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d Race Due to System Error

< Overcome 1990s (1) >

아이가 이니를 불러온 직후, 나는 질질 끄는 것 없이 시간룡, 크로노스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 빌어먹을 노룡이 진짜······.”

이니가 사라진 직후에 우리를 직접 초대했다는 말을 듣고는 불같이 화를 냈고.

“존대를 했어? 그 괴팍한 양반이? 별일이네.”

첫 만남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는 눈을 빛내며 감탄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간룡의 죽음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는······.

“······네 손으로 직접 크로노스 장로님의 심장을 적출했다고?”

“네.”

일순 분노한 것처럼 보였다.

당연하겠지. 시간룡이 말하길 이니는 딸 같은 아이라고 했다.

그 말은 즉 이니에게 있어서 시간룡은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는 말이다. 그런 존재를 내 손으로 죽였다는 데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유는 당연히 네가 겪고 있는 후유증··· 타임 리프의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그분의 심장이 필요했기 때문일 테고.”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니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울분을 삼켜냈다.

“그래······.”

이니가 살포시 눈을 감았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듯하기도 했고,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아마 둘 다가 아닐까.

“대충 알겠어. 크로노스 장로님이라면 충분히 할 법한 일이라는 것도 이해했어.”

약 1분이 흘러.

이니가 조용히 눈을 떴다.

다시 눈을 뜬 이니의 눈에선 나에 대한 원망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원망 안 해?”

궁금해서 물었다.

은인을 직접 손속에 걸친 자를 보고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게 가능할까.

“원망하지.”

이니가 픽 웃으며 답했다.

역시나.

이성으론 이해를 한다고 해도, 감정으론 이해할 수 없겠지.

드래곤족에게 ‘살해’란 살아왔던 인생 전부를 부정당하는 것과 같은 최고의 치욕.

그런 치욕적인 죽음을 선사한 나를 조금이라도 원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

그렇게 조용히 사과를 건네려고 할 때였다.

이니가 내 입을 막았다.

“사과하지 마. 내가 원망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니까.”

그리곤 자조하듯이 고개를 숙였다.

“네가 타임 리프 한 것도. 그로 인해서 크로노스 장로님이 불명예스런 죽음을 맞이한 것도. 모두 따지고 보면 내가 마신 그놈을 제대로 막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나 다름없어.”

고개를 푹 숙여서, 눈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꽉 깨물고 있는 입술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했다.

“그런 내가 너무 한심해.”

나는 그런 이니를 멍하니 바라봤다. 내 입을 막고 있는 이니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내가 조금 더 힘이 있었다면······ 네가 이런 리스크를 짊어질 일도··· 크로노스 장로님이 치욕을 짊어질 일도··· 이 세계가 이렇게 됐을 일도 없었을 텐데······.”

이니가 원래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한 성격이었나?

원작의 이니도, 과거에서 만난 이니도 이런 한탄에 가까운 부정적인 말을 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았는데.

‘연이은 패배로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한 건가?’

그럴 가능성이 크다.

패배는 사람을 바꾸는 법이니까.

“7년간 준비했다고 으스댔으면서 이번에 너한테 도움받은 일도 그렇고. 나는 진짜······.”

그렇게 온갖 부정적인 말들을 내뱉으려 할 때였다.

“꺅!”

이니가 평소의 털털한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여성스런 비명을 질렀다.

“뭐, 뭐하는 거야!”

내 입을 막고 있는 이니의 손바닥을 혀로 핥았기 때문이리라.

“왜 갑자기 손을 핥아!”

물론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손 좀 치우라고. 숨막혀.”

“아.”

지금 나는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이니가 내 입을 계속 막고 있으면 말을 할 수도 없고, 호흡하기도 조금 곤란하다.

“미, 미안.”

이니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자조하느라 환자의 호흡을 막았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치솟은 모양이다.

나는 그런 이니를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히 부정적인 생각하지 말고 정신 차려.”

이니에게 지금 필요한 건 위로보다는 따끔한 충고다.

“시간룡 크로노스가 네게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겠는데. 그 일로 네가 그렇게 흔들리면 어떡해?”

“······.”

이니가 더욱 고개를 숙였다.

“애초에 그 상황에서 네가 자책하는 게 말이 되냐? 시간룡을 죽인 게 어떻게 너야?”

나는 코웃음을 쳤다.

“네가 무슨 이 세상의 주인공이야? 모든 실수가 다 네 책임이게? 왜 아주 마신이 태어난 것도 네 책임이라고 해 보지.”

현재 이니의 정신 상태는 좋게 포장해도 좋다곤 할 수 없는 상태다. 시간룡의 죽음까지도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고 있는 걸 보면 머릿속에 네거티브함이 제대로 뿌리를 내린 게 분명하다.

그리고 부정적인 사고는 높은 확률로 일을 그르치는 법.

이 멍청한 생각을 지금 당장이라도 버리게 해야 한다.

“시간룡을 죽인 건 나야. 내가 타임 리프를 해 왔기에 시간룡이 희생할 수밖에 없게 된 거라고.”

나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니를 바라봤다.

“타임 리프는 내가 벌인 일이니, 당연히 그에 대한 책임도 나한테 있고.”

마신을 막지 못한 일에 대한 거라면 모를까, 시간룡의 죽음에 대한 일은 이니의 책임은 단 하나도 없다.

내가 타임 리프를 하지 않았다면, 시간룡은 조용히 마나의 품으로 돌아갔을 테니까.

“막말로 네 생각대로 원인을 찾으면, 마신이 제일 잘못했지. 마신이 전쟁만 일으키지 않았어도 이렇게 될 일은 없었던 거잖아. 그럼 시간룡을 죽인 원수는 마신이라는 게 되는 거고.”

“그건······.”

이니의 논리대로라면 시간룡을 죽게 만든 최초의 원인은 마신이다.

“그니까 괜히 자책하지 말라고. 그럴 시간에 계속 생각해. 어떻게 하면 마신한테 엿을 먹일 수 있을까. 어떻게 마신의 콧대를 눌러 버릴 수 있을까. 그런 거.”

딱 봐도 이니가 생각할 법한 내용들을 적당히 읊었다.

“7년 동안 세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던 말던 뭔 상관이야. 지금부터 더 나은 계획을 세우면 되지. 안 그래?”

나는 통증 때문에 삐걱이는 왼손을 필사적으로 움직여서, 이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천하의 이니라면 충분히 가능하잖아. 그치?”

그렇게 말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통증이 심해서 제대로 웃고 있는진 모르겠다만, 아무튼 웃으려 하고 있다.

“······그럼. 가능하지.”

조금은 힘이 돌아온 듯.

이니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딱 기다려. 일주일 내에 이번에 새로 얻은 마신의 정보를 완전히 분석해서, 새로운 작전을 짜 낼 테니까.”

“그래. 기대할게.”

“기대해. 드래곤 로드의 분석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 줄게.”

그렇게 말하며 웃는 이니의 얼굴은 제법 보기 좋았다.

“아, 그 전에.”

어느덧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 온 이니가 무언가 깨달은 듯이 화제를 전환했다.

“크로노스 장로님이 드래곤 하트랑 용안을 어떻게 쓰라는 말은 없으셨어?”

“아.”

정작 제일 중요한 그 얘기를 안 했네.

“드래곤 하트랑 용안 한 쪽을 한 곳에 넣어 두고 1달을 두면 된다고 하긴 했는데. 이게 말 그대로 같은 공간 안에 넣어두기만 하면 되는 건지. 아니면 특별한 처리가 필요한 건지. 그걸 모르겠어.”

“한 공간에 1달 동안 넣어 두라고 하셨단 말이지······.”

이니가 턱을 쓰다듬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다.

“대충 알았어.”

“······벌써?”

고찰은 찰나였다.

5초도 안 걸린 것 같은데.

“당연하지. 나 드래곤 로드야. 마력을 다루는 데 있어선 지상 최강자라고. 이런 건 척하면 척이지.”

적당히 으스대는 것이, 확실히 내가 알고 있는 이니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했다.

‘다행이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 두 개는 맡겨도 될까?”

“맡겨 둬.”

“고마워. 여기.”

이니가 조용히 내게서 드래곤 하트와 한 쌍의 용안을 건네받았다.

“······.”

그것들을 손에 건네받은 이니의 표정은, 역시 꽤나 슬퍼 보였다.

이니는 드래곤 하트와 용안을 손에 쥔 채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곤 고개를 살짝 내렸다.

아마 시간룡에게 기도를 한 게 아닐까.

그렇게 한참이 흘러.

“크로노스의 이름은 드래곤족의 치부로서 기록될 거야.”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이니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나의··· 드래곤 로드로서의 일이니까. 예외를 둘 순 없어.”

원작에서 묘사됐던 냉담한 표정의 드래곤 로드.

그 성격의 일각이 튀어 나온 것 같은 아주 냉정한 표정이었다.

“아, 그리고 남는 한쪽 용안은 어떻게 할까?”

“그건 이니 네가 지니고 있어.”

드래곤족의 용안은 적출하면 흡사 보석 같은 모양새로 굳는다.

유품으로서 보관하기 딱 좋은 형태라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 같은 사람의 신체 일부를 유품으로 보관하는 건 좀 어떤가 싶긴 한데.

“그래? 그럼 이것도 적당히 아티팩트로 만들어서 줄게.”

내 눈이 조금 커졌다.

“······그래도 되겠어?”

“응. 크로노스 장로님의 바람이 그런 걸 테니까.”

이니가 씁쓸하면서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너 아티팩트 많이 필요하다면서.”

“필요하지.”

“성능 좋은 아티팩트가 훨씬 좋을 거 아냐? 네가 쓸 생각일 테니까.”

“그치.”

“장로급 드래곤의 용안으로 내가 아티팩트를 만든다면, 단언컨대 최고의 성능의 아티팩트가 될 거야. 기대되지?”

“······그러게.”

솔직히 기대가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리라.

드래곤족의 아티팩트는 성능이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데.

최고의 재료에 최고의 장인까지 합쳐지다니.

대체 어떤 아티팩트가 나올까.

‘······시간룡 어르신한테는 진짜 몇 번 감사를 표해도 모자라겠네.’

나는 속으로 다시 한번 시간룡에게 감사를 올렸다.

“그럼 얘기도 다 끝난 것 같고. 나는 이만 나가 볼게.”

이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게?”

“어. 한시라도 빨리 시작해야 하니까.”

이니가 드래곤 하트와 용안을 자신의 아공간에 최대한 조심스레 넣었다.

“부탁할게.”

“맡겨 둬.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테니까.”

이니가 베시시 웃었다.

“아, 그리고 내가 이쪽 작업에 착수하게 되면 네 재활 훈련은 천신이랑 아쿠아가 맡게 될 거야.”

“재활 훈련?”

“······말 안 했던가? 너 지금 신체 상태가 말이 아니라서, 재활 훈련을 해야 해.”

“치료 마법으론 안 되는 거야?”

“그랬으면 우리도 좀 좋았겠냐. 네 몸이 외부의 마력을 받아들이면 더 폭주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지. 너도 스스로 느껴질 거 아냐?”

“······음.”

확실히 몸 상태가 말이 아니긴 하다. 신체만이 아니라, 마력 회로도 정상이라고 보긴 힘들다.

“······재활 훈련 빡세게 해야겠네.”

다행히 처음 깨어났을 때보단 많이 나아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답이 없는 상태라는 건 변함없다.

“천신은 몰라도 아쿠아는 이런 재활 훈련의 전문가니까, 믿어도 될 거야.”

“딱히 걱정 안 해.”

아쿠아(하시연)이 중도의 근육 성애자라는 건 내가 잘 안다.

그 페티쉬 덕분에 근육에 대한 조예가 엄청나게 깊다는 것도 잘 알고. 이런 재활 훈련에 한해선 피진호 교관 다음으로 유능한 인재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있어?”

“이게 진짜 마지막이야.”

이니가 아공간에 손을 넣었다.

“아까 아티팩트 얘기 할 때 줬어야 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까먹고 있었어. 자.”

허공에서 손을 뺀 이니의 손에는 익숙한 형태의 반지.

‘아펠라테니 링’이 쥐어져 있었다.

“그 외에도 자. 여기.”

그리곤 아공간에 손을 넣었다 빼는 동작을 반복했다.

손을 넣었다 뺐다 반복할 때마다, 새로운 유물이 차곡차곡 튀어 나왔다.

“······뭐야 이건?”

정확히 10개의 아티팩트가 공중에 떠오른 순간, 조심스레 물었다.

“뭐긴 뭐야. 아티팩트지.”

11번째 아티팩트를 꺼낸 이니가 작게 웃었다.

“저번에 그랬잖아. 네 힘의 근원은 아티팩트라고.”

“······그랬지.”

분명히 혹한의 땅에서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준비해 왔다 이 말씀.”

12, 13번째 아티팩트를 꺼내는 이니를 바라보며 나는 입을 반쯤 벌렸다.

“일단 적당한 걸로 몇 개 추려 왔는데. 또 필요한 거 있으면 말만 해.”

그러고 보니 그랬다.

이곳은 세이비어 제 1본부.

중앙 군사 거점이다.

“100개던 1000개던, 필요한 아티팩트는 창고에서 다 꺼내 줄 테니까.”

그런 곳에 아티팩트를 보관하는 창고가 없을 리가 없었다.

“그럼······.”

나는 환하게 웃고 있는 이니를 바라보며, 떨리는 마음을 겨우겨우 추스르고 말했다.

“다 줘.”

다 내 꺼야.

아티팩트.

< 199화 극복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