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halla Saga

Chapter 16 - Legend # 3

&

밤의 거인 아발트는 어둠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것들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마술왕 우르가르드 로키 휘하 다섯 손가락.

그 이름은 결코 낮지 않았다. 평범한 거인은 결코 오를 수 없는 자리였다.

때문에 아발트는 자신의 동료들을 인정했다. 저마다 결함을 가진 그들이었지만, 결함을 메우고도 남을 강한 강점을 지닌 자들이었다.

힘의 거인 하라드는 밤의 거인 아발트를 싫어했다. 아발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하라드를 인정했고, 약하지만 동료라는 의식 역시 있었다.

때문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너무 조급했군.’

무엇이 그를 그렇게 조급하게 만들었는지는 알았다. 한 번의 큰 실패. 그리고 이어진 마술왕의 무대응.

두 번의 실패는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는 것이겠지. 우격다짐으로라도 성과를 내고 싶은 것이겠지. 질책이든 칭찬이든 왕의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이겠지.

힘의 거인 하라드는 강했다. 그 정도 존재가 움직이면 아스가르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먼 곳에서도 그 존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서둘러라.”

늦지 않게 끝내라. 영혼 파편을 회수해서 돌아와라.

밤의 거인 아발트는 어둠을 펼쳤다. 아스가르드에 직접 강림한다는 강수를 둔 힘의 거인 하라드의 존재를 조금이지만 가려주었다.

&

거인의 가슴 위에 올라선 헤다는 검을 늘어트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투는 승리했다. 제때 도착해 거인을 쓰러트릴 수 있었고, 발할라 전사들은 괴물들을 격퇴했다.

시리도 큰 활약을 했다. 토르 군단의 하급 전사와 짧게 이야기를 나눈 그녀는 헤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대강의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리와 하급 전사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기 때문이다. 발키리의 예민한 귀는 전장에서 동시에 울리는 수십 가지 소리조차 하나하나 구분할 수 있었다.

태호가 향한 방향은 아마도 괜찮을 터였다. 하급 전사의 말에 따르면 그쪽에야말로 최고의 전력들이 모여 있었으니까. 더욱이 라그나가 함께하고 있었다. 치명적인 부상 때문에 은퇴하고 만 그였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는 최상급 전사의 자리에 올랐던 자였다. 여간한 위험 따위는 모조리 박살낼 줄게 분명했다.

그러니 되었다. 조급한 마음을 다소 억누르고, 시리와 전사들을 치하한 뒤 날아가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헤다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헤다는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경악을 토했다.

어째서.

어째서 저 정도 되는 존재가.

갑작스런 헤다의 변화에 당황한 시리였지만 이내 헤다와 비슷한 얼굴이 되었다. 그녀 또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의 권속인 발키리가 아니어도 알 수밖에 없는 불길한 기운, 이 주변 일대를 뒤덮을 것만 같은 강대한 힘.

토르 군단의 전사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방향을 보았다. 그들도 이제는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둔한 자라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태호!”

벼락처럼 외친 헤다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대로 지면을 박차 백조로 화했다. 시리가 무어라 외치기도 전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제발, 제발, 제발!

저곳에 태호가 없기를. 그저 먼 곳에서 시리나 다른 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놀라고 있기를!

헤다의 날갯짓이 빨라졌다. 그 끝에 찬란한 황금빛이 일었다.

&

그것은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마치 일식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대기가 울었다. 이미 황폐화 된 대지가 비명을 질렀다.

보았지만 반응할 수 없었다.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검은 운석이 지면에 내려왔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의 별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굉음은 없었다. 폭발도 없었다.

그저 대지 위에 굳건히 존재했다.

거인.

대지 위에 서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하늘과 같은 오만함을 지닌 자들.

검고도 붉은 거인이었다.

키가 무척이나 컸다. 블랙 포트리스에 나타났던 거인과 거의 비등한 크기였다.

하지만 결코 같지 않았다.

바위를 아무렇게나 뭉쳐 만든 괴물 같던 최하급 거인과 달리 눈앞의 거인은 완성되어 있었다.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형태로, 가장 전투적인 형태로 조형된 작품이었다.

어깨는 넓고 두 팔은 단단했다. 검붉은 갑옷 사이로 드러난 근육은 강철을 연상시켰다.

아무런 문양도, 장식도 없는 투구 사이에 자리한 두 눈은 불타고 있었다.

힘의 거인 하라드. 마술왕의 다섯 손가락 가운데 하나.

이쪽을 향해 달려오던 토르의 군단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들은 더 이상 돌진하지 못 했다. 성난 폭풍우를 목격한 이들이 그러하듯이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행운이었다.

전장에 도달하지 못 했으니까. 거인과 조금이나마 거리를 둘 수 있었으니까.

거인이 손을 휘둘렀다. 가벼운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하늘과 땅이 요동쳤다.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도 파악할 수 없었지만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탕그뇨스트가 사라졌다.

정확히는 산산이 부서져 사방에 흩어졌다. 그 위에 타고 있던 발할라 전사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함께 사라졌다.

브라키는 숨을 쉬지 못 했다. 숨이 막히고 있다는 감각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눈앞의 존재는 대체 무어란 말인가.

거인이 브라키를 보았다. 다시 손을 휘둘렀다. 브라키는 움직이지 못 했다. 그건 롤로와 태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인을 제외한 모든 것이 정지한 전장.

브라키는 탕그뇨스트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라질 운명이었다.

만약 그가,

이곳에 없었더라면.

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대기가 잘려나갔다. 거인이 휘둘렀던 힘 역시 상쇄되어 흩어졌다.

모두가 정지한 그때 그가 움직였다. 브라키의 앞을 막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만들어진 균열.

브라키는 마침내 숨을 쉬었다. 허공에서 영락없이 추락하던 롤로 역시 정신을 차리고 날갯짓을 했다. 태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거인 앞에 버텨선 자를 보았다.

“라그나 로드브로크.”

힘의 거인 하라드가 말했다. 라그나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미쳤구만. 여길 직접 오다니.”

“몰락했구나.”

힘의 거인 하라드는 라그나를 알았다. 위대한 전쟁에서도 활약한 최상급 전사를, 저 바이킹의 전설을 몰라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랬기에 시간을 아껴야 하는 상황임에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꺼움과 연민이 동시에 깃든 미소를 지었다.

라그나 로드브로크는 몰락했다. 너무나 약해져 있었다. 더욱이 태호나 브라키는 몰랐지만 하라드는 알 수 있었다.

라그나는 지금 한계에 임박해 있었다. 여기까지 오며 기껏해야 최하급이나 하급 거인 몇을 상대한 것이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지쳐 있었다.

힘은 있지만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상태.

라그나가 최상급 전사에서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시간이 없다.’

라그나와 하라드는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서로 달랐다.

하라드는 서둘러야 했다. 라그나는 어떻게든 지금의 대치 국면을 연장해야만 했다.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라그나와 하라드는 함께 웃었고, 동시에 움직였다.

쾅!

하라드의 주먹이 괴물 멧돼지를 내려쳤다. 그 일격에 괴물 멧돼지가 소멸했다. 가죽과 살은 불타올랐고, 가름의 영혼 또한 증발하듯 사라졌다. 머리에 박혀 있던 가름의 영혼 파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라그나가 검을 휘둘렀다. 거인에게 닿지 않을 거리였지만 닿았다. 검기라고 밖에 표현 못 할 힘이 거인의 팔을 노려 영혼 파편을 줍지 못 하게 했다.

“튀어라.”

라그나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브라키가 미처 반응하지 못한 그때 하라드가 주먹을 휘둘렀다.

대기가 폭발했다. 권풍만으로 주변에 있던 괴물들이 날아갔다. 라그나는 저항하는 대신 멀뚱히 선 브라키의 허리를 안고 지면을 박찼다. 권풍에 몸을 맡겼다.

거인이 그런 라그나를 추적했다. 거대한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지막지한 추진력이었다.

“라그나 로드브로크!”

그는 몰락했다. 은퇴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목은 여전히 가치 있었다. 전설적인 바이킹 왕의 목은 마술왕께 바칠 최고의 공물이 될 수 있었다.

하라드의 주먹이 다시 허공을 강타했다. 브라키는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사실 라그나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해일에 부서지는 대신 다시 몸을 놀렸다. 바람을 타 재차 거리를 벌리고자 했다.

라그나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하라드가 하늘을 노려보았고, 호흡 곤란 증상에 빠진 괴물들이 바닥에 나자빠졌다. 그리고 롤로가 의식 불명인 상태로 날갯짓을 했다.

“라그나!”

태호였다. 용을 부리는 자로 롤로를 조종했다. 억지로나마 날아오르게 해 공중에서 라그나를 붙잡고자 했다.

태호가 손을 길게 뻗었다. 라그나는 그 손을 보았고, 연이어 태호의 얼굴을 보았다. 심각한 상황임에도 히죽하고 웃었다.

“역시 비범해.”

최소 시구르드.

이런 곳에서 죽을 놈이 아니었다. 죽어서는 안 될 놈이었다.

“튀어라.”

라그나가 다시 말했다. 태호의 손을 붙잡는 대신 브라키를 집어던졌다. 반사적으로 브라키를 낚아채며 휘청거리는 태호를 보며 가슴을 탕탕 가볍게 두드렸다.

“라그나!”

태호가 다시 소리쳤다. 라그나는 웃으며 돌아섰다. 마치 태호처럼 허공을 박차 하라드를 향해 몸을 날렸다.

태호와 브라키를 살린다.

놈이 영혼 파편을 가져가는 것도 막는다.

시간도 끌 수 있는 만큼 잔뜩 끈다.

하라드가 라그나를 향해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지금까지와 달리 특별했다. 권풍에 강력한 힘이 실려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부딪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도 남을 해일이었다.

라그나는 숨을 뱉었다. 해일의 틈바구니를 찾아 검을 휘둘렀다. 거짓말처럼 빈틈을 파고들어 해일을 넘었다. 그대로 춤추듯 지상에 안착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몇 번의 호흡이 더 남았을까.

하라드가 더 큰 힘을 일으켰다. 하늘에서 놈의 수하들이 강림하기 시작했다.

야생 그리폰 잡으러 왔다가 이게 대체 무슨 꼴인지.

라그나는 입술을 열었다. 마법의 힘을 담아 속삭였다. 도망치라 말했는데도 차마 도망치지 못 하는 태호에게 들려주었다.

수업을 처음 시작했던 날 태호가 물었던 것.

중급이 신의 힘을 다루는 단계라면, 상급이나 최상급은 무엇을 하는 단계냐는 물음.

아직 일렀다.

일러도 너무 이른 힘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특별했으니까. 아끼고 있을 때가 아니었으니까.

“가르쳐주마.”

중급을 넘어 상급에 도달한 전사의 힘을.

그때부터 마주해야 할 새로운 경지를.

하라드의 힘이 최고조에 달했다. 전신에 검은 불꽃을 두른 모습은 흡사 살아있는 불의 화신 같았다.

그런 하라드를 마주한 채 라그나는 검을 들어올렸다. 새하얀 신의 힘을, 신들의 왕 오딘의 힘을 일으켰다.

‘하급은 중급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중급도 같았다. 결국 상급을 준비하는 단계였다.

신의 힘을 무기에 싣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육신에 싣는 단계조차 넘어선다.

발할라 전사들의 힘의 근원은 사가.

이야기에 신의 힘을 더한다.

전사의 사가를 더욱 높은 곳으로 이끈다.

‘일화를 넘어.’

전설을 넘어.

마침내 신화의 경지에 도달하나니.

[신화급 사가]

[바이킹의 왕 : 라그나 로드브로크]

위대한 전쟁의 흔적, 저 황폐화된 땅 위에서.

또 하나의 신화가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