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er

Six bucks. Sure thing -3

화면을 바라보는 여자도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이 안에 있는 꼬마가 자르체프의 대가리를 날려 버리고 최정훈 씨를 구했다고요?”

“예.”

“그런데 능력자 등록이 안 되어 있다고요?”

“예.”

“그럼 등록 거부로 집어 처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상황이 좀 이상합니다.”

“뭐가?”

최정훈이 한숨을 쉬었다.

“실종자인 것 같은데, 5년 동안 실종되어 있었습니다. 아예 사망 처리가 되어 있어서 거부가 아니라 미비가 되는데, 본인 스스로 그런 법안이 발효되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 딱히 적용할 조항이 없습니다.”

“그럼 보내면 되잖아.”

“그게 좀 찝찝합니다.”

“또 왜요?”

“자르체프를 잡아 죽이는 걸 바로 앞에서 봤는데, 대체 무슨 방법으로 죽인 건지 모르겠습니다.”

“왜 몰라?”

“저도 어떻게 설명을 못하겠습니다.”

여자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최정훈을 바라보았다.

“최정훈 씨.”

“예.”

“일이 많아서 치여 죽으려고 하는 최정훈 씨. 제발 집에 가서 하루만 전화고 뭐고 신경 안 쓰고 잠 좀 잤으면 좋겠다고 하는 최정훈 씨.”

“……예.”

“그러면서도 일이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은 최정훈 씨! 어떻게 삼 일 만에 집에 보내놨더니 그 잠깐 사이에 또 일거리를 물어 오세요! 워커홀릭이세요?”

최정훈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워커홀릭이라니.

자신은 일 때문에 자살 직전인 사람이었다.

삼 대조 조상까지 싸잡아 욕해도 이 정도의 모욕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끔찍한 낙인에 딱히 반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와, 대단하다. KSF 직원이라는 사람이 통제구역에 어슬렁거리며 들어간 것도 황당한데, 어떻게 그 안에서 또 사건이 터지냐? 이 상황을 대체 뭐라고 해야 하지?”

‘아니, 그전에 죽다 살아난 부하 직원을 위로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불만은 넘쳐흘렀지만 최정훈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 여자에게 어설프게 말싸움을 걸었다가는 안 그래도 바쁜 시간 중 많은 영역을 잔소리 타임이라는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일로 낭비해야 할 테니까.

여자가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화면을 다시 노려보았다.

‘제발 생긴 만큼만 좀 하자.’

겉모습만 보면 더 바랄 게 없다. 제멋대로 흐트러뜨린 머리가 금세 찰랑거리며 제자리를 찾아간다. 무슨 샴푸 쓰시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그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또 어떤가.

저렇게 대놓고 인상을 쓰며 이를 갈아대는데도 이쁜 여자는 정말 흔하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몸매가 빠지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170의 키에 나올 데는 과도하게 나오고 들어갈 데는 과도하게 들어간 몸매는 얼굴을 가려도 몸매만으로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인상이 조금 날카롭긴 하지만, 그게 흠이 되지 않을 만한 미모와 몸매를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럼 뭐하나.

‘속이 썩었는데.’

마녀 팀장.

바토리 부인의 재래.

걸어 다니는 서라운드 스피커.

신은 공평하시도다. 이 여자에게 연예인 귀싸대기 날릴 미모와 군대 선임 쌍싸대기 날릴 성격을 동시에 주셔서 밸런스 붕괴를 막으셨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자신의 상사인데.

서아영.

지금 모니터와 보고서를 동시에 보며 짜증을 팍팍 내고 있는 여자의 이름이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최정훈의 직속 상사이자 최정훈을 괴롭히는 습관성 위염의 원인이다.

모니터를 가만히 보던 서아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저게 특이 능력자란 거죠?”

서아영이 가리킨 ‘저것’은 방 안에만 있기가 심심했는지 벽에 설치된 매직미러에 입김을 불어 하트를 그리고 있었다.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나사가 빠져도 좀 많이 빠진 모양이다.

“아마두요.”

“제정신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확실합니다.”

“확실히 제정신이란 거예요?”

“아뇨. 확실히 제정신이 아닙니다.”

서아영과 최정훈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하지만 최정훈은 한 점 부끄럼 없이 떳떳했다. 미친놈을 미친놈이라고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다고.

“그러니까…….”

서아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뭔가 말하려고 하던 그녀는 잠시 머리를 휘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다. 가보죠. 말을 해보면 알겠죠.”

“예.”

서아영은 성큼성큼 걸어 취조실로 향했다.

취조실은 커다란 공동 가운데 만들어진 작은 방이었다. 때때로 일반적인 벽으로 막을 수 없는 능력자들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방이었다.

서아영은 간단한 보안 절차를 거쳐 방문 앞에 서더니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청년이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다가 겁먹은 듯한 눈으로 서아영을 올려다보았다.

‘가증스러운 놈.’

조금 전까지 유리에 입김을 불어 하트를 그리던 놈이 사람이 오니까 쫀 척하는 거 봐라. 저거, 저거.

하지만 서아영은 그런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부터 취조할 사람을 시작부터 움츠러들게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안녕하세요. 성함이?”

청년은 순순히 대답했다.

“이지혁이요.”

“아, 이지혁 씨시구나. 반가워요. 저는 여기 팀장을 맡고 있는 서아영이라고 해요.”

서아영의 환한 미소를 본 이지혁이 따라 미소를 지었다.

“예, 반갑습니다.”

“별일은 아닌데. 나름 저희도 규정이 있어서 몇 가지만 물어볼게요.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어, 잘 모르겠는데요?”

“나이를 잘 모르신다고요?”

“예. 시간관념이 좀 애매해서.”

“아, 그러시구나.”

서아영이 최정훈과 시선을 마주쳤다.

‘미친놈 맞는 거 같은데?’

‘맞다고 했잖습니까.’

서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뭐, 나이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죠. 그럼 사는 곳이 어디시죠?”

“서울요.”

주소를 말해야지, 이 꼴통아.

서아영은 입으로 나올 말과 속으로 생각할 말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나이나 주소 같은 것은 중요하지도 않았다. 원활한 대화를 위해 스킵할 필요가 있다.

“그러시구나. 별로 쓸데없는 질문은 넘어갈게요. 지혁 씨, 지혁씨가 자르체프, 그러니까 그 괴물을 처치한 게 맞죠?”

지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닌데요.”

“네?”

“제가 한 거 아닌데요?”

서아영의 시선이 최정훈에게로 향했다.

“아, 아닙니다.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제가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렇다는데요?”

“아, 저 아저씨 벌벌 떠시더니 헛것 보셨나 보네. 전 그런 적 없는데요?”

서아영의 시선이 다시 돌아갔다.

“그러시다는데?”

“아닙니다! 진짜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에이, 말도 안 돼요. 제가 무슨 수로 그런 괴물을 죽여요. 어떻게 죽인 건지 보셨어요?”

“그야…….”

최정훈은 그가 본 바대로 충실하게 설명을 했다.

“이렇게 손을 휘적 하니까 자르체프 대가리가 펑! 하고…….”

“휘적, 펑?”

서아영의 목소리가 갈려 나왔다. 목소리에 어린 어조로 볼 때, 이대로 조금만 지나면 목소리가 아니라 그를 갈아 마실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휘적하니까!”

“펑.”

이지혁이 내뱉은, 영혼 없는 추임새가 최정훈의 목소리에서 힘을 앗아갔다.

“뭐,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으니까 헛걸 보셨을 수도 있죠.”

최정훈은 억울했다.

저 가증스러운 놈 좀 보소.

“와, 이거, 미치고 팔짝 뛰겠네.”

“내가 미치게는 못해줘도 진짜 팔짝 뛰게는 해줄 수 있으니까 입 다물고 저쪽으로 찌그러져요.”

“옙.”

최정훈을 무시무시한 기세로 찌부러뜨린 서아영이 안색을 확 바꾸고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이지혁을 향해 말했다.

“우리 직원이 착각을 한 모양인데, 그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전 그냥 거기에 지나가고 있었는데 괴물이 달려들더라구요. 그래서 이제 죽었구나 하고 벌벌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더니 괴물 머리를 터뜨려 죽이고는 사라졌어요.”

이지혁은 손짓, 발짓을 동원해 가며 자세히 설명했다. 물론 그 자세히라는 것은 이지혁의 기준이었지만.

서아영의 미소가 더욱 화사해졌다.

“아, 우연히 지나가시다가 우연히 괴물을 만나셨고, 우연히 지나가던 선비…… 아니, 지나가던 사람이 구해주셨군요.”

이지혁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바로 그렇죠!”

“그러니까 이지혁 씨는 괴물이 죽은 거랑은 전혀 관계가 없으시다?”

“물론이죠.”

“우리 직원이 헛것을 봤다?”

“기가 허하신 모양이더라구요. 괴물 보고 놀라지도 않으시던데요?”

“아, 그러시구나.”

서아영은 두말 않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 그거 확보했어? 어? 했다고? 이쪽에 연결 좀 해봐.”

간단한 통화를 마친 서화양이 이지혁을 향해 다시금 업무용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지혁 씨가 하신 말씀대로라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바로 집으로 보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다음부터 선량한 사람 고생시키지 말고 확인 똑바로 좀 해주세요.”

“죄송해요. 제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 건데. 그래도 절차라는 게 있으니까 하나만 더 확인할게요.”

“또요?”

“간단한 거예요. 대답도 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같이 보시기만 하면 되거든요?”

“뭘요?”

“이거요.”

서아영이 가리킨 곳은 벽면이었다.

“저게 뭐…….”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벽면이 껌뻑하더니 화면이 나타났다.

이지혁이 멍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징그럽게 생긴 괴물이 어떤 괴상한 복장을 한 청년에게 달려들어 팔을 휘두르려 하자 청년이 살짝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괴물의 머리가…….

“펑!”

최정훈이 방금 전 당했던 울분을 담아 효과음을 삽입했다.

그 장면에서 화면이 멈추더니 청년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기 시작했다. 한 단계, 두 단계… 점점 청년의 얼굴이 클로즈업이 되더니, 이내 화면은 가득하게 청년, 이지혁의 얼굴로 꽉 차버렸다.

최정훈은 멍하게 화면을 바라보는 이지혁을 향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마디를 더 추가했다.

“휘적, 펑.”

“…….”

“휘적, 펑.”

어지간히 억울했던 모양이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만해요!”

서아영이 최정훈을 슬쩍 밀어내더니 다시금 화사한 업무용 미소를 입매 가득 담고 말했다.

“하실 말씀이라도?”

이지혁은 최정훈과 서아영, 그리고 자신의 얼굴이 커다랗게 나와있는 화면을 번갈아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즘은…….”

“요즘은?”

이지혁의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CCTV 화질이 참 좋네요.”

자포자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