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d Race Due to System Error

< 77 post-processing (1) >

검령과 귀령의 숨이 완전히 끊긴 것을 확인한 나는 가장 먼저 지아를 비롯한 1팀 사관생들의 상처를 확인했다.

“······다행이다.”

모두 살아 있다.

이 정도 출혈량이면 과다출혈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정신만 잃었을 뿐, 어찌어찌 모두 숨은 붙어 있다.

초인의 생명력 덕분이리라.

나는 간이 포켓에서 응급 치료약을 꺼냈다.

하나밖에 없어서 가장 상처가 심한 지아의 상처에 바르기로 했다.

“읏.”

따가운지, 눈을 감은 채로 신음을 내뱉었다. 아름다웠던 얼굴이 먼지와 피로 엉망이다.

“에휴.”

다 내 실수다.

검령과 귀령의 능력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드레이크와 연결짓지 못한 내 실수.

······아니, 거기까지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오만인가.

나는 쓰게 웃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검령의 시체 옆에 꽂혀 있는 프로모시움 대거를 향해 다가갔다.

“······이걸 어떡하지?”

이걸 숨겨야 하는데 숨길 방법이 없다.

급하게 오느라 장비 운반 캐리어를 두고 왔다.

나는 프로모시움 대거에 손을 댔다.

파직-!

“앗 따거!”

역시 쥘 수 없다.

“······진짜 큰일인데.”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귀령이 펼친 혼란귀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다.

혼란귀의 효과가 모두 사라지면, 지원이 도착할 거고.

지원 온 초인들은 당연히 프로모시움 대거에 관심을 가질 거다.

그 다음은 단검이 고대 유물이라는 걸 알아 챌 것이고.

내가 이 단검을 쥐었다는 것도 금세 밝혀질 것이다.

진설하 교관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봤으니까.

그럼 내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대충 30초 남았나.”

혼란귀의 여파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대충 30초.

그 전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이게 대체······.”

“!”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이다.

나는 잽싸게 뒤를 돌았다.

“유화··· 씨?”

유화였다.

유화는 다급한 몸짓으로 정신을 잃고 있는 사관생들을 차례차례 살피고 있었다.

“휴.”

모두 숨이 붙어 있다는 걸 알았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결계를 뚫고···?”

어떻게 혼란귀를 뚫고 온 거지?

“출동 요청 받고 왔죠. 결계는 그냥 뚫고 왔고요. 제 은신은 외부 상태이상에 면역이거든요.”

“아.”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혼란귀를 무시할 수 있었던 거구나.

“그보다.”

유화가 검령, 귀령의 시체를 훑고. 마지막으로 내 발치의 프로모시움 대거를 노려봤다.

“역시.”

무언가 확신에 찬 눈빛이다.

설마 이게 뭔지 아는 건가?

“······그거. 에일 씨한테 받은 고대 유물이죠? 수인족의 유물.”

나는 이마를 짚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거의 정보를 확인하지 않는 한, 이게 고대 유물인지 일반 아이템인지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유화는 다르다.

유화는 콜렉터와 나 사이를 연결하는 파이프다.

당연히 이 단검에 대한 걸 자료로 봤을 거다.

그걸 기억하고 있는 거겠지.

“그,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약속의 플랜 C.

‘사실 전 수인이에요! 컹컹!’

작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전 사실······.”

그렇게 거짓을 입에 담으려고 할 때였다.

“됐어요. 다 알고 있으니까.”

“예?”

유화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끊었다.

나는 벙쪘다.

······알고 있다고? 뭘?

“무슨 말······.”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해요. 시간 없잖아요?”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와 허리춤의 포켓에서 손바닥만 한 상자를 꺼내 들었다.

“뭘 하시려고······.”

“일단 이걸 숨겨야 되잖아요?”

“그, 숨겨야 되는 건 맞는데.”

촤라라락-

동시에 상자 요란한 기계 소리를 내며 점점 부피를 늘려갔다.

“······휴대용 운송 캐리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프로 초인들은 하나씩 소비하고 다니는 고가의 장비다.

“네. 크진 않지만, 단검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거예요.”

유화는 그 장치를 열어, 프로모시움 대거 앞에 두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패널을 조작했다.

그러자 캐리어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오며, 프로모시움 대거를 감쌌다.

“······반중력 장치까지 달려 있네요?”

저거 엄청 비싼 걸로 아는데.

“익숙해지면 제법 편리하거든요.”

유화의 조작에 맞춰 바닥에 박혀 있던 단검이 두둥실 떠올라, 캐리어 안으로 쏙 들어갔다.

탁-

유화가 마지막 조작을 마치고 캐리어를 닫은 순간이었다.

―이쪽이야!

―인식 장애 결계가 풀렸어!

멀리서 초인들의 소리가 들렸다.

혼란귀가 완전히 풀린 모양이다.

“서율 씨.”

유화가 캐리어를 들고 내게 말했다.

“저만 믿어요.”

“······?”

내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찼다.

* * *

폭군 드레이크 폭주 사건은 말 그대로 드레이크가 미쳐서 날뛴 사건으로 처리됐다.

희생자는 총 12명.

두 팀이 드레이크에게 희생되었다.

오늘 아침.

학교에서 그 12명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후 7시.

나는 유화의 멘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안타깝네요. 꽃다운 나이에.”

유화가 내게 차를 건네며 쓰게 웃었다. 나는 그 차를 홀짝 마셨다. 씁쓸한 차를 마셨기 때문일까. 내 입가도 씁쓸해졌다.

“지아 씨는 어때요?”

“다리에 상처가 심하긴 한데, 다행히 후유증은 안 남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직 깨어나진 못한 거구요?”

“예.”

지아가 병원에 이송된 지 24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지아는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력을 너무 과하게 써서 그런 걸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내 표정이 좀 그랬던 것일까.

유화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보다 귀령, 검령 일은 어떻게 처리 됐나요?”

“잠시만요.”

유화가 찻잔을 테이블에 내리고,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사건 처리 서류였다.

“일단 신화 그룹이랑 얘기해서, 공식적으론 발표하지 않기로 했어요. 사관학교 측에서도 발표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표했고요.”

“역시 그렇게 됐군요.”

신화 그룹의 금지옥엽(金枝玉葉)이 진리의 구명자 소속 빌런에게 납치를 당할 뻔했다니.

신화 그룹 입장에서도, 사관학교 측 입장에서도 숨기고 싶은 치부일 테니까.

당연히 숨기고 싶어 할 수밖에.

“아. 그리고 프로모시움 대거 말인데요.”

흠칫.

유화의 말에 내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 단검의 존재는 제가 잘 감췄으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거예요.”

“······그렇군요.”

유화가 싱긋 웃었다.

그 후로 짧은 정적이 흘렀다.

“유화 씨는······.”

나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떻게 고대 유물을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네.”

유화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차를 홀짝였다.

“그때도 말했지만, 이미 다 알고 있거든요.”

내 눈썹이 날카로워졌다.

유화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뭘 알고 있다는 건가요?”

유화가 확신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서율 씨의 과거.”

내 과거?

······설마.

유화가 또 하나의 서류를 꺼내 내게 넘겼다.

[햇빛 고아원 생체 실험 기록]

······또 너냐?

생체 실험 보고서.

또 네가 범인이야?

근데 이거 어떻게 찾은 거야?

사건을 은폐하는 데 일조한 당사자가 아니면 손에 넣을 수 없는 기록일 텐데.

아니, 그보다 햇빛 고아원 인체 실험이랑 내가 고대 유물을 사용할 수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서율 씨는 종족 융합 프로젝트의 생존자죠?”

“······.”

아닌데요.

시스템 초월 프로젝트의 생존잔데요.

“수인족의 고대 유물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실험에서 수인족의 인자를 융합했기 때문일 테고요.”

그건 창조주한테 술 마시고 막말했다가 시스템에 에러나서 그런 겁니다.

“이러면 첫 교섭에서 맹호의 건틀릿을 요구했던 것도 납득이 가요.”

그 일은 도플갱어도 처리할 겸 뭐 하나 얻을 게 없나 생각해 보니, 그것밖에 안 떠올라서······.

“실험을 벌인 건 진리의 구명자. 복수심을 품는 건 당연해요. 그래서 진리의 구명자를 쫓는 거잖아요. 피알레 알로, 도플갱어, 표일찬, 베가본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이유도 복수를 위해서일 테고요.”

그것들은 그냥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서 그랬던 것뿐이다.

진리의 구명자는 그냥 내 목적에 방해되는 놈들이라서 없애 버리려는 것뿐.

아니, 애초에 피알레 알로는 진리의 구명자도 아닌데, 왜 저 사이에 껴 있는 거야?

“진리의 구명자에 대한 정보에 빠삭한 이유는, 실험 당시 연구원들의 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 맞죠?”

그건 내가 원작 소설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다양한 고대 유물을 모으시는 걸로 보아, 수인족을 제외한 다양한 종족들의 인자도 품고 있을 가능성이 클 테고요.”

다른 종족의 인자를 이식받은 적은 없다.

“제 말 중에 틀린 게 있나요?”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 음.

뭐가 틀렸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다.

······그냥 다 틀렸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당황해서 입술을 달싹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눈동자도 마찬가지로 당황으로 갈 곳을 잃고 마구 흔들렸다.

“······아.”

그러자 유화가 세상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랬죠.”

죄책감으로 점철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안해요. 그 일은 서율 씨한텐 트라우마일 텐데. 제가 섬세하지 못했어요.”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

그리곤 옆에서 나를 상냥하게 안았다. 내 신체가 당황으로 경직됐다.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죠?”

“······.”

나는 녹슨 기계처럼 목을 끼기긱 돌려서 코앞에 있는 유화의 얼굴을 바라봤다.

날 똑바로 직시하는 유화의 눈동자엔 물기가 가득했다.

“혼자서······ 그 실험을 몇 년이나 버텨 내고. 아무한테도 말 못한 채 혼자서······.”

목소리가 울먹임으로 떨렸다.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유화가 내 양 어깨를 붙잡고, 환하게 웃었다.

내가 본 유화의 미소 중 가장 싱그러운 미소였다.

“앞으로 서율 씨 옆엔 제가 있을 테니까요.”

“······.”

그 미소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

아니.

생각을 그만뒀다.

* * *

―······진짜?

그날 밤.

유화는 메이든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진짜 그런 낯 뜨거운 말을 했다고?

“······으으으.”

유화는 침대에 누워 얼굴을 박은 채 신음을 흘렸다.

―푸하하하하!

수화기 너머로 메이든의 웃음소리가 호쾌하게 울렸다.

―화 네가 감수성이 풍부한 건 익히 알고 있었다만. 설마 그정도일 줄은 몰랐다. 크크!

유화는 귀까지 시뻘개진 채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니이! 어, 언니가 그 표정을 봤어야 한다니까요? 제 얘기가 이어질 때마다 눈에서 빛이 사라져 가는 게 얼마나 안타깝던지.”

배게에서 눈을 뗀 유화의 얼굴은 토마토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입술도 막 부들부들 떨리고! 동공은 갈 곳을 잃은 채 흔들리고! 안색은 점점 창백해져 가고! 진짜 장난 아니었다니까요!”

―······그 정도였어?

메이든이 웃음을 멈췄다.

“네. 평소였으면, 아니라고 시치미라도 뗐을 사람인데.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어깨만 흠칫흠칫 떠는 게. 무슨 상처 입은 아기새 같았다니까요? 언니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저랑 똑같이 행동하셨을걸요?”

유화가 정색했다.

메이든도 정색했다.

―아무리 그래도 ‘앞으로 서율 씨 곁엔 제가 있을 테니까요. 싱긋’ 은 아니지.

“······읏!”

유화가 입술을 짓씹었다.

그 말에 다시금 부끄러움이 치솟았다.

‘내가 미쳤다고 그런 말을 해서!’

―자료만 봐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그 실험을 직접 겪은 사람이 트라우마가 없을 수가 없지.

메이든이 이를 바드득 갈며 말했다. 그 실험으로 죽은 메이든의 딸 레아를 떠올린 것이다.

―오히려 지금 웃고 있는 게 신기한 거야.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만약 자신이 강서율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강서율처럼 웃고 장난치며 생활할 수 있을까.

유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꼬맹이는 심지가 강하니까 알아서 잘 할 거야. 그런 애들한테 괜한 배려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 대했던 것처럼 하고.

“저도 알고 있거든요?”

―알면 됐고.

유화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도 나름 길드장인데, 언제까지 애처럼 취급하려는 건지.

―아. 그리고 생각보다 준비가 빨리 돼서. 내일 새벽 비행기로 한국에 갈 거야.

“고대 유물은요?”

메이든이 일단 귀국한 이유는 강서율에게 줄 고대 유물을 반입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해로를 통해서 잘 오겠지. 고속선이니까, 금요일 밤쯤에는 도착할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그 꼬맹이가 좋아하려나 모르겠네.

유화가 넌지시 답했다.

“좋아하시겠죠. 그나저나 몇 개나 찾았어요?”

―뭐가?

“창고에 박혀 있던 고대 유물의 숫자요.”

―아. 내가 말 안 했던가? 생각보다 별로 없더라고.

메이든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3개 있더라.

< 77화 뒤처리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