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re
00332 War
[전수받은 깨달음이 시스템 버프로 바뀌었습니다.]
[벽력천굉과 초풍진각이 일시적으로 대성 상태가 되었습니다.]
뜻밖의 음성이었다. 목소리가 끝난 순간, 아진은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다. 어지러움이 끝나고 흔들리는 세상이 바로 잡혔을 때. 아진은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지금 자신의 몸에, 이 아바타에 깃든 힘을. 아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천굉과 진각은 아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다. 천굉이 한 말을 다시 더듬어 보았다.
생각해 보면, 여태까지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진은 피식 웃었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이득에 맞게 살았다. 가능과 불가를 견주었고 둘 중 무언가가 정해지면 그로 인해 얻을 이익과 불이익을 견주었다. 이익과 불이익이 명확히 가린다면 당연히 이익이 있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랬을 뿐이다. 진짜로 하고 싶은 것. 그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 그런 적은 꽤 있었지만,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감정을 느낀 적은 적다. 아진은 앞으로 걸었다. 그의 등 뒤에 주저앉은 이들은 아진보다 몇 배는 강했던 이들이다. 아진보다 아득히 높이 있던 이들이다. 그곳에서 아진을 향해 손을 뻗고, 그를 끌어 올려 주려던 이들이다.
백은표가 떠올랐다.
꽤, 예전이라고 생각한다. 일 년 인가, 이 년인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진은 자신이 마음 속에 세웠던 가치의 기준을 거역했다. 백은표를 죽여야 할 상황이었지만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동정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백은표는 결국 죽었다. 아진은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 백은표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의 상황에 조금, 공감했다.
그래서 그녀를 지키지 못했던 것은 조금 괴로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분이 더러웠다. 기껏 그런 마음을 품었는데 그것이 시궁창에 처박힌 것 같아서
좆같았다.
“비켜라.”
천마가 이를 갈며 내뱉었다. 아진은 그런 천마의 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마, 예전이라면 비키라는 저 말에 비켜 주었을 것이다. 대적이 불가하니 도망쳤을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별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후회 역시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치지 않는다. 천굉과 진각에게 깨달음을 전해받고, 그것이 시스템 적인 버프로 바뀌었기 때문에? 아니, 그건 아니다.
그것을 받기 전에도 비키고 싶지 않다 생각했다. 비키라는 말에 거부했다. 천굉과 진각을 죽게 두고 싶지 않았다. 천마가 둘을 죽이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를 지켜보고 싶지 않았고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주먹을 쥐었다.
“..싫다.”
아진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 말에 천마는 눈을 부릅뜨고서 천마신공을 움직였다. 거대한 주먹이 그의 앞에 생겨났다.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청성산에서 살려서 보내 주었던 놈. 당장은 조무래기지만, 성장력을 보았을 때 나중에는 제법 재밌게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질 놈.
지금은 단순히 앞을 가로막는 훼방꾼일 뿐이었다. 천마가 공격을 뻗어냈다. 거대한 힘이 아진을 덮쳤다. 아진은 쥐고 있던 주먹을 뻗었다.
벽력천굉. 그런 이름을 붙였다. 주먹을 벽력처럼, 그렇게 하늘을 울린다. 천굉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모든 것은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고 일시적이나마 벽력천굉은 완전했다. 지금의 아진은 천굉과 같았다. 아니,
천굉 이상이었다. 들이킨 호흡과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꽈아앙! 내지른 주먹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강했다. 반동에 몸이 뒤로 밀려날 정도였고 천마가 뻗어낸 공격이 꿰뚫렸다. 천마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아진은 그것을 보면서 삼킨 호흡을 길게 뱉었다. 다리를 굽혔다.
발은 가볍게. 바람을 앞지르고, 무엇보다 빠르게. 아진의 발이 땅을 밀어냈다. 그 순간, 그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정신가속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세상 모든 것이 느리게 보였다. 간단했다. 아진은 세상 무엇보다 빨랐고, 당연히 그를 제외한 모든 것은 그보다 느린 것 뿐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진은 천마의 얼굴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발을 들었다. 휘두른 발이 천마의 머리를 옆으로 돌게 만들었다. 그 접촉이 있고 나서야 시간이 아진의 뒤를 따랐다. 아진은 쓰러지려는 천마의 멱살을 손으로 움켜 잡았다. 그는 경악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천마의 얼굴을 보고서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 지를 잠시 고민했다. 웃어야 하나? 비웃음? 아니, 아진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놈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진은 주먹을 쥐었다. 콰직! 아진이 휘두른 주먹이 천마의 턱을 갈겼다. 놈의 머리가 크게 돌아가며 입술에서 피가 튀었다.
“크륵!”
천마는 피거품을 삼켰다. 경악했고, 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놈의 움직임을 읽을 수가 없다. 자신이 약해져서? 물론 그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것을 감수한다고 해도 놈의 움직임은 이상했다. 읽을 수가 없다. 뒤를 쫓을 수가 없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 이미 놈은 가까이에 있었고 공격은 방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고 무거웠다.
이것은 마치.
“대체 뭐냐..!”
천마가 내뱉었다. 그것은 낮은 절규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천마는 눈 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하찮은 놈이 고작 몇 달 사이에 바다가 되어 천마를 가로막고 있었다. 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천마가 하나밖에 없는 눈으로 무엇을 보는지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신에 아진의 주먹이 강하게 쥐어졌다. 퍼퍽! 끊어 친 주먹이 천마의 몸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가볍게 뻗은 주먹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벽력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진이 휘두르는 주먹에 따라 천지가 박살났다. 내지르는 주먹의 궤적에 따라 공간이 흔들리고 부딪칠 때에 그것은 천재지변이 되었다. 콰르릉! 천마의 몸이 땅을 박살내고 내다 꽂혔다. 진원진기도, 호신강기도 무의미했다. 그가 전신에 감싼 견고한 갑주는 아진의 주먹에 맞을 때마다 두부처럼 뭉개져서 으스러졌다.
하지만 괴물은 괴물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그는 뒤를 생각하지 않았다. 최후에 최후라는 심정으로 보존해 두었던 진원진기의 정수가 완전히 녹았다. 천마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그의 몸을 감싼 붉은 강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치솟았다. 천마는 숨을 토해내면서 고함을 질렀다. 꽈르르릉! 땅이 뒤흔들리고 아진의 주변에 광풍이 몰아쳤다.
아진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주먹은 무겁게, 발은 가볍게. 쌍괴가 전한 그 간단한 깨달음만이 아진의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의 몸이 텅 비었다. 텅 빈 그를 채운 것은 그가 익힌 모든 무공이었다. 살신무가 전신의 감각을 세웠다. 천마신공이 천마강림이 되어 그의 몸을 감쌌다. 벽력천굉과 천마유혼권과 천마멸천장이 하나가 되었고 천마군림보와 초풍진각이 하나가 되었다.
좋은 기분이었다. 전신은 가볍고 힘이 넘쳤다. 아진은 성큼거리며 앞으로 걸었다. 천마는 이를 갈며 몸을 띄웠다. 붉은 강기와 시커먼 강기가 어우러졌다. 천마의 바람에 따라 그것은 거대한 공격이 되었다. 전면을 덮으며 쏘아지는 공격을 향해서,
아진은 펼친 손을 내질렀다. 천마멸천장은 벽력천굉을 담아 세상 그 무엇보다 무거운 장법이 되었다. 쩌어엉! 천마의 강기와 아진의 장풍이 부딪혔고, 박살난 것은 천마의 강기였다. 바위에 부딪힌 계란처럼 그것은 산산히 박살나 흩어졌다.
천마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강기가 쏘아졌다. 아진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 무엇도 아진의 몸에 닿지 않았다. 초풍진각과 어우러진 천마군림보는 그 무엇보다 날래고 가벼웠다. 아진이 피하는 것이 아니라, 천마가 아진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숨에 패도를 열었다. 쿠웅! 내지른 발이 땅을 찍을 때, 거대한 힘이 천마의 몸을 내리 눌렀다.
그리고서 천마유혼권. 콰콰쾅! 몇 번을 거듭하여 내지른 주먹이 천마의 호신강기를 파괴했다. 천마는 피를 토하면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아진은 그에게 진심으로 경외를 보냈다.
경외를 보내되, 죽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아진이 주먹을 쥐었다. 아진의 등 뒤에 어린 마귀가 함께 주먹을 쥐었다. 아진이 발을 뻗었다. 천하쌍괴와 혈천마녀의 모든 것이 아진의 몸에 있었다. 지금의 그는 일시적이나마 초월자를 우습게 볼 정도의 힘을 몸에 품고 있었다.
그런 주먹이 뻗어졌다. 느리게 시작한 것은 끝내에는 무엇보다 빠르고 강해졌다. 천마의 가슴이 박살났다.
아진은 천천히 천마를 향해 다가갔다. 땅에 쓰러진 천마는 피를 토하며 흐릿하게 뜬 눈으로 아진을 올려 보았다.
“뭐냔 말이다..”
천마가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천마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절뚝거리는 다리가 제대로 몸을 지탱하지 못하여, 천마의 몸이 비틀거리며 앞으로 넘어졌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이를 악 물었다. 그는 한계였다. 몸도, 내공도. 다만 남은 것은 악에 받친 정신 뿐이었다. 이곳에서 넘어질 수 없다. 그것만을 생각하며, 그는 바다를 노려 보았다.
아진은 성큼거리며 천마에게 다가갔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이 대륙의 역사에서 가장 강했던 무인이다. 놈은 고금 제일이었고, 천하제일이었다. 진선에 안배된 시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었고
플레이어들은 그를 감당할 수 없었다. 플레이어 뿐만이 아니다. 정파도, 사파도. 천마라는 괴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너를 죽이는 것은.”
아진이 입을 열었다. 그는 천마를 내려 보았다. 천마는 일그러진 얼굴로 아진을 올려 보고 있었다. 아진은 주먹을 쥐었다.
“혈문주이고.. 혈천맹의 부맹주인 내가 아니야.”
아진이 소곤거렸다. 그는 천마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표정을 일그러트리고서 아진을 노려보던 천마의 얼굴이 일순 편안해졌다.
“그러면, 누구냐?”
천마가 물었다. 그 물음에 아진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천하쌍괴다.”
그 말에 천마는 낮게 웃었다. 그렇군. 그는 담담하게 인정했다. 방금 전까지의 필사적인 독기는 물에 씻은 것처럼 사라졌다. 그는 완전히 깨닫고, 체념한 것이다.
그는 졌다.
마교는 졌다.
“백 년을 살았다.”
천마가 중얼거렸다. 그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 보았다. 청명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해가 아주 높은 곳에 있었다. 노을이 졌다면 아름다웠을 텐데. 천마는 새삼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었다. 체념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무리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의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진원진기는 완전히 고갈되었다.
“가능하다 여겼는데.. 불가하였군. 그래.. 단순히 그 뿐인가.”
천마는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엇을 위한 백 년이었는가. 지금 이 순간의 패배를 위한 백년이었을까. 천마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는 담담히 인정하였다. 그는 무림을 너무 우습게 여겼다.
단지 그 뿐이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망연자실한 마군들의 주변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무인들이 있었다. 진선 무림에는 저리도 많은 무인들이 있었다. 주저앉아 이쪽을 보는 쌍괴를 보았다. 진선 무림에는 저런 괴물들이 있었다. 천마는 낮게 웃었다.
“청성산에서 죽였어야 했거늘.”
“이제와서 뭘.”
아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알량한 자비를 베풀었다. “남길 말이라도 있나?” 아진이 물었다. 그 물음에 천마는 끌끌 웃었다.
“땅에 묻어주게.”
천마가 대답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불에 태우지도 말게. 재가 되어 바다로 날아갈까 두려우니. 그러니, 땅에 묻어주게. 바로 이곳에. 아무 것도 필요없네. 단지 그것이면 돼.”
아진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목으로 날아드는 수도를 느끼며, 천마는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천마 강아진.
이곳에서 죽는가.
천마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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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죽었다!