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ouchable: Reaper of the Battlefield

119. Welcome to the Jungle - 1

드래곤은 두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을 맨 채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숨이 턱턱 막히는 습기와 더위 속에서 걸음을 옮기다 보니 SAS 시절 가장 힘들었던 훈련이 떠올랐다.

전 세계 특수부대의 훈련 중 가장 힘들고 위험하다고 소문난 훈련.

죽음의 행군.

개인당 3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수통 하나와 총 한 자루를 든 채 60km가 넘는 코스를 주파해야 한다.

훈련 참가자는 사막과 정글, 산악 지대가 포함된 60km를 주파하는 동안 갈증, 허기, 피로, 탈진에 시달린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수없이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 훈련을 겪었던 드래곤조차 지금 숨이 껄떡껄떡 넘어갈 지경이었다.

서원의 등을 바라보며 묵묵히 걷던 드래곤은 허파가 타는 것처럼 숨이 막히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불과 서른 명 남짓한 인원으로 구성된 대열이 몇백 미터에 걸쳐 길게 늘어져 있었다.

예상대로 용병들은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체육관에서 근육 사이즈만 키웠지, 정작 실전에 도움 되는 체력 훈련에는 소홀히 한 결과다.

그 역시 서원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들과 비슷한 처지였을 것이다.

다섯 시간의 행군 결과, 체력이 남은 용병은 몇 명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중 팔팔한 축에 드는 사람은 존 애킨스와 하트의 SPU 소속 용병 전부, 블랙워터의 지휘관 등 소수에 불과했다.

“몇 명은 탈진 직전이야. 얼마나 더 걸어야 해?”

드래곤의 질문에 서원은 지도를 펼쳤다.

“여기가 이동 중이던 적군이 발견된 장소.”

서원은 볼펜을 들어 지도에 작은 원을 그렸다.

“시간당 그들이 움직인 거리와 방향을 계산해 선을 그으면 지금은 이쯤 어딘가에 있겠지.”

개리 잭슨이 알려준 정보에 따라 계산을 마친 서원은 적군의 예상 이동 경로를 지도에 표시했다.

“이건 우리가 걸어온 길.”

드래곤의 눈이 커졌다.

상대의 예상 위치는 빠른 걸음으로 걸었을 때 불과 한 시간 내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칠 거야?”

“오늘 밤.”

“다들 지쳤는데 괜찮을까?”

“세 명이면 충분해.”

드래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을 제압하는 데는 서원 혼자서도 충분하다.

세 명은 상대의 무기와 통신 장비를 회수하고, 적군을 이쪽으로 끌고 오는 데 필요한 최소 인력이다.

“일단은 행동에 들어가기 전에 저 친구와 얘기를 나눌 필요가 있겠어.”

서원의 시선은 블랙워터 용병들을 향해 있었다.

* * *

로스 재커리가 지정한 타격 대상지는 서른 명 정도가 인질을 지키고 있는 작은 규모의 군사 주둔지였다. 그러나 존 애킨스가 보여준 증거(며칠에 걸쳐 촬영된 위성사진)에 의하면 그곳에는 상당한 숫자의 수송 트럭이 들락거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수송 트럭의 숫자로 어림잡아 짐작해보면 서른 명이 아니라 삼백 명 이상이 소화할 양의 물자가 들어가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군사 시설이 존재하며, 그들이 습격에 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곳을 이 정도의 인원과 장비로 습격한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행군 내내 네이비 씰 출신의 용병 경력이 10년이 넘은 베테랑 칼 타운스를 비롯한 블랙워터 용병들은 모두 충격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조직을 위해 헌신한 우리를 왜?

서원은 ‘나도 너희와 같은 일을 겪었다’라는 말을 삼키며 블랙워터 일행을 향해 다가갔다.

“에릭 프린스(블랙워터 CEO)는 미국의 수호자가 아니야.”

다섯 명의 시선이 서원에게 집중되었다.

“돈과 권력에 중독된 편집증 환자일 뿐이지.”

블랙워터를 설립한 에릭 프린스.

예전 생에서 그는 서원을 블랙워터로 끌어들인 장본인이자 친구였다. 하지만 시선을 달리하니 이제는 그가 달리 보였다.

블랙워터에서 나와 제3자의 시선에서 그들의 행보를 보고 있자니 예전에는 몰랐던 사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애국심, 정의, 공공의 이익처럼 겉만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내자 시커먼 내용물이 드러났다. 돈.

블랙워터는 철저히 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그들의 모든 행보는 돈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서원의 눈에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칼 타운스가 표정으로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서원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증거가 필요해? 미안하지만 증거 같은 건 없어. 너희가 이 정글에서 죽어버리면 연관된 모든 증거가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지. 관련자를 사지로 밀어 넣어 죽음을 맞게 하고, 그 가족에게 푼돈 몇 푼 쥐여주는 게 에릭 프린스의 방식이야.”

서원은 영문도 모른 채 죽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말했다.

지금도 서원은 왜 자신이 바이오 솔저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풀지 못한 미스터리를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서원의 목소리에 분노가 실렸다.

블랙워터 일행은 서원의 목소리에서 섬찟함과 진정성을 동시에 느꼈다.

서원이 말했다.

“지금 너희 머릿속에는 ‘왜’라는 단어만 떠오를 거야. 왜 블랙워터는 우리를 죽이려 할까? 왜 우리가 선택되었는가? 왜 에릭 프린스는……? 왜 로스 재커리는……?”

어느새 다가온 존 애킨스가 서원의 말을 받았다.

“군인 세계에서 가장 해서는 안 될 질문이 ‘왜’지. 왜,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없어. 전장에서 눈먼 총알에 맞는 것처럼 그저 너희가 운이 나빴을 뿐이야. 다만 올바른 조직을 선택하지 못한 건 너희의 실수지.”

지금까지 굳게 입을 다물었던 칼 타운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존 애킨스가 턱으로 서원을 가리켰다.

“잠시 후에 저 친구를 따라가 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 * *

오후 4시가 되자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일찍 찾아온 정글의 밤에 서원은 이동 중지를 명령했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발이라도 잘못 디디거나 뱀이나 독충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진다.

서원의 휴식 명령이 반가운 용병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일찍 침낭 안으로 몸을 뉘었다.

밤 10시 정도가 되자 서원은 기계처럼 몸을 일으켰다.

거의 동시에 몇 사람이 잠에서 깨어났다.

“두 사람은 여길 맡아줘.”

드래곤은 서원을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서원의 빈자리를 지켜야 했다.

서원이 손짓하자 세 명의 블랙워터 용병들이 다가왔다.

오늘 그와 함께 기습할 인원들이었다.

지도를 펼친 서원은 존 애킨스, 칼 타운스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이동 경로를 몇 차례 확인했다.

서원은 모든 작전 참가자의 머릿속에 이동 경로가 선명하게 각인되길 원했다. 만약 돌발 상황이 생겨 대열에서 낙오되더라도 자력으로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서원의 오른손이 하늘을 가리켰다가 전방을 가리켰다.

네 명의 전사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존 애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빛이 반사될 만한 모든 물체와 피부에 검은 칠을 한 네 명의 남자들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칼 타운스는 눈을 깜박거렸다.

분명 서원이 앞에서 이동 중이었다. 하지만 자꾸만 서원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곤 했다.

잠시라도 다른 곳을 쳐다본 뒤 시선을 앞에 두면 약간의 시간이 지나야 서원의 뒷모습이 눈에 잡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는 서원의 뒷모습을 유심히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도비닉을 유지해야 하는 야간 이동 시에는 걸음을 옮길 때 발끝부터 지면에 대야 한다. 그래야 지면에 소리 나는 물체가 있을 때 감지할 수 있고, 발소리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평소와 똑같은 걸음걸이로 걷고 있다. 하지만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다.

풀이 다리를 스치는 소리도, 지면의 나뭇잎을 밟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자꾸만 눈앞에서 사라지는 이 남자가 적이라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서원의 뒷모습을 칼 타운스는 놓치지 않기 위해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군대의 수화는 세계 공통어나 마찬가지다.

오른손을 든 서원이 주먹을 쥐자 일행의 걸음이 멈췄다.

서원은 손짓으로 망원경을 가져올 것을 요청했다.

게리 잭슨이 파악한 바와 같이 육안에 잡힌 숫자는 모두 일곱 명이었다.

일행 모두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지원군이 없는 게 확실하자 서원이 손을 들었다.

‘나 혼자 침투할 테니 세 명은 주변을 경계할 것.’

블랙워터 출신들은 서원의 수화에 깜짝 놀랐다.

칼 타운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생활을 위해 총을 잡은 이래 그는 일곱 명의 적진에 혼자 뛰어들겠다는 사람을 오늘 처음으로 목격했다. 제정신이라면 절대로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제정신이야? 혼자 들어가면 죽어!’

‘소리 나지 않게 적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다.’

‘어떻게 하려고?’

서원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자신을 믿으라는 뜻이었다.

칼 타운스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저었다.

‘네 명이 동시에 침투해 총으로 위협하면 저들은 반드시 반항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발포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

‘그게 정석이야!’

‘정석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결과다.’

‘혼자서 무슨 수로 무장한 적들을 제압하겠다는 거야?’

서원은 가만히 칼 타운스의 파란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끝없이 어둡고 깊은 심연을 담은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친 칼 타운스는 순간적으로 몸이 얼어붙었다. 마치 뱀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인 개구리처럼 꼼짝달싹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서원은 눈앞에 없었다.

칼 타운스는 자신 앞에 놓인 서원의 M4를 바라보며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잠시나마 믿었던 상대가 미친놈이라니…….

* * *

삼단봉을 오른손에, 단검을 왼손에 쥔 서원은 상체를 숙인 채 적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대상은 나무에 기댄 채 경계를 서고 있는 불침번.

두 번째 처리 대상은 손에 총을 쥔 채 잠든 지휘자.

세 번째 처리 대상은 무전병.

타깃 전방 15미터.

유효 거리 내에 목표가 들어오자 서원은 주저 없이 이너포스를 끌어올렸다.

등을 나무에 기댄 채 타오르던 모닥불을 바라보던 불침번은 졸음을 쫓기 위해 눈을 껌벅거렸다. 그때 바람이 불어오며 무언가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모닥불을 바라보던 그의 안구는 엄청난 속도로 자신에게 접근하는 물체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그가 서원을 인지했을 때는 무언가가 입술을 덮은 상태에서 단검이 목젖을 뚫고 지나간 뒤였다.

“끄끄끅…….”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술을 덮은 우악스런 손바닥은 조금의 소리도 빠져나가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불침번의 목에서 빠진 단검은 곧이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일행 누구도 불침번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화등잔만 하게 커진 세 쌍의 눈동자만이 소리 없는 암살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