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re

00292 Blind Line

“혈.. 뭐?”

남궁정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진은 두 번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는 성큼거리며 남궁정을 향해 걸어갔고, 그 앞을 가로막던 남궁호는 까득 이를 갈며 검을 뽑았다. “혈마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남궁호는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믿건 말건, 아진이 신경쓸 바는 아니었다. 아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계속 서 있을 테냐?”

아진이 물었다. 남궁호에게 하는 말이었다. 남궁호는 말은 믿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조금은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역시,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다. 아진은 앞으로 걸었다. 머뭇거리던 남궁호가 마음을 잡은 모양이었다. 그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단번에 아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꽈앙! 아진이 떨친 팔과 남궁호의 검이 부딪혔다. 남궁호는 손에서 느껴지는 강한 반발력에 숨을 들이켰다. 손아귀가 욱씬거렸지만 남궁호는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내공을 강하게 끌어 올리며 아진을 향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

내공을 움직이는 것이 자유롭지 않다. 상승무공을 쓰기에는 무리다. 일단은 묵린갑의 내구성을 믿어 본다. 까앙! 팔뚝에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아진은 버티지 않고 허리를 풀면서 공격을 최대한 흘려냈다. 남궁호가 기세를 잡았다 생각하였는지 검을 빠르게 휘둘러왔다. 몰아치는 검격은 매서웠지만 틈이 확실히 보였다. 아진은 틈이 보이는 즉시 발을 앞으로 뻗어 거리를 좁혔다. 쌔액! 꽂아 넣는 주먹에 남궁호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얕군.’

내공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 새삼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전의 남궁세가 무인들은 내공을쓰지 않아도 상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남궁호는 그들보다 고수였다. 아진은 혀를 차면서 뻗었던 주먹을 접었다. 하지만 거리를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아진은 발을 움직여 남궁호에게 바짝 붙어왔다.

‘별 것 없는 놈 같은데..’

상대하기 힘들다. 남궁호가 미간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검격의 틈 사이로 찔러오는 공격이 매서웠다. 공격 자체가 무겁지는 않았지만, 저 팔뚝을 감싼 완갑의 단단함은 기이할 정도였다. 검기를 불어넣은 검으로도 뚫을 수 없다니.

하지만.

“거짓말을 하려면 적당히 해야지. 혈마가 무슨..”

남궁호가 이죽거렸다. 아진은 쿡쿡 웃었다. 새끼가 입을 터는 군. 아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남궁정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그는 조금 흥분해 있었다. 가뜩이나 짜증이 나는데 도발을 들으니 머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도발. 뻔한 도발인데. 평소라면 되려 이죽거렸을 텐데.

지금은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조금 무리를 할까. 아진은 생각했고, 곧바로 행동했다. 쿠웅!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천마강림을 펼쳤다. 그의 등 뒤에서 붉은 마귀가 일어섰을 때, 남궁호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가 뭐라고 소리를 내기도 전에 아진은 팔을 휘둘렀다. 꽈앙! 남궁호는 급히 검을 들어 방어했지만, 일격에 남궁호의 검이 박살났다.

“우욱!”

남궁호의 몸이 크게 뒤로 물러섰다. 아진은 멈추지 않았다. 이어 뻗을 일장이 남궁호의 가슴을 두드렸다. 남궁호는 입을 벌려 시뻘건 피를 토해냈다.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아진은 천마강림을 해제하고서 무릎을 낮추었다. 비틀거리며 물러서던 남궁호가 발악하듯이 박살난 검을 휘둘렀다.

쌔액! 정수리 바로 위를 남궁호의 검이 스쳤다. 아진은 몸을 낮춘 체로 발을 끌어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놀란 남궁호가 뒤로 물러서기도 전에, 아진의 양 팔이 그의 허리를 감쌌다. “이게 뭐..” 남궁호가 당황하여 외치려 할 때, 아진은 놈의 다리 사이에 발을 찔러 넣어 그대로 남궁호를 엎어 쳐버렸다.

“컥!”

등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남궁호가 놀란 소리를 뱉었다. 아진은 남궁호가 몸을 일으키기 전에 손을 뻗어 남궁호의 손을 움켜잡아 꺾어 버렸다. 우둑, 하는 소리와 함께 남궁호의 손목이 비틀렸다.

“끅!”

남궁호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아진은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땅을 구르는 검을 발로 걷어차면서 말했다.

“내상을 입은 상태라서.”

아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남궁호의 머리를 걷어찼다. 콰직! 남궁호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속이 울렁거렸다. 기혈이 욱신거렸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진은 머리를 옆으로 돌려 침을 뱉었다. 그는 입술을 손등으로 닦으며 신음하는 남궁호의 몸을 다시 걷어 찼다.

“혀.. 혈마..”

남궁정이 덜덜 떨면서 중얼거렸다. 천마강림을 펼쳤을 때 등 뒤에 나타나는 붉은 마귀는 아진의 상징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믿지 않았었지만, 저것을 실제로 보고 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남궁정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고, 아진은 놈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짓이오? 혈천맹은 무림맹과 동맹.. 아, 아니 그보다 행방불명이라는 당신이 왜..”

“말하지 않았느냐. 내상을 입어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아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남궁정을 향해 성큼거리며 다가갔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던 남궁정은 급히 외쳤다.

“나, 나는 당신에게 어떤 무례도 저지르지 않았소. 남궁세가도 마찬가지요. 그런데 왜..”

“말이 많군.”

아진은 중얼거리면서 손을 휘둘렀다. 파악! 쏘아진 비수가 남궁정의 허벅지에 박혔다. “끄윽!” 남궁정은 비명을 지르며 비수가 박힌 허벅지를 움켜쥐다가 자빠졌다. 아진은 성큼거리며 남궁정에게 다가갔다.

“대.. 대체 왜..”

“이곳에 왜 왔느냐.”

아진이 물었다. 아진을 올려보던 남궁정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야.. 약을 구하기 위해 왔소. 하지만 그것 뿐이오! 우리는..” 아진은 남궁정의 말을 끊었다. 퍼억! 걷어 찬 발이 남궁정의 입술을 갈겼다. 남궁정은 비명을 지르며 입을 틀어막았다. 붉은 피가 후둑거리며 떨어졌다.

“의당을 지워버리겠다고 했다던데.”

“그.. 그거시..”

이가 박살나서 남궁정의 발음이 새었다. 남궁정은 울먹거리는 얼굴로 아진을 올려 보았다. “부정하지 않는군.” 아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발을 위로 들었다. 콰악! 내리찍은 발이 남궁정의 손등을 짓밟았다.

“무슨 약을 구하러 왔느냐.”

아진은 남궁정의 손등을 자근자근 짓밟으면서 물었다. 부들거리던 남궁정은 아진의 얼굴을 올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게..” 변명거리를 생각하는 듯 놈의 눈동자가 데룩거리며 굴렀다. 더 들을 것도 없었다. 아진은 남궁정의 손등에서 발을 올리고, 놈의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아이를 지우는 약이라.”

아진은 큭큭 웃었다. 분노의 이유라. 흑설향은 아진에게 그에 대해서 물었다. 스스로,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단지 그녀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녀가 비참함을 느낄 것 같아서.

“나는 사파다.”

아진은 손을 뻗어 남궁정의 머리카락을 움켜 잡았다.

“아이를 지운다.. 죽인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로군. 그 여인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니 네게 물으마. 그 아이는 네 아이냐.”

“나.. 나는..”

“네 아이냐고 물었다.”

짜악! 아진의 손이 남궁정의 뺨을 갈겼다. 남궁정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터진 입술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눈에서는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울던 말던, 아진은 놈의 얼굴을 노려보면서 다시 물었다.

“네 아이냐고 물었지 않느냐.”

“예, 예..”

콰직! 아진은 다시 놈의 얼굴을 땅에 처박았다. 간밤에 내린 비로 끈적한 진흙 위로 남궁저으이 얼굴이 떨어졌다. 아진은 남궁정의 머리채를 잡아 들어올렸다. 진흙이 놈의 얼굴에 달라 붙었다가 땅으로 후둑거리며 떨어졌다.

“..사파인 나도, 도리와 인륜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아진은 손을 들었다. 짜악! 휘두른 따귀에 남궁정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네 짓이 천인공노할 쓰레기 짓이라는 것도 알고. 아기가 대체 뭔 죄가 있겠느냐. 그 아이가, 왜 죽어야 하느냐. 네가 뭔데 그 아이를 죽이겠다고 하느냐.”

목구멍까지 치솟는 말을 간신히 되삼켰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불임이라는 수인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한 세상의 주인이었고, 지금도 세상을 뒤집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평범한 여인의 삶에 동경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아진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올라갔다.

“말 해 봐라.”

손바닥이 주먹이 되었다. 콰직! 아진의 주먹이 남궁정의 면전에 처박혔다. 남궁정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아진은 남궁정의 머리를 놓았다. 철퍽. 진흙 위로 남궁정의 몸이 쓰러졌다. 아진은 주먹을 풀지 않고서 계속 남궁정의 얼굴에 내리 찍었다.

“책임질 마음도 없고. 머릿속은 성욕만 가득차서, 그것을 싸지르는 것이 너라는 놈이냐. 여인은 네게 있어서 무슨 존재였고 그 뱃속의 아이는 네게 있어서 무슨 존재였느냐. 너는 왜, 왜.”

진흙과 피가 섞여 얼굴로 튀었다.

“전해라.”

아진은 몸을 일으켰다. 남궁정은 얼굴이 거의 뭉개진 체 땅에 엎어졌다. 아진은 놈의 얼굴을 힐긋 보다가 몸을 돌렸다. 주저앉은 남궁호가 멍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들어 뺨을 닦았다. 손등에 피와 진흙이 묻어나왔다.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전해라. 네 아들을 혈천맹의 혈마가 두들겨 패 주었다고.”

남궁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진은 머리를 옆으로 돌려 퉤 침을 뱉었다. 그는 땅에 엎어진 남궁호를 힐긋 보다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유를 묻거든, 이리 대답해라. 댁의 아들이 사파 마두인 혈마도 아는 인륜과 도리를 모르기에, 직접 그를 가르쳐 주었노라고.”

퍼억. 아진은 발을 휘둘러 남궁정의 배를 걷어찼다. 실신한 남궁호의 몸이 들썩거렸다. “그만..!” 남궁정이 급히 외쳤고, 아진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보란 듯이 한 번 더 남궁호의 몸을 걷어찼다.

“또 전해라. 아이를 낳고, 그것이 남궁세가의 명예를 더럽힌다 생각한다면 혈천맹으로 보내라고. 정파 명문가라는 너희가 그것을 하고 싶지 않다면 혈천맹이 그리 할테니.”

아진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남궁호를 쏘아보았다.

“이번 일을 문제 삼고 싶다면 그리 하라 전해라. 되먹지 못한 아들을 대신 교육시켜주었으니 감사를 받으면 또 모를 텐데. 그를 문제 삼아 검을 뽑고 싶다면 뽑으라 하거라. 마교를 상대하기 전에 내부의 썩은 뿌리를 끊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진은 몸을 돌렸다. “자, 잠깐..” 남궁호가 뭐라 말을 하려 하자, 아진은 얼굴에 짜증을 담아 그를 돌아보았다. 아진의 시선이 닿자 남궁호는 흠칫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아진은 주춤거리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꺼져라.”

아진이 내뱉었다.

“꺼지란 말이다.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을 테냐.”

“우.. 우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남궁세가가 보복할 것이다. 그리 두렵지는 않군. 해 보아라. 남궁세가가 거슬린다면 지워버리면 될 일 아닌가. 패검문처럼, 귀염문처럼.”

아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돌려 성큼거리는 걸음으로 정원을 나왔다. 그는 자신을 보는 환자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이한과 유소를 똑바로 보았다. 이한은 설마 아진이 혈마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에, 경악한 얼굴로 아진을 보고 있었다. 아진은 이한의 시선을 무시하고 유소를 보며 말했다.

“치료에 대한 대가요.”

“..거짓말을 하셨군요.”

유소가 중얼거렸다. 이름을 속인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아진은 피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서, 그것이 불쾌하시오?”

“..그건 아니예요. 그보다.. 저 사람들은..”

“내버려 두시오.”

아진은 유소를 지나치며 말했다.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