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halla Saga

Chapter 1 - Immortal Warrior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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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태호는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눈앞에 떠오른 빛의 문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늘어났다.

[사가 : 불멸의 전사] [동기화율 : 1%]

[ - ]

‘동기화율?’

뭔가 느낌이 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불멸의 전사.

용기사 칼스테드의 칭호였다. 동시에 태호 자신이 제6회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상대팀 일곱 명을 혼자서 올킬 했을 때 얻은 별명이기도 했다.

동기화.

이건 태호 자신과 칼스테드의 일치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죽어서 발할라에 온 것부터가 이미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오, 역시 사가가 있는 건가?”

태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사내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태호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태호는 눈동자를 굴려 동기화율 밑의 빈칸들을 보며 말했다.

“그, 있긴 있는데 그 밑에 공란이 좀 있는데요?”

“그야 당연하지. 사가는 노래이자 이야기! 큰 이야기는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이루어지지 않나!”

‘그러니까 아직 빈 슬롯이라 이건가?’

대충 목차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큰 제목 밑에 작은 소제목 같은 식으로 말이다.

“사가는 마법의 힘이라네. 룬 마법이 그러하듯이 신비 속에도 나름의 질서와 체계가 숨겨져 있는 법이지.”

사내가 껄껄 웃으며 다시 설명했다. 덩치나 근육은 범선 안의 다른 전사들과 대동소이한데 성품이나 지식은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태호가 감탄한 눈으로 바라보자 사내가 다시 웃었다.

“훗, 그 시선이 뭘 말하는지는 잘 알지. 난 드루이드였다네. 사가 외에도 룬 마법과 정령 마법을 사용할 줄 알지.”

아무래도 사가 이외에도 다양한 마법들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일단은 이 사가인지 뭔지를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태호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전장이 보인다!”

“싸울 준비를 갖춰라!”

범선 머리맡에 선 발키리가 뿔피리를 불자 전사들이 하나 둘 소리치기 시작했다.

“때가 왔군. 자네도 무기를 들게나.”

“자, 잠깐만요!”

“살아남게. 남은 이야기는 밤의 연회에서 나누도록 하지!”

씩 웃은 사내는 그대로 돌아서더니 전사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사내의 뒷모습을 황망히 바라보던 태호는 두 손으로 찰싹 스스로의 뺨을 때렸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였다.

“할 수 있어.”

태호는 발치에 놓여 있는 검을 보았다. 거의 떠밀리듯이 범선 위에 올라탄 뒤에 받은 물건이었다.

“할 수 있어, 이태호.”

숨을 깊이 삼킨 태호는 천천히 손을 뻗어 검을 들어올렸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받았을 때보다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불멸의 전사.

태호는 다시 숨을 내쉬었다. 손바닥에 검의 손잡이가 찰싹 달라붙는 것 같았다. 마치 전용 마우스를 손에 쥐었을 때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칼스테드는 용의 피를 이은 용의 기사였다. 단신으로 수백, 수천의 군사를 격파할 수 있는 진짜 초인이었다.

동기화라는 것이 태호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설사 1%라도 충분했다. 태호 자신은 할 수 있었다.

‘좋아!’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놈의 밤의 연회인지 뭔지에 참가해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결심한 순간이었다.

“으헉?!”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범선이 뒤흔들렸다. 하마터면 자빠질 뻔 했던 태호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단순히 배가 부두에 닿으면서 난 소리였는지 전사들이 우르르 뛰어내리고 있었다.

“원군이 왔다!”

“항구를 지켜내라!”

범선 너머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뿐만 아니라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 소리,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것들이 크게 울렸다.

“서둘러라! 범선을 유지하는 마법이 곧 사라진다!”

누군가 태호의 등을 떠밀었다. 태호는 상대를 돌아보는 대신 그대로 달려 범선에서 뛰어내렸다. 싸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범선 바닥이 점점 반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과연 태호가 뛰어내리고 얼마 안 있어 범선은 사라졌다. 태호는 검을 꽉 움켜쥔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싸움이 한창이었다. 더욱이 배를 대기 위한 항만 같은 곳이 아니라 그냥 전장 한복판이었다. 왜 작전 설명이고 뭐고 없었나 했더니 작전 자체가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난전이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숨이 가빠졌다. 넓게 개방된 전장은 어디 몸을 숨길만한 곳도 없었다. 발할라에서 같이 온 전사들은 개처럼 생긴 머리의 인간형 괴물들과 싸우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그 수가 수백을 우습게 헤아렸다.

태호는 애써 숨을 가다듬었다.

게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찌 보면 같았다.

기본기와 스킬을 활용해 적을 쓰러트리면 되는 것이었다.

“크헝!”

‘같기는 개뿔!’

개머리 괴물 한 마리가 위협하듯 크게 짖으며 태호에게 덤벼들었다.

그 순간 태호의 몸이 반응했다. 의식해서 한 행동이 아니었다. 옆으로 몸을 틀어 개머리 괴물이 휘두른 태도를 피한 태호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생전 처음 휘두르는 검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세가 무척 날카로웠다.

“커컥!”

목이 베인 개머리 괴물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 괴성에 정신이 번쩍 든 태호는 이를 악물고 다시 검을 휘둘러 괴물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벤다기 보다는 후려치는 것에 가까운 동작이었지만 효과가 있었다. 베인 목을 움켜쥐고 있던 괴물이 그대로 나자빠졌다.

“죽어!”

저도 모르게 소리친 태호는 검 끝으로 괴물의 등을 내리 찍었다. 괴물은 잠시 움찔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축 늘어졌다.

“허억! 헉······.”

태호는 다시 검을 뽑았다. 그리고 확신했다. 프로게이머 이태호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설의 용기사 칼스테드는 달랐다.

사가.

불멸의 전사의 효과.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이태호!’

조금 더 침착하게. 조금 더 냉정하게.

태호는 사고했다. 사실 늘 하던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태호는 정면을 보았다. 괴물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놈이 이쪽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태호는 놈을 똑바로 노려보며 생각했다.

사가 아래에 있던 빈 슬롯.

두 개였다.

그렇다면 더할 수 있는 작은 이야기가 두 개뿐이라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 가능한 것이 두 개뿐이라는 것일까.

괴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놈이 입을 더 크게 벌렸고, 들고 있는 조잡한 검을 크게 휘두르기 위해 팔을 뒤로 넘겼다.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은 기묘한 감각 속에서 태호는 직감했다. 거친 숨을 토하며 검을 당겼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또 하나의 사가를 만들어냈다.

‘아! 이태호 선수! 빠르죠! 평범한 선수들보다 세 배는 더 빠를 겁니다! 폭풍이에요! 폭풍!’

목이 터져라 외치는 해설진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했다.

사가는 이야기이자 전승.

믿고 전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그 힘이 강해지는 것.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무지막지한 스피드로 질주하던 자신을 보고 모두가 열광했었다.

전장을 질타하는 칼스테드의 폭주에 모두가 환호했었다.

[사가 : 전사의 질주는 폭풍과 같으니.]

태호가 지면을 박찼다. 괴물이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놈에게 접근했다.

‘으왓?!’

태호는 스스로의 속도에 놀랐다. 고작 몇 미터에 불과했지만 그 거리를 말 그대로 빛살처럼 가로질렀기 때문이다.

괴물의 숨결이 뺨에 닿았다. 꽉 움켜쥔 검이 놈의 복부를 꿰뚫었다.

손끝에서부터 느낌이 왔다. 태호는 기분 나쁘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검을 비틀었다. 괴물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발버둥을 쳤다.

괴물의 손톱이 어깨를 할퀴었다. 아프다기보다는 뜨거웠다. 마치 불에 데인 것 같았다.

“우오오!”

태호는 다시 한 번 고함을 지르며 검을 비틀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괴물 채로 검을 살짝 들어 올린 뒤 거칠게 검을 뽑아냈다.

“카칵!”

괴물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태호는 확인 사살하듯 놈의 목을 재차 찌른 뒤에야 겨우 다시 숨을 쉬었다.

“커헉. 헉.”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현기증이 났다. 지독한 피 냄새에 코가 마비된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시야는 뚜렷했다. 주변의 소리도 잘 들렸다.

‘버프기.’

불멸의 전사와는 달랐다. ‘전사의 질주는 폭풍과 같으니’는 액티브 스킬에 가까웠다.

‘사용하면 움직임이 빨라지는 건가?’

기술에 대한 이해도는 중요했다.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응용도 가능했다.

그리고 태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사가는 아직 미완성이었다.

사가의 기원이 된 일화. 국가대표전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던 칼스테드의 질주.

그에 미치지 못 했다. 당시 칼스테드의 질주는 단순히 좀 빠른 수준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전장을 휩쓰는 폭풍이었다.

불멸의 전사와 마찬가지로 아직 성장의 여지가 있는 게 분명했다.

태호는 이를 악물고 다시 주변을 보았다. 여전히 난전이었지만 애당초 주변에 발할라 전사들이 많아서 그런지 당장 태호에게 달려드는 괴물은 없었다. 전체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발할라의 전사들은 강했다. 각기 자기만의 사가를 사용하고 있는 지 어떤 자는 몸에서 빛을 내뿜었고, 어떤 자는 칼에서 불꽃이 솟구쳤다.

‘어라?’

그런데 새삼 태호의 시선을 끄는 모습이 있었다. 전사 하나가 방금 죽은 괴물의 시신 위에 손바닥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괴물의 시신에서 빨간 연기 비슷한 것이 이는 거 같더니 전사의 손바닥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일련의 과정을 마친 전사는 씩하고 만족스럽게 웃더니 다시 일어서서 다른 괴물에게 달려갔다.

태호는 자신이 쓰러트린 괴물을 돌아보았다. 급히 손바닥을 펼쳐 괴물의 등 위에 올려보았다.

덜컹하는 느낌과 함께 괴물로부터 붉은 연기가 솟구쳐 올랐다.

‘룬.’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정확히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힘이 더해진 느낌이었다.

‘사가로 싸우고 괴물을 쓰러트려 힘을 기른다.’

대강의 규칙이 떠올랐다. 여느 게임과 같은 방식이었다.

태호는 처음 쓰러트렸던 괴물에게도 다가가 손바닥을 올려보았다. 이번에도 덜컹하는 느낌과 함께 무언가가 전해져 왔다.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태호는 다시 가빠지기 시작한 숨을 애써 가라앉히며 마른 침을 삼켰다.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다.

게임처럼 이곳에도 규칙이 있다.

“토르!”

갑자기 전사들 사이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졌다. 태호는 얼른 무기를 고쳐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전사들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전사들이 왜 돌연 신의 이름을 외쳤는지를 이해했다.

“천둥의 신께서 강림하셨다!”

정말로 그러했다. 전장의 하늘 위에 우뚝 선 자가 있었다. 푸른 번개를 전신에 두른 거대한 남자였다. 커다란 황금빛 망치를 든 그는 전사들의 환호에 응답하듯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하늘을 달리기 시작했다.

“묠니르!”

“천둥의 신이시여!”

콰쾅!

커다란 뇌성이 하늘로부터 일었다. 아니, 황금빛 망치로부터 시작되었다. 푸른 번개가 전장의 괴물들을 향해 휘몰아쳤다.

“우오오오!”

“토르!”

전사들이 열광했다. 태호 또한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지상에 휘몰아친 번개는 괴물들 수십을 한 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상에서 폭발해 어마어마한 굉음을 일으켰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뒤흔들렸다.

“가라! 발할라의 전사들이여!”

망치를 든 자가 외쳤다. 곁에 있던 발키리들이 앞장서듯 전장의 최선두로 나섰고, 전사들 역시 번개가 휩쓸고 지난 자리를 향해 돌진했다.

태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이었다. 진짜 토르였다.

그리고 새삼 다시 깨달았다.

태호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하늘에서 지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괴물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과 맞서 싸우는 전사들이 보였다.

[사가 : 불멸의 전사]

태호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미친놈이라 욕을 한 뒤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몸으로 싸우는 건 취향이 아니었다. 괴물과의 싸움은 위험했다. 하지만 그냥 뒷짐 지고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승세를 타는 지금, 하나라도 더 많은 괴물을 잡아서 강해져야 다음 전투에서의 생존 확률이 높아졌다.

본능적인 계산이었다.

“일단, 일단 살고보자.”

행동과 모순될 말을 뱉은 태호는 억지로라도 쓰게 웃었다. 게임 속 칼스테드가 그러했던 것처럼 전투 함성을 토하며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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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기화율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