가 안내해 주도록 하지.”

알렉스를 따라 주방으로 갔다. 주방에 가니 제리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요리 재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훈제된 고기와 통조림들, 그리고 소스가 전부였다.

“제리, 요리사님이 오셨다.”

“와! 구세주가 오셨군요.”

제리가 반가운 표정으로 진우를 바라보았다. 진우는 부엌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를 잘했는지 주방은 깔끔했다.

“그래도 깔끔하네?”

“네, 피터가 주방은 깔끔해야 한다고 늘 말했거든요. 본인이 제일 더러웠지만…”

피터는 전 요리사였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알렉스가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진우는 재료를 살펴봤다. 고기 스튜 정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바로 손을 움직였다. 제리가 옥상 텃밭에서 채소를 가지고 왔다.

‘이건 못 먹겠군.’

상한 고기도 있었는데, 진우는 슬쩍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기와 바꿔치기했다.

“와…”

제리가 진우의 손놀림을 보고 감탄했다. 빛이 번쩍하는 것 같더니 재료들이 모두 가지런히 썰려 있었다.

“밤기술도 엄청나겠는데요?”

“이것보다 더 끝내주지.”

“크으, 멋지다.”

진우는 제리의 말에 적당히 어울려 주었다. 알렉스 같은 경우에는 경찰 출신이라 그런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리첼의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엄청 맞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리가 진우를 형이라 불렀다.

“리첼이 형을 보는 눈빛이 장난 아니던데 어떻게 한 거예요.”

“일단 눈빛이 중요해.”

“눈빛이요?”

진우가 대충 설명해 주자 제리의 눈빛이 느끼해졌다.

마침 리첼이 주방으로 들어오자, 제리가 리첼을 느끼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리첼은 둘의 대화를 들었는지 고개를 설레 저었다.

“그런 건 안 통해.”

“으… 어렵군요.”

리첼이 제리의 머리를 툭 쳤다.

리첼도 옆에서 도와주었다. 진우가 솜씨를 발휘하니 금방 스튜가 만들어졌다.

둘은 진우의 스튜를 맛보았다.

“와! 장난 아니네요.”

“자랑할 만한 솜씨군요.”

제리와 리첼이 깜짝 놀랐다.

진우가 만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음식이 만들어지자 리더와 유디스가 들어오더니 음식을 가져갔다. 배식을 직접 해준다고 한다.

유디스는 리첼과 제리를 차갑게 바라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늘 있던 일인 듯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진우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관심을 가질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진우가 숟가락을 들 때였다. 문 쪽에서 시선이 느껴져 바라보니 아이들이 문 옆에 숨어서 보고 있었다. 진우와 눈이 마주치자 도망치다가도 다시 다가왔다.

진우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두 손을 펼쳤다. 동전 하나를 한쪽 손에 쥐고 마술을 펼치는 것처럼 다른 손을 화려하게 움직였다.

화르륵!

쥔 손을 펼치니 검은 불꽃이 일어나며 동전이 사라졌다.

“와…”

“우와!”

아이들이 다가왔다.

“다시 보여줘요!”

진우는 재공연을 해주었다.

“밥은 먹었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좋지 않았다. 배가 부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도 안 하면 밥을 조금 줘요.”

“하기 싫다고 해서 혼났어요.”

여기 있는 아이들은 모두 부모가 죽고 없는 고아였다.

진우는 품에서 초콜릿바 몇 개를 꺼내 나눠줬다.

마력을 담아 줬으니, 당분간은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몰래 먹어.”

아이들이 활짝 웃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렇게 저녁 식사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진우는 2층에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첫날인데 무슨 일 있겠어?’

진우는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문득 설정의 군주가 생각났다. 언제 어디서든 소환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한 번 소환해보기로 했다. 백과사전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음? 안 되나?”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라 그런 것인가?

반응이 없었다.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니 진우는 다음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 * *

진우는 새벽에 일어나 라면을 끓였다. 각종 해물과 스팸, 그리고 비싼 버섯까지 넣자 랭크가 달린 라면이 탄생했다.

면발을 입에 넣으려고 할 때였다.

탕탕!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진우는 아공간에 라면을 넣고 문을 열었다. 알렉스가 보였다.

“제리 못 봤나?”

“제리? 아까 전에 통조림 상자 옮기는 것까진 봤는데… 무슨 일 있어?”

진우가 그렇게 묻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과 제리가 사라져서 난리야.”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사라진 아이들은 주방에서 봤던 아이들이었다.

진우는 겉옷을 입고 1층의 홀로 나왔다.

리더와 사내들이 모여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리더가 진우를 보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멱살을 잡으려 했다.

당연히 잡혀줄 리 없었다.

진우가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으윽!”

“무슨 짓이지?”

주변에 있던 사내들이 진우에게 총을 겨눴다.

진우가 손을 놓자 리더가 뒤로 물러났다.

“네가 오고 나서 벌어진 일이다.”

“방에만 있었던 걸 봤잖아요.”

리첼이 그렇게 말하자 리더는 진우를 바라보다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리더가 손을 올리자 사내들이 총을 내렸다.

그렇게까지 꽉 막힌 녀석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진우를 향한 의심의 시선이 많이 사라졌다.

생각해보니 주변의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서 한 일 같기도 했다.

무리를 이끄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유디스가 그렇게 말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리더는 진우를 바라보았다.

“나는 널 믿지 않아. 하지만… 리첼은 믿고 있지.”

“그래?”

리더는 진지한 눈빛으로 진우를 바라보았다.

“군 출신이라 들었다. 도와줄 수 있겠나?”

“제리는 내 요리 보조야.”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까딱하자 그의 부하가 소총을 하나 가져와 진우에게 건네주었다.

진우는 소총을 받고는 리첼에게 합류했다.

리첼 쪽에는 알렉스와 다른 사내들이 있었다. 유디스와 친해 보이는 백인 남자도 있었는데,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집이 있어 푸짐해 보였다.

이름은 루카스였다.

1층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생활공간 이외에는 모두 잠가놓은 상태였다. 외부에서의 침입이 가능해서였다.

잠가놓은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주변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라이트 빛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진우에게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루카스가 주변을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제리가 데려간 게 아닐까?”

“무슨 소리예요?”

“그… 검정 뚝배기 놈들 있잖아. 아이들을 좋아한다던데…”

리첼이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루카스, 닥쳐요.”

“으, 응.”

주변은 조용했다. 복도를 따라 걷다가 진우가 잠시 멈춰섰다. 복도에 놓여 있는 커다란 캐비닛에서 미세한 바람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진우가 발걸음을 멈추자 모두 진우를 바라보았다.

진우가 캐비닛을 잡자 알렉스가 진우의 의도를 파악했다. 바로 다가와 진우를 도와줬다.

그그극!

큰 캐비닛을 옆으로 옮기니 큰 공간이 나왔다.

“여기에 통로가…?”

“누군가 가려놓은 것 같군.”

리첼과 알렉스는 크게 놀라며 말했다.

진우는 바닥을 살펴보았다.

핏자국이 보였다.

리첼과 알렉스 역시 핏자국을 발견하고는 총을 들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핏자국이었다.

“내가 먼저 들어갈게.”

진우가 그렇게 말하고 먼저 들어갔다.

리첼과 알렉스, 그리고 루카스와 다른 이들이 따라붙었다.

그, 그어어어

바닥에 누워 있는 좀비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진우는 가볍게 밟아 머리를 터뜨렸다.

질질 끌린 것 같은 핏자국이 보였다.

‘제리…’

정보의 마안으로 보니 제리의 피였다. 진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핏자국을 따라가자 밖으로 통하는 길이 나왔다.

핏자국과 함께 여러 발자국이 보였다. 아이들의 발자국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아이들을 누군가 밖으로 데려간 것 같았다.

“누군가 데려간 것 같네요. 제리는 아닌 것 같지만…”

“배신자인가…? 돌아가서 보고하는 게 좋겠어.”

“아이들을 노린 걸 보면 약탈집단은 아닌 것 같아요.”

“검은 뚝배기가 냄새를 맡은 건가.”

리첼과 알렉스가 그렇게 말했다.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별로 기록을 하게 되어 있으니 조사를 한다면 누가 범인인지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일단 리더에게 보고를 하고 자세하게 조사를…”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탕! 탕탕!

총소리가 들리더니 루카스의 뒤에 있던 남자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루카스! 무슨 짓…!”

탕! 탕!

루카스가 알렉스와 리첼을 쐈다.

알렉스는 어깨에 총알이 박히며 바닥에 쓰러졌다. 리첼의 허벅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분명 머리를 쐈는데, 총탄이 전부 휘어져 급소가 아닌 곳에 박혔다.

진우가 마력을 뿜어낸 결과였다.

“초, 총 버려!”

루카스가 리첼에게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리첼과 알렉스가 이를 악물며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진우는 바닥에 총을 내려놓고는 두 손을 들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루카스가 범인인 게 확실했다.

진우는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어쩔 수 없었어! 그, 그들이 이곳을 알아냈어. 아, 아이만 넘겨주면 나도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들에게 자, 잘 말해준다고…”

“제리를 죽였나?”

“조, 조용히 입만 다물고 있으면 됐는데… 그, 그놈 잘못이야! 조, 좀비 밥이 되었겠지. 하, 하하하!”

그들은 아마도 검은 뚝배기를 말하는 것 같았다.

제리가 살아 있을 확률은 적었다.

‘저건…’

진우의 눈에 루카스의 바지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무언가가 보였다.

은박지였다.

초콜릿이 묻어 있는 은박지.

진우가 아이들에게 준 초콜릿바였다.

진우가 마력을 뿜어내자 루카스의 몸이 휘청거렸다.

타닷!

진우는 바로 달려들어 루카스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퍽!

한 대 치자 이가 부러져 치솟았고, 두 대 치자 얼굴 뼈가 함몰되었다.

“그어어…”

진우는 힘을 주어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리찍었다.

콰앙!

주먹이 루카스 옆에 박혔다. 루카스는 덜덜 떨다가 그대로 오줌을 지렸다.

진우는 리첼과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괜찮나?”

리첼이 벽을 짚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알렉스는 어깨를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이들도 총을 맞기는 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리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곳도 이제 안전하지 않군요.”

“리첼, 네 말이 맞아.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어.”

알렉스가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진우는 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이제 시작인 것 같군.”

진우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피이이이이! 콰아아앙!

건물 주변에서 폭죽이 피어오르더니 화려하게 터졌다.

마치 축제처럼 계속해서 터지며 밤하늘을 밝게 물들였다.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리첼과 알렉스의 눈에는 끔찍하게만 보였다.

소음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건물 주변에 퍼져 있던 좀비들이 모조리 몰려오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 내가 시간을 끌게.”

진우의 말에 리첼이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알렉스는 진우에게 자신의 총을 건네줬다.

“쓰고 돌려줘.”

꽤 멋진 권총이었다.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진우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흐, 흐아… 사, 살려줘… 으윽!”

루카스의 목을 잡고 권능이 깃든 마력을 주입했다.

마력이 모두 소모될 때까지 루카스의 정신은 유지될 것이다. 몰려오는 좀비들을 향해 루카스를 던졌다.

“끄아아아악! 으악!”

루카스는 행운아였다.

산채로 뜯어먹히는 고통을 아주 오랫동안 누릴 수 있었으니까.

“꽤 많네.”

좀비 축제가 시작되었다.

* * *

나비는 유나에게 혼이 났다.

잼식의 설정을 바꾼 것을 들켰기 때문이다.

나비는 유나를 아주 잘 따랐는데, 그녀의 주인인 대군주의 향기가 가장 진하게 묻어 있어서였다.

아무튼, 나비는 잼식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설정된 세계로 왔다.

“으아아아! 젠장! 그 변태 자식!”

잼식이 벽을 후려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잼식의 모습은 귀여웠다.

화내는 모습조차 귀여워 보일 정도였다.

“반성했어?”

“윽, 누, 누구…? 허, 허억! 고양이가 말을!”

잼식이 놀라면서 바닥에 넘어졌다. 본래라면 추해야 했지만 지금은 꽤 귀여웠다.

나비가 잼식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설명이 꽤 길어졌다.

필연적으로 대군주에 대해 설명을 해야 했다. 나비는 자신의 주인인 대군주 자랑을 잔뜩 했다.

“나비 선생님은 위대한 대군주님의 권속이시고… 제, 제가 야, 약속을 안 지켜서 이렇게 만드셨다고…”

“그래. 약속은 지켜야 해.”

“나비 선생님!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약속을 꼭 지키겠습니다!”

잼식이 머리까지 박으며 사과하자 나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 대군주님은 혹시…”

나비가 앞발로 공간을 휘적이자 사진 하나가 나왔다.

진우의 사진이었다.

“허억! 이진우 님이… 여, 역시 대단하신 분이었군요.”

나비는 백과사전을 꺼냈다. 그리고 잼식의 설정이 써진 페이지를 열고 지우개와 연필을 꺼냈다.

잼식은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돌아갈 수 있다!

이곳은 지옥이었다.

그 역겨운 주인공 놈이 매일 달라붙어 오글거리는 말을 내뱉는데, 진짜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죽빵을 갈긴 적이 있지만, 스킨쉽이라고 생각하는지 더 징그러워졌다.

“여길 지우면 바로 돌아갈 수 있어.”

“마, 만져 봐도 될까요?”

“응.”

잼식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백과사전을 만질 때였다.

백과사전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잼식이 눈을 깜빡이는 순간 백과사전과 함께 잼식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비는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사실 설정의 군주는 나비가 아니라 백과사전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발라당!

나비는 그 자리에서 옆으로 발라당하고 누워버렸다.

“……”

나비는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잼식은 빛무리와 함께 더 이상한 곳에 도착했다.

폐허가 된 건물들이 보였고 좀비가 잔뜩 있었다.

“와…”

잼식은 어이가 없었다. 뉴월드 : 미궁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잡몹이었지만 잼식은 이곳이 현실임을 알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았어!’

그의 몸은 여전히 이재미의 몸이었다.

그어어어! 그어!

좀비들이 잼식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으, 으아아!”

잼식은 좀비를 피해 달렸다.

잼식의 달리기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몸 안에 있던 어떤 힘이 육체를 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성력이었지?’

주인공을 피해 다니느라 신경 쓸 시간이 없었지만, 그녀 역시 성력을 지닌 히로인이었다.

주인공을 피하면서 단련된 성력 컨트롤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크, 크윽… 사, 살려… 줘…”

잼식이 좀비를 피해 달아나고 있을 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니 남자가 바닥을 기며 도망치고 있었다.

피냄새를 맡은 좀비들이 그를 향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잼식은 고민했다.

자신은 늘 추했다.

추함의 대명사라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친다면…’

추할지언정 더럽지는 않았다.

“에라이…!”

잼식은 좀비에게 달려들었다. 성력이 가득 담긴 주먹을 휘두르자 좀비가 크게 튕겨 나갔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백인 남자가 잼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 구…”

“아, 안녕하세요? 언제나 유쾌한 방송 잼식TV의 잼식입니다.”

설정된 세계에서 말을 제대로 못 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잼식의 입에서 자동으로 아주 익숙한 멘트가 나오고 말았다.

“…아름… 답다…”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어어어!

다행히 좀비들이 정적을 깨주었다.

어쩌면 이미 골치 아픈 상황인지도 몰랐다.

“제리가 요리 보조라던데, 요리사가 있었나?”

“있었는데… 식료품을 빼돌리다가 추방당했어. 제리가 슬퍼했었지.”

이곳도 사연이 복잡한 모양이었다.

이런 작은 집단에서도 정치와 파벌 싸움이 존재했다.

밖은 좀비로 넘치고 있는데 참 대단했다. 좀비뿐만이 아니라 약탈집단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체도 있다고 한다.

가장 위험한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체였다.

두꺼운 방탄복을 입고 검은 헬멧을 쓰고 있었는데, 검은 뚝배기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