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8. 진실 게임

모두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삭귀리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김 실장과, 상범, 지혜까지.

“···미친 새끼가···”

대부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중얼거리더니 급하게 자신의 입을 막았다.

오호. 저놈이 점말석과 같이 들어온 녀석인가 보군.

내가 알기로 한 놈이 더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대, 대부님.”

질색하며 대부를 부르는 또 다른 남자.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환희 혹은 경외로 가득한 주민들과 확연히 다른 반응.

총 세 놈의 사기꾼 새끼들을 파악했다.

나는 몸을 천천히 돌려 남자들에게 다가갔다.

그새 옷과 머리가 엉망이 된 지혜와 상범. 아이들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내가 말없이 손을 뻗자 지혜가 냉큼 내 손을 잡았다.

“아, 아, 아급형제동··”

옳지. 생사의 고비를 오고 가서 그런지 지혜는 기지를 발휘해서 경전을 읊었다.

기억은 다 안 나는지 뒷부분을 웅얼거렸지만.

“···대부님.”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교주의 결정을 원한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나와 점말석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서로 사기꾼임을 알고 있는 상황.

당황했던 그의 눈가에 독기가 서렸다.

“말도 안 된다. 사탄과 마귀의 수작질이니, 당장 끌어내려라.”

점말석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침을 뱉었다.

부정 탈 일이 있을 때마다 대부가 하는 의식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함을 질렀다.

“대부라는 자가 어찌 아비의 존재를 의심하는지 모르겠군.”

근간을 흔드는 질문. 나는 부러 주민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믿고 따라왔던 교주는 아니라 하지만, 눈앞의 내가 너무 위풍당당했으니.

게다가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은 외지인이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

교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옆의 남자에게 지시했다.

“최상호. 저놈도 함께 잡아라. 우리의 역사를 알려준 변절자가 분명하다.”

“아닙니다! 진짜 아닙니다!”

똑똑했다. 상식적으로 내가 정보를 알고 있는 게 이해가 안 되니, 그로서는 현명한 추론에 이른 것이다. 최상호가 배신했다고.

물론, 완전히 헛다리짚었지만.

“최상호가 외지인을 끌어들여 우리의 낙원을 흩트리려 하는군. 다들 악마의 속삭임에 현혹되지 말고 정신을 붙잡아라. 믿음만이 살 길이다.”

“그래. 아까까지 밥만 잘 처먹다가 갑자기 아버지? 개새끼들. 어찌 아버지 이름을 함부로 올려?”

“맞아. 괘씸한 놈들!”

“진짜 아버지라면 대부님이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정신을 차린 마을 주민들이 농기구를 위협적으로 휘두르자 상호는 머리를 다시 바닥에 찍었다.

자신의 결백과 내가 간증하는 것이 진실임을 알리는 몸짓.

퍼억퍼억

“대부님! 절대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모두 진실입니다!”

“형! 제발 그만해! 그러다 죽겠어!”

진실과 거짓을 떠나, 이제는 소용없었다.

점말석의 입장에서는 신도 하나를 잃고 다수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었으니까.

대부는 쐐기를 박으려는 듯 내게 제안했다.

“아버지라면, 당장 기적을 보여 봐라.”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네까짓 게 발악해봤자 소용없다는 표정. 지혜가 황망하게 되물었다.

“무, 무슨 기적이요?”

“아버지는 경천위지지재 하는 유일신이니 만물에 못함이 없으시니라. 해와 달을 떼어다 바다에도 던지는 분이다. 만약 네놈이 진정 아버지라면 별들로 하여금 하늘을 낮과 같이 만들어 보거라.”

흐음. 사람들 앞에서 내가 가짜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 죽일 생각이군.

나로서는 곤란하지만, 교주 입장에서는 이처럼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

기적을 행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신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게 거짓말 일시, 세 치 혀를 도려내고 눈알을 파버릴 것이다. 아버지를 모욕한 죄, 천하의 그 어떤 목숨으로도 갚을 수 없으니. 사지를 절단하여 산 채로 바다에 던질 것이다.”

맑은 음색과 달리 말의 내용은 살벌했다.

지혜는 두려움에 찬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듯.

마을 주민들이 흥분해서 괴성을 질러댔다.

“그래! 아버지라면 증거를 보여!”

“사탄과 악마 같은 새끼들.”

“죽여!”

내가 입을 다물고 놈을 노려보자 그는 몸을 휙 돌려버렸다.

더 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었다.

“벼랑의 심판을 준비하거라. 그동안 저자들은 묶어서 창고에 가두고.”

“네. 대부님.”

장정들이 우리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으앗! 자, 잠시만요!”

“이거 큰일 날 사람들이네. 으악!”

인원수가 절대적으로 밀리는 데다, 아이들까지 있으니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남자들은 짐짝 던지듯 우리를 창고에 밀어 넣었다.

쾅!

손바닥 크기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 우리는 그 빛에 의지하여 서로 모여들었다. 제일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최상호였다.

“진짜 아버지 맞으신가요?”

떨리는 목소리. 그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정보를 알려 준 적이 없는데도 내가 모든 걸 알고 있었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속삭였다. 모두 입을 다물고 내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저자는 어느 순간부터 타락하여 여신도들을 탐하고 하늘의 권위에 도전하여 아버지가 심히 불편해하십니다. 그래서 저를 보냈죠. 고목의 피 사건부터 경전의 울음소리, 그리고 사천 일의 기도. 모두 아버지께서 유심히 지켜보고 계십니다.”

“아···”

그는 엎드려 신앙에 감읍했다.

갑작스러운 동생의 등장과 낯선 동창. 모든 것이 이해되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김 실장을 비롯한 지혜와 상범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대체 그런 건 대체 어디서 알았냐는 표정.

나는 눈을 찡긋거리며 일단 넘어가라는 신호를 주었다.

“휴대폰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당신도 살고, 상범이도 살아요. 삭귀리를 구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나는 상호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아, 압수한 휴대폰은 부교주님이 항시 들고 다니며 관리합니다. 대신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비상전화기가 있는데, 대부님 집 안방에 있습니다.”

“거기가 어딘데?”

“빨간 지붕 집이요.”

우리는 창문 밖을 살폈지만, 벽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빨간 지붕 집은 딱 하나입니다.”

흐음. 나는 자리에 앉아 생각에 빠졌다.

심판이라 하면 삭귀도에서 하나뿐인 산에서 이뤄지는 제사였다.

말 그대로 벼랑에서 제사와 함께 사람을 죽이고 시체 처리는 바다로 풍덩.

“선착장에서 마을로 통하는 길은 하나였죠? 혹시 교주가 가진 배는 어디 있습니까? 선착장에서 못 봤는데.”

“그건 섬 뒤편에 있습니다.”

좋다. 나는 일행들을 향해 작전을 지시했다.

“산에 올라가는 도중, 상호가 상범이와 함께 도망치십시오. 동생만이라도 데리고 탈출한다는, 그런 뉘앙스면 좋습니다. 목적지는 대부의 배가 있는 섬 뒤편.”

형제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내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김 실장님은 형제들 뒤를 따라 뛰다가 방향을 틀어서 마을로 내려가세요. 의식에는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니 텅 비어있을 겁니다. 외부에 구조요청. 아시겠죠?”

“흐아.”

김 실장은 긴장된다는 듯 심장 부근을 문질러댔다.

“형제가 잘 해주셔야 합니다. 추격자들을 최대한 섬 뒤편으로 끌어줘야 해요.”

“저는요? 저는 뭘 할까요?”

지혜가 내게 물었다.

“너는 나랑 같이 추격자들을 최대한 막아주자.”

우리는 달달 떨리는 몸을 겨우 붙잡았다.

상호와 상범은 이마를 맞대고 서로를 토닥였고, 김 실장과 나, 지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와라.”

남자들이 등불을 들고 우리를 불렀다.

이미 밖은 어두컴컴해진 상태.

부슬비는 그새 그쳤는지 흙바닥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죄인을 이송한다.”

앞에 선 남자가 외치자 마을 사람들이 뒤를 따르며 제창했다. 미친놈들···

그들은 우리의 앞과 뒤를 둘러싸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풀과 흙냄새가 짙었다. 비탈길을 오르다 보니 아래의 마을이 훤히 보였다.

고목을 중심으로 두시 방향에 있는 빨간 지붕, 바로 대부의 집.

우리는 그걸 확인하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상호가 움직였다.

퍼억

“악!”

“형!”

상호가 박치기로 옆에 있던 신도를 밀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산길을 벗어나 어두운 숲속으로 몸을 던졌다.

“야이!”

한 신도가 그의 뒤를 쫓아가려 하자 지혜가 입으로 옷깃을 물며 매달렸다.

작은 구멍이 생기자 상범이 그 뒤를 잽싸게 따랐다.

어찌나 날쌘지 그들은 금세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도망친다! 이 마귀 새끼들!”

“으어어엇!”

그리고 이어서 김 실장. 나 역시 몸으로 신도들을 막아주었다.

젠장. 묶여있지만 않았어도 훨씬 수월할 텐데.

아슬아슬 하긴 했지만, 김 실장 역시 성공적으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퍼억!

한 녀석이 손에 든 몽둥이로 내 등을 후려쳤다.

“어허. 죽이면 안 된다. 제사를 지내야 하니. 보거라. 마귀 새끼들이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느냐.”

“꺄아!”

대부가 지혜의 머리칼을 움켜쥐며 흔들었다.

그리고 남자들에게 추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배만 지켜. 그러면 독안에 든 쥐니까. 몇 명은 놈들을 쫓고, 우리는 심판을 거행한다.”

“네!”

나와 지혜는 질질 끌려가다시피 산을 올랐다.

얼마나 올랐을까.

벼랑 끝에는 넓게 펼쳐진 밤바다와 비로 인한 뿌연 해무가 가득했다.

“꿇어라.”

절벽의 끝에서 나와 지혜는 무릎을 꿇고 신도들과 대치했다.

묘한 표정의 사람들. 어서 우리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대부가 고개를 까딱이더니 말했다.

“도망친 놈들을 기다려 보지.”

시간이 점점 흘렀다.

손목에 묶인 밧줄에 피가 스며들었다. 힘이 빠지고, 점점 지쳐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지혜도 침이 바짝 마르는지 연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기미가 없군.”

대부는 팔짱을 끼고 계속해서 나를 지켜봤다.

시간이 아깝다는 말투. 그는 은근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마 이 사건을 통해 신도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지켜냈다는 생각 때문이겠지.

그는 하품을 하며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 지시했다.

“일단 손목과 발목을 잘라버려라. 그리고 천천히 한 관절씩 도려내 주거라.”

“네. 대부님.”

남자는 도끼를 질질 끌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춤을 추듯 흔드는 몸. 다른 사람들은 가슴팍에 손을 올리고 경전을 외워댔다.

중얼중얼중얼···

무디고 녹이 슨 도끼. 날카롭지 않은 단면은 그것대로 위협적이었다.

한 번에 끝나지 않겠구나, 라는. 지혜는 누를 수 없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남자가 지혜와 나를 번갈아봤다.

그러자 대부가 느긋하게 말을 덧붙였다.

“여자는 나중에.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테니. 저 방자한 사기꾼 새끼부터 먼저.”

“알겠습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

그는 비열하게 웃으며 도끼 손잡이를 다잡았다.

“많이 아플 거다. 죗값이니 겸허하게 받아들여라.”

크게 반원을 그리는 도끼.

씨발. 진짜 끝나는 건가. 다들 어떻게 된 건지 알 턱이 없으니.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내 그것이 내 팔을 향해 내리꽂히는 순간,

“저기!”

군중 속의 외침에 도끼질이 멈칫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 뒤를 향해있었다.

“빛이···떠오른다···”

나는 그들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검은 바다와 하늘. 아주 먼 곳에서 떠오르는 빛.

그것으로 인해 지평선이 환하게 밝아졌다. 뿌연 해무 사이로 번쩍이는 둥근 빛덩이.

수십 대의 헬리콥터들이 장관을 이루며 삭귀도에 접근하고 있었다.

투두두두두투두두두

섬에 착륙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

바닷바람과 함께 세찬 공기의 흐름이 사람들 사이를 휩쓸었다.

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평생 쫓았던 기적을 만난 것 마냥.

점말석은 돌처럼 굳어 나를 쳐다봤다.

어둠과 해무, 그리고 빛줄기 사이에 내가 있었다.

EP48. 진실 게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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