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halla Saga

Chapter 67 - Ancient Dragon

아스가르드에는 태초신이 셋 있었다.

하나는 최초의 존재 아우둠라였고, 나머지 둘은 아우둠라의 젖을 먹고 자란 최초의 거인 이미르와 애시르 신족의 시조신 부리였다.

부리는 볼을 낳았고, 볼은 다시 오딘을 낳아 신들의 왕 자리와 주신의 위를 넘겨주었다.

유지하려는 자로 태어난 부리와 볼, 오딘은 멸망을 바라는 자로 태어난 이미르를 멸하고 유지하려는 자들을 위한 세계를 열고자 했다.

부리는 겨우살이 나뭇가지로 태초신을 죽일 수 있는 살신기 미스틸테인을 만들었고, 볼과 오딘은 물론이고 당시 태어나 있던 여러 신들과 힘을 합쳐 이미르를 쓰러트렸다.

사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신들에게는 제대로 된 의지가 없었다. 올림푸스의 태초신들이 그러하듯이 명확한 자의식과 인격을 가지고 행한 행동이라기보다는, 본능에 따라 행동한 것에 가까웠다.

부리, 볼, 오딘은 이미르의 시신을 태초의 구멍이자 혼돈의 도가니 긴눙가가프에 던져 넣어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신계 아스가르드를 비롯한 인계 미드가르드, 바나 신족의 땅 바나하임 등이 생겨나 비로소 세계 아스가르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이전.

긴눙가가프의 구멍을 태초의 거인 이미르가 메워 세계 아스가르드가 시작되기 직전이라 해도 좋을 순간.

부리, 볼, 오딘은 언제 또 다시 이미르와 같은 존재를 탄생시킬지 모를 아우둠라 또한 미스틸테인으로 제거한 뒤 긴눙가가프 가장 깊은 곳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제대로 된 세계에 안착하게 된 신들은 올림푸스의 가이아가 영육을 얻어 자아와 확립된 인격을 손에 넣은 것처럼 스스로를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새로운 탄생이라 해도 좋았다.

신계 아스가르드에 정착한 부리, 볼, 오딘. 그 중에서 가장 늦게, 하지만 가장 제대로 된 자아를 각성한 오딘은 긴눙가가프의 중심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한 그루 나무가 있었다.

세계 전체를 꿰뚫고 솟구쳐 오른, 긴눙가가프의 중심에서부터 자라나 세계의 시작을 함께한 세계수 위그드라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세계수 위그드라실과 시작을 함께한 존재가 있었다.

&

“아깝지 않느냐?”

세계수의 뿌리를 탈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태호의 품에 안겨 곤히 잠든 니드호그를 보며 오딘이 한 말이었다.

“니드호그의 본체··· 말씀이십니까?”

태호가 새삼 니드호그의 어깨를 안으며 말했다. 자식을 보호하는 부모 같은 몸짓에 작게 웃은 오딘이 말을 이었다.

“니드호그가 언제 태어난 존재인지는 나조차도 정확히 알지 못 한다. 내가 녀석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세계수 위그드라실이 나타나고도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이니까.”

자아를 확립하기 이전- 그러니까 세계가 정립되기 이전의 기억은 흐릿했다.

세계가 완성된 후에도 아스가르드의 기틀을 닦느라 한동안은 세계수를 관찰할 여유가 없었다.

오딘이 제대로 세계수를 살펴본 것은 바나 신족과의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지혜로운 미미르를 찾아 나설 결심을 했을 때였다.

세계가 정립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리고 그때 이미 뿌리에는 니드호그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탄생 시기는 차치한다 치더라도, 그녀는 분명 오래된 존재이다. 그리고 그녀의 본체는 실로 장대하지. 요툰하임의 어떤 거인도 그녀보다 거대하지는 못 할 것이다.”

장장 2킬로미터에 달하는 거체였으니 당연했다. 그나마도 몸을 웅크리고 있어 그런 것이니, 날개를 펴고 제대로 날아오르면 그 거대함으로 하늘을 뒤덮을 터였다.

오딘의 설명에 태호는 반사적으로 니드호그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품에 안겨 곤히 잠든 그녀는 마치 아기 같았다. 거대한 태고의 괴물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오딘이 쓰게 웃었다.

“그래, 그녀의 정신은 분명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여린 소녀이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그녀가 가진 진정한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니 말이다.”

니드호그의 정신은 어린아이와 다름없었다. 새하얀 종이처럼 맑고 순수한 정신이었다.

아무리 오딘이라 한들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오딘이시여, 니드호그의 본체는 세계수의 뿌리를 빠져나오지 못 하는 것이 아닌지요.”

오딘의 마법으로 실체화한 쿠 훌린이 낮게 말했다. 니드호그를 향한 그의 시선에는 가여움이 묻어났다.

오딘이 하나뿐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빛의 왕자, 그대의 말이 옳다. 단순히 거대하기 때문에 빠져나오지 못 하는 것이 아니다. 강력한 주박이 니드호그의 본체를 뿌리에 묶어두고 있다. 때문에 이번에는 그녀의 본체를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빠져나온 것은 니드호그의 본체가 아닌 분신체와 정신뿐이었다. 그녀의 진정한 육신은 여전히 뿌리에 갇힌 상태였다.

태호가 니드호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방법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래, 방법이라면 있다. 하지만 쉽진 않을 것이다.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 적어도 이번 전쟁에서는 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적은 요툰하임만이 아니다. 그 너머에 있는 존재··· 그들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니드호그의 진정한 힘이 필요하다.”

불의 결사.

하지만 아직 태호에게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때문에 오딘은 숨을 한 번 삼킨 뒤 능청을 떨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일단은 마술왕 놈부터 물리쳐야겠지만 말이다.”

당면한 적은 불의 결사가 아닌 아스가르드의 오랜 적- 마술왕 우르가르드 로키였으니.

“태호 주인님아······.”

바로 그때 니드호그가 작은 목소리를 흘렸다. 이야기 소리를 듣고 반쯤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응응, 괜찮아. 괜찮으니까 다시 자.”

“으응······.”

작게 대답한 니드호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태호가 그녀의 등을 쓰다듬는 것을 본 오딘은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녀를 아껴주려무나. 너무도 오랜 시간 동안 고통 받은 아이이니.”

&

거대한 고양이 마차가 세계수 위를 달리고 있었다. 수백마리나 되는 고양이들이 마차를 끌며 달리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차의 구석에 니드호그와 나란히 앉은 아덴마하가 약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물었다.

“라타토스크 만나러 가는 게 그렇게 좋아?”

“응응, 좋아. 라타토스크는 미운 말만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못된 애지만··· 그래도 니드호그를 만나러 와준 유일한 사람이니까.”

니드호그가 에헤헤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미소에 숨겨져 있는 어둠을 놓치지 않은 아덴마하는 니드호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이제는 나도 있어.”

“응응, 아덴마하 너무 좋아. 태호 주인님만큼 좋아.”

기회는 이때라는 듯 아덴마하를 꼭 끌어 안는 니드호그였다.

그리고 그런 둘과 조금 거리를 둔 곳에서 헤다가 태호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러댔다.

“태호, 어떻게 된 일이야? 조금 더 자세히 말해봐.”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헤다 자신과 니드호그 외에는 다들 이번 일에 대해 대강이나마 알고 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같은 사실에 아주 약간, 그러니까 아주 조금은 화가 나는 헤다였다.

태호는 입술을 삐쭉이는 헤다의 허리를 덥썩 안으며 답했다.

“저랑- 아니, 정확히는 오딘님이 꾸준히 준비하고 계시던 일이에요.”

“오딘님이?”

헤다가 눈을 가늘게 뜨자 고양이 마차를 몰고 있던 프레이야도 입을 열었다.

“마술왕을 쓰러트린 뒤에 라타토스크의 행방이 갑자기 묘연해졌잖아? 물론 다들 관심이 없어서 그냥 잊은 걸지도 모르지만.”

“오딘님이 데려가셨다는 말이야?”

헤다의 물음에 프레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흐레스벨그에게 얻어맞아서 죽기 직전까지 간 녀석을 잘 회복시킨 다음에 세계수의 뿌리 근처에 봉인해뒀어. 불의 결사의 끄나풀일 가능성이 높은 녀석이지만 세계수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녀석의 능력 자체는 진짜니까. 그냥 죽이기는 아까웠다고 하시더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이용하는 것이 바로 오딘이었다. 그런 그가 라타토스크를 간단히 죽일 리 만무했다.

“라타토스크는 뿌리조차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니까. 녀석의 힘을 증폭시켜서 니드호그의 본체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구멍을 만든다-가 오딘님의 계획이야.”

태호의 설명은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헤다는 새삼 아덴마하와 껴안고 장난을 치고 있는 니드호그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니드호그의 본체가 그렇게 커?”

“그렇게 크다고 밖에 표현이 안 되겠는데.”

태호가 곤란하다는 듯 뺨을 긁적이며 말하자 프레이야가 다시 말을 보탰다.

“난 본적이 없어서 몰라. 그래도 오딘 그 영감이 그렇게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든 거 보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존재인 것만은 분명해.”

“뭔가 이상한 기분이네.”

헤다의 눈에 비친 니드호그는 아기 고양이나 강아지 같았다. 아덴마하를 끌어안고 응석을 부리는 모습이 딱 그랬다.

그런데 저런 니드호그가 사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괴수라니. 도저히 매칭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오딘께서는 마술왕을 쓰러트린 거의 직후부터 니드호그의 본체를 탈출시키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셨어. 내가 올림푸스에서 한창 싸우고 있을 때도 틈틈이 계속 계획을 진행시킨 것 같아.”

“며칠에 한 번씩은 자리를 비웠으니까.”

프레이야가 다시 말을 보탰다. 어쩐지 토라진 어조였다.

헤다는 ‘호오’하는 소리를 내며 프레이야를 보았고, 프레이야가 흥하고 코웃음을 치는 가운데 태호가 계속해서 말했다.

“오딘님이 말씀하신 가장 확실한 시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그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내가 주신으로서 가진 아스가르드와 에린의 힘까지 보태면 시기를 조금은 앞당길 수 있을 거야.”

에린의 부활을 선행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럼-.”

“꺄악!”

돌연 울린 비명 소리가 헤다의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태호를 비롯한 모두는 급히 소리가 들려온 방향- 니드호그와 아덴마하가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비명을 지른 것은 니드호그였다. 그녀는 돌연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려움에 떨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헐떡이며 말했다.

“어, 어디 가는 거야?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라타토스크 만나러 가는 거야. 그러니 괜찮아, 니드호그.”

아덴마하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니드호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니드호그는 여전히 몸을 떨며 두려워했다.

“뿌리··· 뿌리에 가까워지고 있어. 뿌리로 돌아가는 거 싫어. 돌아가고 싶지 않아.”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뿌리에 돌아간다는 행동 자체가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있었다.

사시나무 떨듯 떨며 몸을 웅크리는 니드호그의 모습에 마른침을 삼킨 아덴마하는 니드호그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다 같이 가는 거잖아? 태호 주인님이랑 헤다도 있어. 프레이야님도 계시고.”

혼자가 아니었다. 다 같이 가는 것이었다.

아덴마하의 말에 니드호그는 눈을 꼭 감고 숨을 헐떡였다. 한참을 그러다 겨우 눈을 떠 아덴마하와 모두를 돌아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울먹거렸다.

“니드호그 혼자 두고 오면 안 돼. 알았지?”

“그럴게. 절대로 혼자 두지 않을게. 내가 늘 함께할게.”

아덴마하가 다시 니드호그를 꼭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프레이야가 태호의 등을 밀었다.

“너도 가서 달래주고 와. 이번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니드호그야. 그녀의 정신이 안정되어야 성공률을 높일 수 있어.”

제법 딱딱한 말에 헤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니는 그것보단 니드호그가 무서워하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운 거야.”

“아무튼.”

프레이야가 쑥스럽다는 듯 코웃음을 쳤고,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 다녀올게요.”

태호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마차 위를 기어서 니드호그와 아덴마하에게 다가섰다. 태호의 접근을 알아차린 아덴마하는 니드호그를 안고 있던 팔을 풀어 태호와 니드호그가 서로를 마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니드호그.”

“태호 주인님아.”

니드호그가 울고 있었다. 태호는 그런 니드호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타이르듯 말했다.

“니드호그, 우린 이제부터 뿌리로 갈 거야.”

“왜? 왜 그래야 해?”

어린아이의 칭얼거림과는 조금 달랐다. 뿌리 깊은 두려움을 느낀 태호는 니드호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였다.

“뿌리에는 니드호그의 본체가 남아 있잖아? 본체를 뿌리에서 꺼내주려고 해.”

“내 몸··· 니드호그의 몸······.”

몇 번인가 중얼거린 니드호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

“뿌리에 갇혀 있어. 여전히 혼자 웅크리고 있어. 구해줘야 해.”

“그래, 그러니까 뿌리에 가자. 본체를 구해주자.”

“응··· 알았어. 무섭지만 참을게.”

니드호그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호는 손수건을 꺼내 니드호그의 얼굴을 닦아준 뒤 그녀를 소중히 품에 안았다.

“고마워, 니드호그.”

“나도 고마워. 니드호그를 구해줘서 고마워.”

거기까지 말한 니드호그는 그대로 태호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웠기에 태호가 조금 당황하자 아덴마하가 니드호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봐요. 피곤하기도 했고.”

에린의 의식이 끝나자마자 뿌리로 향하고 있는 형편이었으니까.

“그런데 주인님, 뿌리라는 곳이 그렇게 끔찍한 곳이에요?”

아덴마하는 뿌리에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니드호그가 이 정도로 두려워하는 것을 보니 절로 무서운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태호는 바로 답하는 대신 잠시 뿌리를 떠올려 보았고,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무 것도 없고, 아무도 없는 장소니까.”

&

“라타토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