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Cop Who Strikes With Wealth

EP103. Children fight. Adult fight.

EP103.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 사무실. 넓은 창밖으로 도심의 빌딩숲이 한눈에 펼쳐져 있었다. 따사롭게 느껴지는 오후 햇살. 허나, 의자에 앉은 남자의 눈빛은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어이. 유 프로.”

“네. 부장님.”

부장이 자신 앞에 서 있는 유다영을 나지막이 불렀다. 아슬아슬했던 적막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난 유 프로가 이렇게 눈치 없는 사람일 줄은 몰랐네. 시장바닥부터 아득아득 살아왔다고 하기에, 눈칫밥 하나는 많이 먹은 줄 알았는데.”

상당히 날카로운 말투와 내용. 유다영은 공손하게 내렸던 시선을 들어 부장과 마주했다. 중년의 남자는 자신 앞에 있던 검은 서류철을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오초훈 검사 건 말이야. 자네 선배가 어떻게 처리했는지 모르나?”

“불기소 처분이라 알고 있습니다.”

똑부러지는 유다영의 대답. 부장의 이마에 굵은 핏대가 확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유다영의 다리 쪽으로 떨어지는 서류. 남자의 찢어지는 고함 소리도 함께 날아왔다.

차악

“그런데 너는 왜 구공판이야? 선배고 뭐고 다 너만 잘났다 이거야?”

유다영은 오초훈 사건을 받은 후, 여기저기서 사탕발린 소리를 들어야했다. 법조인 집안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안 걸친 곳을 찾기 힘들 정도. 유다영은 서류를 집으며 부장에게 말했다.

“하지만 CCTV 영상도 확실하고, 무엇보다 현행범인지라 구공판···”

“유다영!”

부장이 벌떡 일어서며 옆에 놓인 다른 서류 뭉치를 집어 들었다. 유다영이 입술을 깨물며 몸을 움찔거리는 순간, 문이 열리며 다급한 수사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 부장님.”

“뭐야! 지금 바쁜 거 안보여?”

“오초훈 검사 건으로 언론사에서 전화가 자꾸 들어오는데요. 검찰이 청소년성매매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터졌다고···”

부장은 손에 든 서류를 책상에 던지며, 창문 가까이 붙었다. 정문에 몰려든 사람들과 카메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게 느껴졌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도 난리 났습니다. 단체로 약속 한 것처럼 한 번에 터져서요···”

띠리리띠리리

그때, 부장의 휴대폰이 울려댔다. 그는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검사장님.”

***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강남의 더블그랜드 호텔 스위트룸을 잡았다. 소파에 몸을 뉘고 텔레비전을 보는 내 옆에, 김 실장이 앉아 과자를 와작댔다.

“한 번에 몰아쳐야 한다고 하셔서, 힘 좀 썼는데. 어떠세요?”

“아주 보기 좋습니다요.”

하룻밤 사이에 발칵 뒤집어진 동부지검. 펜대 좀 잡는 기자다 싶으면 모두 정문으로 달려가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려댔다.

현직 검사의 청소년 성매매 자체만으로 특종감인데, 검찰 측이 대대로 그걸 은폐했다니. 과장 조금 보태면 해외토픽감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빨대로 콜라를 쭉쭉 들이마시며 물었다.

“형수한테 연락 왔어요?”

“네. 아까 낮에요. 부장검사가 검사장 호출 받았다는데요. 아마 ‘첫 번째’ 꼬리 자르기는 부장검사일 것 같답니다. 내일 아침 중으로 기자회견 한 대요.”

“오케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기지개를 켰다. 벽에 걸린 단정한 정장과 넥타이. 탁상에는 고급시계와 구두가 놓여있었다.

“외가 쪽도 문제없죠?”

나는 늘어진 티셔츠를 벗으며 김 실장에게 물었다. 그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문제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 문제 없습니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혈연이 최고네.”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확히는 내 혈연이 아니라, 고민국의 혈연이지만. 이미숙의 친정 대부분이 차고 있는 국회의원 배지. 그들의 힘이 필요했다.

허나 내가 부탁하면 어려울 것이 분명해서 고민국 이름 좀 빌렸지.

“참. 우리 둘째 형님 어디서 그런 형수를 얻었는지 몰라.”

나뿐만 아니라 형수까지 엮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펄쩍 뛰었지만, 어쩌겠는가. 각본이 잘 짜져 있으니 투자만 해달라는 내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정물산 때 내게 빚을 지기도 했고.

“그래서 그렇게 껌뻑 죽나 봐요. 어지간하면 도련님 일에 안 끼어들려고 할 텐데. 특히 이번 일은 사이즈가 좀 크고.”

김 실장은 휴지로 손과 입을 닦은 후, 텔레비전 화면을 꺼버렸다. 우리는 스위트룸을 나와 복도를 쭉 걸어갔다.

최상층 로비 반대쪽에 이어진 고급 한정식당. 넓은 공간에는 인공연못과 울창한 나무들이 멋들어지게 어울려 있었다. 실내에서 보는 대자연의 느낌. 가히 사치스럽고 묘하다.

정장을 입은 직원이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소수의 사람들만 이용하는 곳이다 보니 척하면 척인 모양이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익숙한 남자들이었다. 장만춘 의원과 서울지방경찰청장인 공문갑. 나는 웃으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들.”

“하하하! 어서 와. 자네 오기만을 기다렸어.”

장만춘 의원이 활짝 웃으며 내게 손짓했다. 산해진미로 가득한 상차림. 이미 거하게 한잔 했는지, 둘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손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오늘 자네 덕분에 이렇게 좋은 자리도 얻고. 내가 평소에 장만춘 의원님을 정말 존경했거든.”

“하핫! 이 사람도 참. 사람 부끄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먼.”

요직에서 구르고 구른 두 능구렁이들. 붙여놓으니 아주 신이 나서 서로를 치켜세워준다. 경찰청장이 내게 술 주전자를 들어보였다.

“그래. 일 하는데 있어서 힘든 일은 없고?”

“팀원들도 훌륭하고, 서장님이 잘 해주셔서 마음껏 일하고 있습니다.”

내 말에 장만춘 의원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 접시에 회를 잔뜩 올려주는 노인.

“그래. 자네 같은 사람이 현장에서 뛰니까 나라가 살만하다 이거야. 내 손녀 장미인이! 아직도 그때 그 이야기를 꺼내요.”

“손녀 분은 잘 계십니까?”

“내가 이건 진짜 비밀인데···”

장만춘 의원은 입 주위를 닦으며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술 냄새가 훅 올라오는군.

“미인이가 자네랑 자리 놔달라고 아직까지 성화를 부려대. 물론 처음보다는 덜 하지만, 자네가 일 때문에 거절했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침울해 하던지.”

어라. 이건 처음 듣는 말인데. 나는 표정을 감추면서 머리를 굴렸다.

“고광 사모님, 그러니까 우리 이미숙이 다음번에 자리 만들어 준다 해놓고 연락이 없다 이 말이야.”

이미숙의 아버지와 동창인 장만춘. 그는 한껏 아쉬운 투로 나를 쳐다봤다.

이제 좀 정리가 되네. 장만춘 의원 손녀랑 엮이면 내가 힘을 얻을까봐, 이 여사가 중간에서 자른 것이다.

나야 뭐, 큰 상관은 없다만. 이렇게 들으니 조금 웃기는군. 장만춘 의원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 얼굴 봤으니 됐지. 우리 손녀가 할애비 질투 좀 하겠구먼. 껄껄.”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채우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댔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나온 특수대와 이번 사건. 술기운이 올라온 공문갑이 내게 눈을 찡긋거리며 물어본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지금 검찰 앞에 몰려간 기자들 주머니에 고광 명함이 꽂혀 있다던데. 맞나?”

나는 손을 저으며 대충 둘러댔다. 누가 봐도 내가 했다는 것을 알만한 말투로.

“기자님들이야. 특종이 있으면 어디든 나타나시지 않습니까. 저는 그 길 좀 닦았을 뿐이고요.”

“허허. 젊은 사람이 말을 참 잘해요.”

웃고 떠들다 보니 찾아온 본격적인 대화의 시간. 장만춘 의원이 술을 한 모금 마시면서 내게 물었다.

“그래. 오늘 이렇게 보자 한 이유가 뭔가? 단순히 늙은이들 입맛 돋우게 하려는 건 아닌 것 같고.”

나는 예의바르게 미소를 지으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다른 게 아니라, 이번 사건 말입니다. 단순히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서요.”

“흐음?”

“잘 아시겠지만, 오초훈 첫 사건 때 연루된 검사들이 꽤 많아요. 선배니 후배니 하면서 한마디씩 던지고 간 사람도 많고. 오초훈 아버지가 동부지검 검사장이랑 선후배 관계라네요.”

“대충 들었네만.”

“내일 아침에 있을 기자회견에서, 부장검사까지만 자른다고 합니다.”

내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장검사와 평검사 몇 명이다라니. 사안에 비해 책임이 부실했다.

“꼬리자르기라.”

“그런데 저는 거기서 안 멈추려고요. 어차피 한번 까발려진 일, 끝까지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허헛. 자네는 힘든 길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

끝까지 가려면 그만한 원동력이 필요하다.

단순 오초훈 검사 사건을 마무리 한다고 끝낼 것이 아니라 이 말이지. 그리고 그 원동력은 다른 기관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옆에서 치고 때려줘야 계속 달릴 맛이 나거든.

“수사권 조정 이야기를 흘릴까 합니다.”

갑작스러운 내 말에 두 남자가 멈칫거렸다. 물고 뜯어야 살아남는 두 남자가 먹잇감의 냄새를 맡았다. 술기운을 떨치고 내 말에 집중하는 둘.

“수사권이라?”

“네. 아시겠지만 계속 심심찮게 나오는 화제 아닙니까. 검경의 수사권 조정.”

세계적으로 봤을 때, 검사가 수사의 책임을 맡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사지휘권부터 종결, 기소독점까지 모든 권한과 책임을 검찰이 지고 있지. 사실상 형사사건의 대부분은 경찰이 해결하는데 말이다.

공문갑이 벌건 목을 긁어대며 말했다.

“수사권 조정 이야기를 흘려서 검찰을 흔들어 대겠다?”

“페이크죠. 겁 한번 줘야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외가 쪽에서 내일 수사권 조정 ‘발언’을 하기로 했습니다.”

정식 회견이 아닌 발언. 허나 국회의원들 입에서 이 이야기가 나온 것만으로도 검찰 측에서는 골치가 아플 것이다. 나는 공문갑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청장님이 본청 청장님께 말을 잘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잖아요.”

수사권을 가져오면 제일 이득 보는 것은 경찰 측이다. 안 그래도 벼르고 있는 마당에 춤판이라도 벌어지면 열심히 흔들어야지. 나는 장만춘 의원에게 말했다.

“그리고 서로 각자의 사정이 있다 보니, 의원님 정당 또한 발언을 할 확률이 높겠지요.”

“아무래도 그렇지.”

이미숙 외가와 비슷한 노선을 걷지만 결국은 다른 당인 장만춘. 나는 방긋 웃으며 부탁했다.

“그러니 의원님이 당원들에게 잘 말해서 며칠간만 조용히 시켜주십시오. 진짜 그럴 생각이 아니라, 이참에 경찰이 검찰 견제하려는 퍼포먼스라고. 제가 원하는 것은 검찰내부감사입니다. 거기까지만 발언을 삼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네만,”

장만춘 의원이 술을 마시면서 생각에 잠겼다. 공문갑 쪽은 말할 것도 없이 오케이고. 나는 말을 이어붙이며 의원의 잔에 술을 따랐다.

“여론이 언론을 따라가고, 언론이 여론을 따라갑니다. 검찰 부정부패 쪽에 포커스를 맞출 테니, 그냥 옆에서 편승하시면 됩니다. 요즘 카메라 앞에 서신지 오래 되셨잖아요.”

“하핫. 이 나이 먹고 무슨.”

장만춘 의원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영민한 눈동자를 돌려댔다. 둘의 머릿속에 두 개의 목표가 떠올랐다.

아무리 검찰이 권력기관이라 해도, 국회와 경찰, 그리고 언론이 동시에 덤벼들면 제 명에 못 사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걸 지휘하는 것이 고광.

“그럼. 우리 한잔하고 일어설까? 큰일 앞두고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결정을 내린 장만춘 의원이 술잔을 들었다. 히죽 웃는 공문갑. 나는 공손히 술잔을 그들에게 부딪쳤다.

***

그리고 며칠 동안 경찰과 검찰의 기 싸움이 펼쳐졌다.

수사권을 빌미로 흔들어대려는 경찰. 검찰은 방어를 위해 자체 내부 감사라는 결단을 내놓았고, ‘오초훈’의 이름은 마치 저주를 부르는 주문처럼 기피되기 시작했다.

“완전 물갈이 되겠구먼.”

깜장이 텔레비전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검찰 내의 비리가 계속 터져 나오니.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 작업을 이었다.

그때 울리는 휴대폰. 형수의 문자였다.

[오초훈 구공판 기소 되었어요.]

나는 그 문자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가려고?”

“음. 오초훈 기소 됐다고 해서요. 면상 좀 보러?”

EP103.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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