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도 지나지 않아 답신이 도착했다.

<너무 방대함. 지역 한정 필요.>

하마터면 영국이라고 입력해 자신의 위치를 드러낼 뻔한 게리 잭슨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을 법한 나라를 입력했다.

<스포닝 풀 전체 수: 148,031달러. 특정 장소: 690,182달러.>

“도둑놈들 같으니!”

미국에 존재하는 스포닝 풀의 전체 개수를 알기 위해서는 148,031달러가 필요하고, 특정 도시에 존재하는 스포닝 풀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690,182달러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엄청난 금액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사비로 대가를 지불하고 싶었다. 하지만 존 애킨스에게는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게리 잭슨은 즉시 존 애킨스에게 연락했다.

“우리가 지불할 테니 걱정하지 마.”

존 애킨스의 지시에 따라 게리 잭슨은 <워싱턴>을 입력했다.

690,182달러를 먼저 지정된 계좌에 입금하라는 답변이 도착했다. 처음 보는 숫자 체계로 이루어진 계좌였다.

잠시 후 존 애킨스로부터 익명으로 입금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하자마자 토르 브라우저 한구석에 글자가 나타났다.

<백악관 지하.>

게리 잭슨은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며 중얼거렸다.

“뭐? 백악관 지하에 있다고?”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들며 돈을 날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상한 생각하나가 마음속에 떠올랐다.

‘1790년에 조지 워싱턴이 스포닝 풀의 존재를 알고 그것을 봉인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건축가를 초빙해 워싱턴의 설계를 맡긴 건 아니겠지?’

게리 잭슨은 브라우저를 닫은 뒤 존 애킨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제외한 채 일어난 일을 사실 그대로 전달했다.

서원과 상의를 마친 존 애킨스가 말했다.

“서울로 검색해 봐.”

게리 잭슨은 지정된 시간이 지나자 또다시 토르 브라우저를 실행한 뒤 눈과 귀에 접속하기 위해 주소를 입력했다. 하지만 웹페이지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새로고침을 눌렀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는 허탈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 * *

워싱턴의 스포닝 풀 위치를 확인한 뒤 사흘이 지났다.

서원은 드래곤, 존 애킨스와 함께 여전히 콜롬비아의 호텔에 머물며 수시로 게리 잭슨과 영상 회의를 진행했다. 새로운 조직의 출발을 위한 회의였다.

게리 잭슨이 말했다.

“섀도우 워리어는 마음에 들어. 그런데 문제가 있어. 우리 네 명으로 일을 시작하기에 PMC치고는 너무 규모가 작은 것 같지 않아?”

존 애킨스가 답했다.

“이번에 같이 한두 명의 레벨1 용병들도 같이하자고 하면 얼른 합류할 거야. 나까지 필드 오퍼레이터 다섯 명이면 충분하지. 부족한 인원은 그때그때 고용하면 되니까.”

게리 잭슨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존 애킨스의 말은 이론적으로는 타당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의 논리가 지나치게 이론적이라는 것이었다.

남자다움과 힘, 규모가 중요한 민간군사업계에서 겨우 여섯 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용병 업체에 일을 맡길 곳은 없다.

여섯 명으로 수주할 수 있는 일은 요인 경호가 고작일 것이다. 하지만 소규모의 경호 임무로는 운영비도 대기 힘든 게 현실이다.

게리 잭슨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케 작전의 성공 여운 때문인지 콜롬비아에 머무르고 있는 동료들의 발은 지상에서 10센티미터쯤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한국의 오현 전자를 제외하면 누가 우리 같은 구멍가게에 일을 맡기겠냐고?”

게리 잭슨의 질문에 서원이 나섰다.

“맞아. 그러니까 특화가 필요하지.”

“특화?”

“무장인력 파견, 경호, 군사 컨설팅까지 풀서비스를 제공하는 하트처럼 운영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야. 우리는 이 중 하나만 골라서 밀고 나갈 거야.”

게리 잭슨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했다.

“하아…… 그럼 앞으로 지루한 요인 경호만 하겠다는 거야?”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

서원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원의 미소를 보자 게리 잭슨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바로 서원의 저런 점 때문에 그와 함께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의 곁에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안티-테러리즘이야. 물론 회사가 자리 잡힐 때까지는 일이 들어오는 대로 하겠지만 말이지.”

“뭐? 안티 테러리즘……?”

깜짝 놀란 게리 잭슨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서원이 자신의 경험에 지나치게 매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가 유나이티드 에어웨이즈와 런던에서 일어난 총격 테러를 저지한 장본인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객기 피랍 사건과 총격 테러 사건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대로 가면 테러라는 단어는 조만간 지구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드래곤과 존 애킨스는 이미 서원의 말을 납득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서원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마도…… 내 예상으로 내년부터 테러라는 단어는 세계의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될 거야. 그러니 부탁할게. 회사의 방향을 안티-테러리즘으로 잡고 그쪽으로 홍보해줘.”

머리로는 서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게리 잭슨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 *

“뭐? 안티-테러리즘?”

조지 심으로부터 섀도우 워리어의 독립 소식을 들은 웨스트베리는 비명을 지르다시피 깜짝 놀라 소리쳤다.

좀처럼 감정이 흐트러지지 않는 상관의 놀란 표정과는 반대로 조지 심은 차분한 기색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웨스트베리는 급히 시가를 찾았다.

시가의 끝을 나이프로 잘라낸 그는 급하게 불을 붙였다.

방안에 담배 연기가 자욱해지자 그는 입을 열었다.

“이틀 전에 보고타에서 후안 마누엘 산토스와 PMC 대표들의 모임이 있었던 것은 알고 있지?”

“예.”

조지 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민간 군사 관계자 사이에서 가장 유망한 지역은 콜롬비아다.

서원이 성공적으로 인질을 구출해내고, 그로 인해 FARC가 위기에 놓이자 후안 마누엘 산토스 국방장관은 FARC에 대한 본격적인 토벌을 공표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국방장관은 공식 발표가 끝난 뒤, 대형 PMC 대표들과 함께 자리를 가지며 앞으로 많은 일들이 발주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에 하트를 고용해 재미를 본 건 아주 좋았다. 하지만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점이 문제였다. 만약 반군 소탕에 콜롬비아 정규군이 목숨을 잃기라도 할 경우, 쏟아질 국민의 질타를 산토스 국방장관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FARC 토벌 작전은 콜롬비아 군은 옆으로 빠지고, 돈이 들더라도 PMC를 고용하는 것이었다. 다음 대선에서 잉그리드 베탕크루와 정면승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생각이었다.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군인이 피 흘리는 고깃덩어리를 흔들자 냄새를 맡은 상어 떼가 모여들었다.

서원 때문에 콜롬비아에서 한 차례 물을 먹은 블랙워터는 이번에 만회하고자 에릭 프린스가 직접 방문하는 강수를 두었다.

블랙워터 외에도 미국의 3대 PMC를 비롯해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업체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은 이미 서원에 대해 알고 있었다.

서원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그간 하트에서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송곳은 결국 바지를 뚫고 나온 것이다.

희번덕대는 상어 떼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웨스트베리는 반드시 서원만큼은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서원의 독립 소식은 빨리 전달되었다. 게다가 최근 중동 지역에서 불고 있는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안티-테러리즘’을 표방하면서 말이다.

웨스트베리가 물었다.

“우리가 잡아둘 방법은 없을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게리 잭슨과 조지 테일러가 합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순간에 알짜배기 최상급 요원 셋이 나갈 위기에 처하자 웨스트베리는 ‘끄응’하는 신음 소리를 냈다.

“혹시 콜롬비아에서 일을 맡을 생각은 아니겠지?”

“그 점을 확인해봤는데 우리와 우호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콜롬비아에서는 발을 빼겠다고 했습니다.”

“그 뜻은?”

“일이 있으면 앞으로 맡겨달라는 뜻이겠죠.”

웨스트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영리한 놈이었다. 너무나 영리해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게 문제였지만.

“그럼 자잘한 일 던져주면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해. 만약 회사 유지가 힘들어지면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하고.”

“예!”

웨스트베리는 속이 복잡한 듯 말을 끝내자마자 뒤로 돌아섰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조지 심은 속상한 모습의 상관을 바라보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그들이 우리 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조지 심은 바로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 * *

“갑자기 독립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 되었네요. 이해해주세요.”

조지 심은 서원이 하트의 품을 벗어나리라고 이미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떠나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혹시 다른 업체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겁니까? 혹시 우리의 대접이 소홀했습니까?”

서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만약 조건 때문이라면 진작 얘기를 했을 거예요.”

얼마 전 웨스트베리와 서원을 잡기 위해 대화를 나눈 기억을 떠올린 조지 심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며칠 전, 웨스트베리 경과 함께 서원 경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웨스트베리 경은 어떻게든 서원 경을 붙잡고 싶어 하십니다.”

서원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독립에 대한 계획은 섰어요. 하지만 제가 하트에 머무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죠.”

묘한 뉘앙스의 말에 조지 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얼마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서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금액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 조건을 들어드릴 수만 있다면 하트에 남을게요.”

“조건이라면……?”

서원의 눈빛이 웨스트베리의 눈동자에 정면으로 꽂혔다.

“바이오 솔저, 레벨 3요원. 그들과 관련된 모든 정보의 열람 권한.”

순간적으로 서원의 기백에 압도당한 조지 심은 커다란 압박감을 느꼈다.

눈앞의 남자는 손가락조차 까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당장 자신에게 위험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조지 심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땀을 흘렸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당장 뱉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바이오 솔저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하트가 영국의 수많은 PMC 업체 중에서 가장 선두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원동력이었다. 게다가 그 정보를 공개하게 될 경우 하트와 거미줄처럼 연결된 정계, 재계와의 관계도 드러나게 된다. 만약 누군가에게 이 정보가 오픈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그는 당연하고 웨스트베리의 목숨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조지 심은 가쁜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잠시 후 그의 온몸을 짓눌렀던 압박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자신이 이상한 꼴을 보였다는 생각에 조지 심은 서원에게 양해를 구한 뒤 급히 자리를 떴다.

조지 심이 방을 나가자 서원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젠장! 이너포스에 저항할 줄이야. 심지가 여간 굳은 게 아니란 말이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